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회고

qodot
11 min readJan 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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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첫 취직 이후, 올해가 어쩌면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던 해가 아닐까 싶다.

다니던 곳을 4월에 나왔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뭔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기로 결정했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좀 더 넓은 시야로 일을 보는 연습, 내 할 일에 매몰되지 않고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연습, 나와 내 주변 동료들이 회사에서 덜 외로울 수 있도록 적절하게 관계를 쌓는 방법 연습 등등… 하지만 가장 큰 것은 성장에 대한 욕구와 회의 사이에서 어느정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퇴사 후 길게 쉬었는데, 이 때도 일을 대하는 내 마음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밑에 좀 더 자세히 써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속초에 한 달간 머물 때, 지금 대표님의 링크드인 메일을 받았다. 물론 그동안 받았던 다른 대표님 혹은 리쿠르터분들의 이메일도 다들 친절하셨지만, 뭐랄까… 그 이상의 섬세함? 조심스러움?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그 점에 팍 꽂혔다. 운명처럼 시기적절하게 고민하던 문제를 스스로 풀어볼 기회가 온 것인지, 아니면 고민을 계속 하고 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렇게 몇 번의 미팅을 진행하고, 7월에 나는 회사의 두번째 구성원이자, 살면서 처음으로 코파운더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꽤나 급진적인 결정이었다. 당시 고민하던 결정 후보들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선택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절대적으로 놓고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다른 거부감이나 불안감 없이 쿨하게 결정했다. 물론 지금도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뒤로 정말 다이나믹한 시간을 보냈다. 살면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오자마자 서버와 웹을 새 기획으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배포하고, 기존 서비스의 클라우드 계정과 데이터베이스를 마이그레이션했다. 이게 끝나기 무섭게 이번엔 앱을 기획해 런칭하고, 이제 중요한 다음 프로젝트를 1월 첫째 주 까지 내놓으려고 준비중이다. 전체적인 방향성을 같이 정하면서 개발을 해야했기 때문에 정말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조금씩 유저가 늘어가는 재미, 빠르게 피드백을 반영하는 재미, 항상 부족한 리소스 때문에 우선순위를 깊게 고민하는 재미, 내가 결정하는 문제 하나하나가 회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재미, 그리고 (행복회로를 풀가동하며)팀원이 늘어나면, 내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어떤 사람이 될지 상상하는 재미… 물론 동시에 걱정도 많아진다. 내가 지금 내린 결정이 나중에 회사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이 코드가 나중에 프로젝트의 확장을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이 합류하고 나면 혹시 나랑 충돌이 있지는 않을까 등등… 그래도 지금은 확실히 재미있다. 올해도 기대된다.

생활

속초

퇴사하고 쉬는 동안 속초에 한 달 있었다. 뭔가 지친다는 느낌도 있었고, 일 자체에 대해 허망한 느낌도 있었다. 열심히/잘 하고 싶다는 마음과 만사가 공허하다는 마음의 충돌은 살면서 계속 가져왔던 문제의식(?)이었다. 퇴사 즈음 이 고민은 심해졌고, 결국 살면서 처음으로 다음 회사를 결정하지 않은 채 무대책 퇴사를 하게 되었다. 바다 근처에 가서 그냥 책 몇 권 읽고 일기나 쓰자는 마음이었다. 막상 가보니 바다 보다는 호수가 더 좋았다.

물론 그렇게 호수 곁에 한 달 있었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았다. 애초에 추상적인 문제를 들고 갔으니 뭔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리가 없지. 다만 그 와중에 확실한 것이 있다면,

  • 내가 무슨 일을 하던 그건 내 사명도 의무도 아닌 일종의 가벼운 배역에 불과하다는 사실
  • 하지만 난 어차피 살거고 또 계속 일을 할 것이라는 사실

이다. 이 두가지 사실에서 도망치지 않으면서 유지 가능한 나름의 태도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어느정도는 정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후암동

퇴사 즈음까지는 논현동에 살았다. 하지만 삭막한 강남구에 싫증이 났고, 다음에는 꼭 귀여운 동네 용산구 후암동에서 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 회사를 구하면서 후암동에 집을 구했다.

교통은 불편하지만 후암동-해방촌 생활은 만족스럽다.

MBTI & 사주

원래 혈액형/별자리를 포함해서 이런식의 성격 유형론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강유미 덕에 MBTI 컨텐츠를 즐겁게 소비했다. INTP 영상 보면서 너무 부끄럽길래 아 내가 INTP이구나 라는 걸 알았다ㅋㅋㅋ

기세를 몰아 살면서 처음 사주까지 봤다. 5만원을 내고 30분간 이야기를 들었는데 꽤 재미있었다. 몇 개는 소름돋게 맞추시길래 왕놀라기도 했다. 둘 다 꿀잼이었음.

운동

올해 초 부터 4월까지 PT를 받으면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 하는 동안 확실히 좋았다. 하지만 속초 여행과 함께 그만 두면서 아직까지도 다시 시작하지 않고 있다. 요새 체력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빨리 다시 시작해야지.

글쓰기

2021년 초 부터 개인 블로그의 글을 친한 몇 명에게만 뉴스레터 형식으로 발행 했었다. 퇴사 즈음 방황(?)하던 시기에 뭐라도 꾸준히 써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몇 달간 1주일에 하나씩 꾸준히 썼지만 취직과 동시에 다 때려쳤다 ㅋㅋㅋㅋ 별것도 없는 글 읽어준 사람들에게는 너무 고맙다. 올 해 바로 다시 또 시작하려고 한다.

독서모임

소립자: 미셸 우엘벡

저번 회고에도 넣긴 했는데 1월에 읽은거니까 그냥 또 포함시키기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미셸 우엘벡의 대표작. 거의 8년만에 다시 읽는데 처음 읽을 때 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나서 읽으니 더 좋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2020년 수상작인데 2021년에 읽었다. 수록작들의 주제 의식이나 감정선이 전반적으로 너무 비슷하다고 느꼈다. 당연한건가 싶기도…

섬: 장 그르니에

민음사 장 그르니에 선집 개정판이 나와서 싹 다 샀는데, 속초 놀러갈 때 들고 갔다. 언제 읽어도 좋지만 특히 여행에 최적화된 에세이인 듯.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 이승연

책 자체에는 실망했지만 이 책을 선택한 덕분에 인터넷을 많이 뒤져서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뭔가 내 고민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는데, 읽다보니 내 고민은 시스템이 아니라 누구와 같이 사냐 마냐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차별금지법인가

시의성 있는 주제를 골랐고 꽤 유익했다.

한편 — 일

이것도 확실히 주식이나 플랫폼 노동 등의 시의성 있는 글들을 모아놔서 재미있었다. 다만 글 마다의 편차가 좀 있다고 느껴진다.

불안: 알랭 드 보통

13년만에 다시 본 책.

그 외의 책

독서모임 외 읽은 책들. 독립출판 서적을 많이 읽으려고 했었다.

생애최초주택구입표류기

느지막히 집을 사면서 혼자 살게 된 사람의 이야기.

동해 생활: 송지현

속초 간 김에 문우당서림에서 사 읽었다. 재미는 있었다. 미친듯이 놀고 미친듯이 술먹는 걸 젊음을 즐기고 낭만적인 무언가로 소비하려고 하는게 좀 촌스럽긴 했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이주윤

요새 이런 느낌의 컨텐츠가 많아졌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이른바 돈 못버는 필드에 있으면 그냥 돈을 못버나 보다 하고 말았던거 같기도 한데, 요새는 다각도로 삶을 유지하려는 고민들이 많이 공유된다는 느낌.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제목은 오글거리지만 좋았다. SF라는 장르, 그리고 안전가옥이라는 출판사에 흥미도 생겼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어느정도는 SF의 형식을 빌릴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작가가 독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을 모아놓은 에세이인데, 독서모임을 운영하다보니 비슷한 고민들을 많이 했었고, 그래서 아주아주 재미있었다. 작가가 나랑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전에 읽은 조지 오웰의 <책과 담배> 같은 느낌도 났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뭔가 블록버스터 영화화를 노린것만 같은 대체역사물. 오락적인 요소를 잘 이용하면서도 통일이나 휴머니즘에 대한 고민도 하게 만들어서 나쁘지 않았다.

향연: 플라톤

좋음/이데아 충 플라톤은 사랑조차 좋음-탁월함으로 생각한다. 그거까진 재밌었는데 마지막은 뭐지… 진짜… 충격…

음악

Fare Thee Well: Inside Llewyn Davis OST

왕좋아하는 영화의 왕좋아하는 곡. 속초에서 다시 봤는데 넘 좋았다.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시티팝을 비롯한 온갖 AOR, 아시아 소피스티시 팝을 듣다보니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고 넘 재밌어씀

좋았던거 막 늘어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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