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지 않는 삶

어 렸을 때 엄마는 두살 아래인 내 동생과 나에게 항상 같은 간식을 주셨다. 같은 양으로. 난 언제나 나중에 먹으려 남겨놓았고 동생은 언제나 받은대로 먹어버렸다. 그러다 상해서 버리기도 했고, 상하기 전에 엄마는 나에게 내 간식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동생에게 양보해주기도 했다.
또 다른 얘기로는…
내 딴에는 굉장한 목돈을 들여서 브랜드 좋고 정말 화려한 드레스를 샀다. 아마도 그때 한창 유행했던 스탈이었던듯 하다. 난 상당히 씀씀이가 짠편인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그런 거금을 내고 유행을 타는 드레스를 사고싶었는 지는 잘 모른다. 아니 기억도 안난다. 어쨌든 문제는 나는 내 물건들을 꽤 험하게 다루는 바람에 오래 못쓰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이 드레스는 꼭 알맞은 때에 제대로 빛을 볼 수 있을 때 그럴때 입어야지… 하며 아껴두었지만 그런 때는 오지 않았고 1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결국에는 Salvation Army에 기부해버렸다.
나에게는 그런 경우들이 정말 흔하다. 정말 맘에 들어서 산 향초, 향기로운 비누, 향수 등등을 샀다가 너무나 오래동안 아끼는 바람에 색이 바래고 향도 사라지고… 큰 기대와 기쁨을 갖고 산 물건들을 너무나 아껴서 기대한 즐거움을 느끼기 전에 물건들이 변해버린 것이다.
물론 물건들을 함부로 쓰고 낭비하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물건들은 물건나름대로 본연의 용도가 있고 내가 처음에 구입한 이유가 있는데 그 용도와 이유에 충실한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얘기다.
(이 건 다음에 다시 할 수 있는 얘기이지만) 난 내 자신에게 씀씀이가 상당히 짜다. 아마도 검소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남편, 댐군은 좋은 옷을 입히고 싶고 좋은 악세사리를 사주고 싶지만 내 자신에게는 그렇게 관대하지 못하다. 맨날 코스트코에서 파는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나에게 작년 내 생일에 프라다 로퍼를 사주었다. 그전까지 내가 샀었던 신발보다 몇 배나 비싼 신발이다. 예전의 나 같으면 아마도 신지 않고 이쁜 프라다 박스에 가만히 뒀을 거다. 프라다는 박스마저 이쁘더라. 그렇지만 이 신발은 팬시한 구두가 아닌 편하게 매일 걸을 수 있는 그런 로퍼였기 때문에 그렇게 아끼지 않고 매일매일 신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사실 좀 부담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비싼 신발을 매일 신고 장을 보고 산책을 다니고 출퇴근을 해도 되는 건가 하고. 그런데 한 일주일 정도를 신은 뒤 사기 전에도 편했던 그 신발은 정말 걸을 때마다 나를 살짝이나마 기분 좋게했다. 신발이 이쁘다고 코멘트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프트한 양가죽 구두는 처음 신어 본 나라서 구두도 이렇게 편하고 또 스타일리쉬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엄마는 아직도 그렇게 하시지 못한다. 비싸고 값진 건 아껴하신다. 엄마는 나한테 ‘프라다 구두를 그렇게 막신어도 되는 거냐’고 하시지만 그런 엄마한테 난 이렇게 말씀드린다. ‘이 모델은 이렇게 신으라고 이렇게 생긴거야’라고…
물론 (비싼) 물건이 행복감을 안겨주지는 않는다. (가격과는 상관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갖는다는 그 자체로 행복감을 얻을 수는 있다. 아무리 비싼 거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쓸모있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나에게 행복감을 줄 수 없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나에게 실용적인 아니면 정신적인 쓸모가 있다면, 그리고 그 물건을 아끼지 않고 내가 원했던 용도로 부담을 갖지 않고 지금 쓴다면 아마도 조금 더 기분 좋은 하루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