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시위하기, 시위하면서 일하기

씽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Parti Co-op
6 min readOct 31, 2018

#노마드대잔치_feat정치개혁 시위 참가 후기

너무 바빴던 2017년 연말

관심 갖고, 참여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은데, 그럴 짬이 도무지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지난해 연말이 그랬다. 새로운 회사 업무에 적응하랴, 작심하고 신청한 수업 과제하랴. 빨리 2017년이 가기만을 바랬다. (“누구라도 다 그랬을 것 같기는 하지만”)

“지난 두 해 사이 참 많은 일들을 우린 겪어 온 것 같아요. 누구라도 다 그랬을 것 같기는 하지만” — 루시드폴 8집 ‘안녕’의 이 가사, 엄청 공감 됐다. 2017년 안녕…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노마드 시위를 한다구요?

내가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프로젝트 정당 ‘우주당’이 함께 하고 있는 ‘정치개혁 공동행동’도 관심은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들여다보지 못한 이슈였다. 선거제도를 바꾸자는 주요 메시지는 알고 있었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뭔지, 왜, 어떤 정당이 묵묵부답인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어가는지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주당에서 재미난 시위를 기획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름하야 ‘노마드 대잔치’. 국회의사당 주변 스타벅스에 모여서, 각자 일을 하면서 시위를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공교롭게도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옆, 그리고 국민의당, 바른정당 건물 1층에 스타벅스가 있어서 시위장소로 스타벅스를 골랐다고 했다.

노마드 시위러를 모집하는 포스터와 글

듣자마자 ‘오, 이거라면 나도 가서 할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바빠서 현장 집회에 갈 순 없지만, 일을 하면서 이슈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뭔가 힘을 보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참여 신청을 눌렀다.

진짜 열심히 ‘일’한 노마드 시위러

12월 21일, 첫 시위장소로 지목된 바른정당 1층 스타벅스에는 총 6명이 모였다. 논문을 완성하고 있는 대학원생인 분, ‘월간 퇴사’,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 분, 정치개혁 이슈를 열심히 캠페인하고 계신 비례민주주의연대의 공동대표 하승수 님 등이 모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피켓에 메시지를 작성해서 노트북에 꽂은 다음, 인증샷을 우주당 플랫폼에 올렸다. 그리고, 우린 각자 열심히 일을 했다. 옆에서 하승수 님이 너무 열심히 일을 하셔서 나도 집중력을 최대한 높여 일했다.

노마드대잔치 인증샷 보러가기 👉 http://wouldyouparty.govcraft.org/events/48

점심시간, 스벅의 이목을 집중시키다

점심시간이 되니 계산대 뒤로 긴 줄이 생길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사이로 우리의 시위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어떤 분들은 가까이 다가와서 피켓에 적힌 문구들을 읽어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 시위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양,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하고 허리를 꽂꽂히 세워서 ‘지금 일하고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보냈다.

떨리는 순간들도 있었다. 행진을 하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는 시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위’라고, 긴장이 된 모양이다. 혹시 누군가 공격적으로 다가오면 어떡하나, 스타벅스 스탭이 문제제기를 하면 어떡하나…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간에 칼로 과일을 깎아가며 파시는 독특한 상인 분이 돌아다니셔서 겁먹은 순간은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이 대단히 잘 됐다. 내가 평소에 좀처럼 가지 않는 ‘여의도’라는 공간이 주는 신선함, 피켓 시위가 주는 묘한 긴장감이 오히려 업무 집중도를 높여준 것 같다. 또 가끔씩 나누는 수다 덕분에 지루할 새 없이 하루가 지냈다. 스타벅스의 다른 사람들이 정치개혁 피켓을 달아놓고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저 사람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위도 잘 되고 일도 잘 된 것 같다.

일이 잘 안 되면, 가끔 생각날 거 같다

소규모 시위라서 좋았던 시간

대규모 집회에 가면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렇지만 가끔은 좀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다. 예전에 혼자 어떤 집회에 갔다가 아무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온 적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루하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한 명 한 명과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던 점이 특히 좋았다. 마치 직장 동료들과 점심시간이나 커피 타임에 수다를 나누듯이 시간 부담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

이번 ‘노마드 대잔치’는 국회 앞에서 ‘Occupy 국회’ 시위가 연일 진행되는 와중에, 연말이 너무 바쁜 사람들끼리 만든 작은 시위였다. 하지만 정치개혁에 관심이 있고, 뭐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확인한 자리에서 나는 신뢰감 같은 걸 느낀 것 같다.

‘정치는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뭐라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어쩐지 힘이 좀 났다. 그리고 이들을 어떤 자리에서든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에 2018년이 기대 됐다다.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의 이야기로 정치하는, 새롭고 즐거운 시도. 올해는 과연 어떤 일이 펼쳐질까!

청년B 에서 만든 노마드시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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