일반고에서 수시로 1년 만에 고려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이야기📚- 박도연(p6rkdoye0n)

p6rkdoye0n
Park DoYeon
Published in
20 min readJun 8, 2024

This article is a revised and expanded version of a piece I previously wrote at the request of an academy I attended. It is not a research-based article but rather a diary-style piece sharing my personal experiences and thoughts, which means it is heavily influenced by my subjective perspective. Additionally, please note that since this article conveys the experiences of someone who went through the Korean education system, it was written in Korean rather than English. I appreciate your understanding as you read it.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과천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 한 고등학생 화이트 해커 박도연(p6rkdoye0n)이라고 합니다.

현재 저는 TeamH4C 라고 하는 해킹 팀에 소속되어 있고, 고등학생 때부터 저는 여러 해킹 방어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22개의 CVE (Common Vulnerabilities and Exposures)를 발급 받으며, 세계 랭킹에도 이름이 올라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해킹 뿐만 아니라, 저는 개발, 스타트업, 인공지능, 블록체인 분야에도 많은 실적들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잠재력으로 고려대학교에 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의 특별한 점은 과학고나 자사고가 아닌 일반고에서 해킹을 포함한 여러 컴퓨터 지식들을 스스로 공부한지 약 1년만에 저의 실적들을 가지고 고려대학교에 특기자 전형으로 합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었고,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저의 합격 스토리를 들려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목차

  • 프롤로그
  • Chapter 1. 내 인생의 전환점
  • Chapter 2. 노력은 결과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 Chapter 3. 6개월이라는 시간의 밀도
  • Chapter 4.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보았던 나의 수험 생활
  • Chapter 5. 꿈의 크기가 크면, 깨져도 그 조각의 크기 또한 클 것
  • 에필로그

프롤로그

저는 고등학교 2학년, 2022년 8월에 처음으로 해킹을 포함한 컴퓨터 공부를 처음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코딩과 CS (Computer Science) 지식이 전무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고려대학교에 합격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이 정말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노력의 영역과 재능의 영역 중 어떤 영역이 비중이 컸는지, 혹은 특별한 방법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럴 때 늘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운도 있었고 어느 정도 재능도 있었을 수 있겠지만, 6개월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

제가 보낸 ‘6개월’은 제 옆에 있는 친구들은 어렴풋이 알고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꿈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고, 선물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보냈던 ‘6개월’ 을 이 글을 읽어보시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직접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사는 나의 인생의 주체를 나로 바꾸기까지는 ‘6개월’이면 충분합니다.

Chapter 1. 내 인생의 전환점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흔히 말하는 막장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저의 성적은 1학년 때에 비해서 바닥을 치고 있었고, 인간관계 또한 박살이 났으며, 부모님과 매일 다투고 혼났습니다. 이러면 안되는 걸 속으로 알면서도 현실을 회피하고 그냥 암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마 고등학생 분들, 그리고 고등학생을 경험해보았던 분들도 공감할 만한 순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2022년 7월 9일, 제가 정말 많이 사랑했던 저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저를 늘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왜 나는 할아버지께 스스로 자랑스러워 자랑한 순간들이 없었을까 그렇다면 조금 더 할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손주가 돼서 더 많은 웃음 선물 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하였습니다.

늘 외면 하였던 현실들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정체성과 자신감을 잃은 제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인생의 정체성을 찾고자, 힘든 여행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대학이라는 사회와 학교의 암묵적인 Matrix를 깨고자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해킹이라는 분야가 저에게 너무 멋있게 다가왔고, 그 분야로 성공하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런 지식도 없었지만, 간절한 목표와 꿈 하나 만으로 저희 부모님을 설득 시키기 위해서 PPT를 만들어가게 되었고, 대학을 안 가고 스스로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설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준비하기까지 저는 약 2주라는 시간 동안 오직 설득에만 매진을 하였으며, 모든 상황에 대비를 하였습니다.

길고 긴 설득 끝에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시기로 하였지만, 몇 가지 조건들을 제시하였습니다.

  1. 부모님은 어떠한 금전적 지원을 해주시지 않을 것
  2. 6개월의 시간 안에 증명하지 못했다 판단이 든다면 수능을 공부해서 대학을 갈 것
  3. 내가 말한 계획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행할 것

이러한 조건들까지 저는 수락을 하였고, 이렇게 최종적으로 부모님께 대학을 안 가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후 2학년 2학기 개학이 다가와서 학교를 간 저는 1학기 때와 다른 모습으로 친구들께 나타났습니다. 저는 1000페이지가 넘는 전공 서적을 가지고 늘 몰두하였습니다. 주변의 선생님들과 친구들께도 저의 목표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신념을 말하였고, 저의 소신대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은 저를 인생을 포기한 사람, 공부하기 싫어서 그냥 노는 사람으로 취급을 하였고, 저를 무시하는 태도로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저의 목표들과 큰 꿈들을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국제 해킹 방어 대회에서 뛸 수 있고 인정 받는 세계적인 화이트 해커가 될거야”

주변 사람들은 당연히 이러한 말들에 비웃었고, 무시하였고, 의심하였지만 오히려 저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의 목표와 꿈들을 말하다보니, 매일매일 저는 목표와 꿈들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늘 된다는 믿음과 희망으로 오히려 전보다 더 행복했던 매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알리고, 꿈과 목표를 말하고 다니니까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후에는 기존에 느끼지 못 했던 ‘나만의 정체성’ 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Chapter 2. 노력은 결과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매일 같이 사람들에게 저의 목표를 말하게 되니까 정말 얼른 잘하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크게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뭐부터 공부를 해야 할지는 몰랐고 막막했지만 제가 스스로 정하였던 공부 규칙대로 매일 공부하며 6개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의 공부 규칙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시간으로 공부하지 말자
  2. 잘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객관적인 커리큘럼을 꾸준히 만들고 수정하자
  3. 너무 집중이 안되고 머리가 아플 때는 핸드폰을 보지 말고 차라리 멍을 때리자
  4. 깨어있는 시간에는 내 모든 신경을 나의 공부에만 쏟자
  5. 침묵을 즐기자

6개월을 남들과 다른 공부를 하고, 매일 같이 밤을 새가며, 답이 없는 길을 걸으면서 느낀 하나의 큰 교훈이 있었습니다.

“노력은 결과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저는 1학년 때부터 2학년까지 공부하면서 했던 가장 큰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남들에게 인정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결과가 안 좋게 나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공부를 하다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했다 정도라도 기억 당하고 싶어서 ‘노력’ 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 다들 의문을 가지시겠죠.

“노력만 하면 되는거 아니야?”

제대로 된 노력이면 분명 맞겠지만 제가 했던 노력은 몸만 힘든 노력이였습니다.

늘 책상에 앉아서 시간만 재면서 공부하는 척을 하려 했고, 앉아는 있지만 신경은 오로지 내가 몇 시간 한지만 중요해서 막상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 있는 과목만 공부하고, 같은 것만 풀면서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도 보완이 안되고 몸만 피곤해지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즉, 노력이 아니라 그냥 몸만 힘든 노동을 노력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저는 스스로는 공부 한 것 같은데 막상 머리에 들어온 것은 없게 되면서 제 스스로 공부를 못한다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저는 나만의 공부를 하게 되면서 결과를 만들기까지, “노력이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의미 없는 노력만 한다고 해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는 큰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의 공부 규칙은 공부를 나름대로 즐길 수 있고, 집중을 할 수 있으며, 모르는 것을 공부할 수 있는 규칙으로 6개월을 정말 가치 있게 만들어준 공부 규칙이었던 것 같습니다.

Chapter 3. 6개월이라는 시간의 밀도

2022년 8월부터 시작하여, 2023년 2월까지 저는 C언어, Python, Web 언어들을 포함한 약 20가지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게 되었고, 해킹 분야 중 Pwnable(시스템 해킹), Web Hacking, Reversing (역공학), Crypto (암호학) 등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인공지능, 웹 개발, 네트워크, 게임 개발 등의 지식도 얻게 되었습니다.

2월이 다가왔을 무렵에는, 드림핵이라는 온라인 해킹 강의 사이트에서 존재하는 모든 커리큘럼을 전부 다 수료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과의 약속하였던 6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저의 외부 실적은 아직 단 한 개도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PoC에서 주최한 해킹 캠프 모집이 시작되었습니다. 6개월이 끝나기 전에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도전이었고, 저는 정말 열심히 자소서를 적게 되었습니다.

해킹 캠프는 전국에서 많은 지원자들이 지원을 하지만 전국에서 단 60명만 선발하여, 진행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캠프입니다. 해당 캠프에 지원을 하기에 저는 아무런 실적도 없었지만 저의 간절함과 지식들을 길게 쓰면서 어필하였고 합격 소식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간절함을 알아봐 준 덕분인지, 해킹 캠프의 참가자로 선발 되었고, 저는 후회 없이 즐기고 오자는 마음으로 캠프를 가게 되었습니다.

캠프에는 해킹을 멋있고,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각자의 개성들이 있었고, 저 말고 해킹을 하는 사람들을 직접 처음 보았던 순간이기에, 배운 것 또한 많았습니다.

그리고 캠프에서 제 인생의 Turning Point 를 만들어 주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해킹 캠프를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을 안 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캠프에서 만난 형들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 분들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까 더 깊은 공부와 대학의 필요성을 점점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가고 공부를 깊게 하신 분들의 실력은 정말 대단하였고, 저에게 어느 순간 선망의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대학에 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채로 해킹 캠프에서 저의 실력들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증명하니까 해당 캠프에서 Top4에 선정이 되면서 첫 해킹 상(Sincere Hacker 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상은 아니었지만, 저의 6개월의 시간이 머릿속을 쭉 스쳐가면서 나름의 보상을 받은 순간이었기에, 그 당시에는 정말 벅찼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캠프가 끝나고 저는 대학의 필요성을 정말 몸소 깨닫게 되었고, 하고 싶은 해킹 공부를 뒤로 한 채로, 저는 수능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Chapter 4.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라보았던 나의 수험 생활

해킹 캠프에서 만난 형들의 학교는 대부분은 고려대학교 세종 캠퍼스 인공지능 사이버 보안 학과였습니다. 저는 3월부터 수능 공부를 시작하였고, 수능까지는 8개월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형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목표 수능 등급은 전부 1등급 이였습니다. 제가 처음 해킹을 시작할 때 했던 저의 방식으로 저의 목표와 꿈을 한 단계 더 높여서 말을 하고 다녔고, 제 스스로도 8개월이라는 시간밖에 없지만 분명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3월 모의고사에서는 전부 6~7등급을 받았던 저의 성적이 수능 공부를 한지 2달 만에 5월 모의고사에서 국, 수, 영 2, 2, 3 을 받게 되었고, 그 당시에 수학 기하 과목에서는 만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들 재능이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 2달 동안 저는 해킹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저의 공부 방법을 가지고, 수능 공부를 연구하듯이 몰두했으며, 오로지 온라인 강의 하나 만을 의존하면서 독학하였습니다.

그렇게 수능 공부를 하던 와중에 갑자기 해킹 캠프에서 친해졌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국제 해킹 방어 대회인 사이버 공격 방어 대회(CCE)에 같이 나가자는 연락이었습니다. 제가 앞서 언급은 하였지만 해킹을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국제 무대에서 뛰는 화이트 해커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연락이 오니까 그 당시에 꽤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만약 본선(세계 순위 10등 안)을 가지 못하게 된다면 다시 마음을 잡고 수능을 공부하고, 본선을 가게 된다면 재수를 각오하고 국제 무대를 한번 뛰고 오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T4B 라는 팀과 다 같이 8시간 동안 예선을 치루고 기적적으로 세계 9위라는 순위에 오르게 되면서 국제 무대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생님과 친구들은 다 같이 특기자 전형을 준비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고, 많은 조사와 고민 끝에 특기자 전형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당시에 저는 특기자 전형으로 쓸 수 있을만한 실적이 단 한 개도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4개월이라는 시간밖에 남지는 않았음에도 4개월을 전부 커리어를 채우는 것에 집중만 한다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믿음 가지고 시작을 하였습니다.

재수를 할 수도 있지만, 제가 꿈 꿔왔던 순간이었고, 실패하더라도 경험으로서 남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에게 연락이 왔던 친구 또한 특기자 전형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 친구에게 여전히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굉장히 객관적으로 저의 커리어를 평가하려고 하였습니다. 한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제가 정말 대학에 붙기 위해서는 어떠한 커리어와 실적이 필요한지 냉정하게 정리를 하였습니다.

세계 대회 입상, 전국 대회 대상, 세계 랭킹 등재 등등 많은 커리어들을 나열하였고, 이 모든 커리어를 전부 얻기 위해서 4개월 동안 매일 같이 대회를 다니고, 도움이 될 만한 실적들을 얻기 위해 하루도 쉬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게 대학 원서를 넣기 직전에는 세계 랭킹 등재, 전국 대회 대상, 세계 대회 본선 진출권 등등 정말 많은 실적들과 커리어가 쌓였고, 제가 특기자 전형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KAIST,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숭실대학교 등등 많은 학교들을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시 원서 6장을 고려대학교(서울), 한양대학교, 숭실대학교, 고려대학교(세종), 가천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넣었고, 과학 기술원에는 KAIST, UNIST, DGIST, GIST를 넣게 되었습니다.(과학 기술원은 수시 원서 6장에 포함이 안되기 때문에 자유롭게 지원이 가능)

과학 기술원에는 자소서를 포함한 특기 자료를 정말 길게 써야 했는데, 대표적으로 KAIST에 냈던 특기 자료는 300장에 가까운 분량의 특기 자료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KAIST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들의 특기자 자료들도 정말 길게 써서 제출을 했어야 했고, 모든 특기 자료는 1500장에 가까운 분량의 포트폴리오가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수시 원서 제출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자면, 고려대학교(서울)는 추가적인 체력 검사를 했어야 했습니다.

국민 체력 4가지의 항목에서 전부 만점이 나와야 하지만 고려대학교 서류 점수에서 큰 감점을 받지 않고 시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가지 항목 중 유연성에 큰 감점이 있었고, 이걸로 인해서 고려대학교(서울)에 지원조차 못할 뻔 하였습니다.

원서 접수 마감 기한 이전까지는 재 시험이 가능하였지만 하루 종일 컴퓨터만 하고 있었던 저의 유연성은 마이너스였고 통과를 하기 위해서는 약 20cm 에 가까운 결과를 단 3일 만에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달려왔던 노력들을 생각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네요..)

3일 동안 강도 높은 스트레칭으로 매일매일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냈고, 그 결과 마지막 재 시험 당일 날 유연성을 20cm 가까이 끌어 올려서 고려대학교(서울) 기준 만점을 받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고려대학교(서울)에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Chapter 5. 꿈의 크기가 크면, 깨져도 그 조각의 크기 또한 클 것

10개의 원서를 제출하였지만 무려 8개가 광탈 하는 대참사를 겪게 되었습니다. 고려대학교(서울), 고려대학교(세종)만을 남겨두게 되었고, 이 두 개의 학교는 모두 1차를 붙게 되었지만 제 불안감은 여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면접은 저의 가장 큰 강점이라 판단을 하였고, 면접을 준비하면서 될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저의 의지와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였습니다.

면접을 준비할 때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학교에 지원한 동기, 마무리 멘트까지만 딱 준비를 해갔고 생기부나 특기 자료에서 물어볼 수 있을만한 것들에 대해서는 답변 흐름만 딱 기억하고 갔습니다.

저는 대학교 이전에도 회사 면접, 현재 소속 되어있는 해킹 팀 면접, KITRI Best Of the Best WHS 면접 등등 많은 면접들을 해본 경험이 있었고, 이러한 면접들을 해본 결과, 면접을 할 때 예상하지 못하는 질문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모든 답변들을 외우는 방식대로 하게 된다면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나왔을 때 머리가 하얗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면접관이 하는 질문에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언제나 차분함을 잃지 않기 위해 면접을 진행하는 순간에도 생각을 정리하려고 많이 노력하였습니다.

고려대학교(서울), 고려대학교(세종) 두 개의 면접을 모두 끝난 뒤에도 떨어져도 낙담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편하게 두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2023년 12월 15일 모든 수시 최초합들이 발표되는 날, 저는 고려대학교(서울), 고려대학교(세종) 두 개의 학교 전부 다 합격을 하였고, 지금은 현재 고려대학교(서울)에 문서 등록을 완료하여서 이번 고려대학교(서울) 24학번에 입학하였습니다.

사실 합격했을 당시에는 꿈인가 싶었습니다. 2학년 때는 대학을 안 가겠다고 말을 하고 다녔던 제가 이제는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스스로 돌아보면 정말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에는 미처 담지 못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정말 많은 도전을 하였고, 여러 꿈들을 항상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처음부터 말했던 꿈과 도전들이 한번도 성공했던 적은 없던 것 같습니다. 지속적인 실패를 하였고, 만족하지 못한 결과의 연속이었지만 많은 시도들과 저의 꿈들이 깨지면서 생긴 조각들이 이제는 하나의 결실로 만들어져 저에게 선물로 다가온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계속 도전하고 깨져 보세요. 절망스럽고 힘들긴 하지만 완벽히 준비된 순간들은 늘 없기에 도전하며 스스로를 다듬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에필로그

저는 대학교에 붙었지만 여전히 많은 공부와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을 즐기려고, 행복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수험생들을 포함한 많은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수험생이었을 때는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다 느끼고,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별거 아닌 일로 우울하고 어두웠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고는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가장 건너뛰고 싶은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시간은 흐르고 있고, 지금의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고 기록되어 남을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공부하라고, 피 터질 만큼 노력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지금 살고 있는 순간을 나중에 후회하고 있을만한 순간으로 만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놀아도 정말 예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고,

공부를 하면 가장 뜨거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고,

각자의 꿈들을 이룰 수 있을 때는 가장 벅찬 순간들로 남을 수 있기를 제가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박도연 (p6rkdoye0n)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Dear. 하늘에 계신 외할아버지

할아버지! 저 도연이에요! 잘 지내고 계세요? 아프진 않으시죠?

할아버지 저 이제 벌써 성인이에요. 어른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되어가는 과정 같아요. 대학 합격증 직접 손에 쥐어 드리고 싶었는데 그거 하나 못 한게 좀 아쉽네요 😂

제가 지금까지 할아버지께 받은 사랑만큼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싶어요. 할아버지께 늘 사랑 받고 있다 라는 기분을 왜 그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사랑하다는 말을 왜 해본 적이 없을까 스스로 많이 원망하고, 후회도 했어요. 효도와 사랑은 어른이 되면 그때 돌려주면 되겠지 싶었는데,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늘 핑계로 가득 차 있고, 정직하지 못했던 저의 유년 시절에도 할아버지께서는 저를 누구보다 사랑해주시고, 믿어주셨어요. 그런 순간들이 저를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고,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어요. 감사합니다.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진짜 절망스럽고 포기하고 싶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 꼭 지켜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지금까지도 정말 열심히, 멋지게 살고 있어요! 양심에 어긋나지 않고 착하고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대학 합격했을 때도 할아버지 생각 먼저 났어요. 드디어 할아버지 앞에서 술 마시면서 합격증 자랑할 수 있는 순간이구나. 할아버지 멀리 계셔도 엄청 기뻐하고 계시겠지 저보다 더 행복해 하시겠지 생각했어요. 그러셨다면 저는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할아버지 너무 보고 싶지만, 저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서 다 끝나고 할아버지 곁으로 갈게요! 아직 부모님께도 받은 사랑에 비해서 돌려드리지 못했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큰 과업도 남아있고, 아직 남아있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도 많이 만들지 못했어요.

일들이 끝나고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제가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게 힘들었고, 어떤게 행복했는지 같이 막걸리 마시면서 다 ~ 들려드릴게요. 제 자랑만 하더라도 그때는 꼭 들어주세요. 저도 못 들어드린 할아버지 얘기 다 들어드릴게요!

자주 못 뵈러 가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바빠도 자주 뵈러 갈게요!

하고 싶은 말 엄청 많지만 할아버지 뵈러 가서도 해야 할 말 있어야 하니까 여기서 마무리 할게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합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손주, 도연 올림.

✍ Medium: Park DoYeon | 🕊️ Twitter: p6rkdoye0n | 📧Mail: parkttule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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