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리모트를 시작하고 받는 세 가지 질문

Arthur Kim
Sep 30, 2019 · 7 min read

저의 부모님께서는 4년 전 제주도에 집을 한 채 지으셨습니다. 전국의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께서 제주도에서 2년간 일을 하신 뒤, 노년을 보낼 장소로 선택하신 곳이 바로 제주도였습니다. 부모님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완성된 해 첫해 명절, 아름다운 사계 해변과 산방산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남은 회사 일을 처리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대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장소에서, 하고 싶은 시간에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요. 그런데 아직 30대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올해, 생각보다 그 기회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이제 Pixelic 팀에 조인한 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Pixelic 팀은 (현재) 7명 전원이 100% 리모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모든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리모트가 좋다고는 하지만… 정말 일이 돼?

저도 실제로 리모트로 일해 보기 전에는 “할 수만 있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무척 이상적인 방식이지만, 아직 현실과는 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막상 리모트를 해 보고 나서 저는 주변에서 자주 물어보는 세 가지 질문들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Q1. 팀원이 옆에 있지 않은데,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나요?

네, 생각보다 잘 됩니다. 그렇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동료가 옆자리에 앉아 있어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리모트 팀이라고 해서 커뮤니케이션이 특별히 더 어렵거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리모트 팀이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우리라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도 필요할 때 자리로 찾아가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Synchronous Communication) 불가능하기 때문일 겁니다.

사무실에서 모여 일하는 회사에서도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실시간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깊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회의하기 전에는 할 얘기들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서 들어가져요. 최근에는 많은 회사가 Slack을 쓰게 되면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더 나은 방식이라는 강박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Slack을 쓰며 일하는 속도가 빨라진 부분도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메일보다 빠른 호흡으로 날아드는 메시지에 숨 막혀보신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Pixelic 팀은 오히려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Asynchronous Communication)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내가 동료에게 메신저나 메일을 통해 연락했을 때 즉시 답장이 올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시 답을 듣지 않아도 일이 되기 위해서는 동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전에 깊이 고민하고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하여 전달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이야기는 줄어들고 핵심만을 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동료가 나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Slack을 쓰고, 회의는 Zoom을 이용해서 얼굴을 보고 진행합니다. 그러나 얼굴을 맞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동료와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이란 나와 동료들이 같은 페이지에 있는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지속해서 확인하는 과정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Q2. 동료가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지 않아요?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두 사무실에 출근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만큼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과는 우리가 얼마나 좋은 결과물을 내는지에 달려있습니다. 동료 간의 신뢰는 서로가 만든 일의 결과를 통해 쌓여갑니다.

스스로도 리모트로 일하며 리모트 근무자들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Basecamp 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의 창업자가 쓴 책, <Remote> (한글명: 리모트, 사무실 따윈 필요 없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세일즈맨들이 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다고 해서, 세일즈팀의 리더가 팀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지는 않습니다. 세일즈맨들은 사무실 밖을 나가 고객을 만나며 매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매출이 곧 신뢰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팀의 성과가 세일즈맨들처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코드를 작성하거나, 디자인하거나, 회계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모두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기 일을 합니다. 회사와 개인이 고민할 부분은 각자의 목표가 회사의 큰 목표 달성에 기여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요?

Q3. 집에서 일하면 게을러지지 않나요? 재택근무 해보니 난 잘 못하겠던데…

당신은 특별히 게으른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을 게으르게 만드는 환경만이 있을 뿐입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일하다가 침대를 보면 눕고 싶고, 냉장고를 보면 괜히 열고 싶습니다. 한때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왠지 모르게 늘어지고, 하려고 했던 업무를 다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사무실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것이 없고, 집에는 책상 앞에 앉아있지 않아도 할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평소에 주로 집에서 업무를 처리합니다. 처음 리모트를 시작했을 때는 침대가 있는 방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전 회의가 끝나면 일단 침대에 누워서 다음 할 일을 생각하다가 잠이 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아, 침대가 없는 방으로 책상과 모니터를 옮겨왔습니다. 새 사무실(!)로 옮겨온 뒤로는 이전보다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는 체력과 비슷해서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온종일 수 많은 본능의 유혹에 노출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금씩 의지를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지를 짜내지 않아도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침대와 의도적으로 멀어지기 위해 업무 공간을 옮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소하게는 일을 할 때는 헤드폰을 쓰고, 일을 끝낼 때 헤드폰을 벗는 작은 의식 Ritual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편해서가 아니라, 일을 더 잘 하기 위해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고 나면 “그게 된다고?” 하시던 분들도 이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일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주십니다. 서로가 일하는 장소가 다를지언정, 일하며 하는 고민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Pixelic 팀은 디자이너가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Pixelic 팀이 리모트로 일하는 것은 우리가 전 세계의 사용자를 이해하고,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사랑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리모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편해서가 아니라,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리모트로 일합니다.

픽셀릭 (Pixelic)

픽셀릭 이야기

Arthur Kim

Written by

COO @ Pixelic | 제품팀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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