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2015 독서목록 87/139 (2015.10.12)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 — 가토 나오키/갈무리

일본에서 유학을 한 친구가 했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실감되지 않았던 것은 지진에 관한 이야기였다. 산이 출렁이고,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던 그 친구의 말이, 나는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니 머리로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어떤 느낌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지진의 피해가 무척 크다. 얼마전 지진해일이 원인이 된 후쿠시마 원전사고도 너무나 큰 재앙이지만, 왠지 일본의 재해가 동정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인 일들과 관련이 있어서 이고, 지진과 관련된 역사에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1923)의 조선인 학살이 있다.

이 책은 회사의 독서모임에서 추천도서로 읽게 되었는데, 책의 서문을 읽자마자 눈물이 나고, 분노감이 일어났다. 그리고 책장의 마지막을 넘기는 순간에 그 슬픔과 분노감은 체계적으로 마음에 자리잡게 된다. 1923년 도쿄 인근의 간토지방에서 리히터규모 7.9에서 8.4 사이로 추정되는 큰 지진이 발생하여,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자, 일본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치안유지에 힘썼으나, 조선인들이 피해가옥과 사체에서 절도를 저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타고, 무리를 지어 생존자들을 습격한다는 소문이 돌아, 일본 민간인들에게는 물론이고, 경찰과 군인들에게 조선인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당했다. 그리고 그 당시 학살에 참여했거나 목격한 일부 일본인들이 죄책감에 당시 상황을 증언했고, 그 역사가 잊혀지며 현대 도쿄거리에서 한국인 증오시위를 벌이고 있는 극우단체들의 몰상식한 행동에 경종을 울리고자 저자 가토 나오키와 뜻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했지? 당시 피해를 입은 조선인들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가있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 피해자들은 우리의 아버지고 형제고, 아들이었을텐데, 우리는 누가 거기에서 피해를 입었는지 조차 알고 있지 못하지 않는가? 그 학살의 역사가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와서 가토 나오키는 이 책을 출판했지만, 우리는 언제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혹은 언론을 통해, 혹은 정부에서, 혹은 이 땅의 지식인들이 간토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피해자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자고 한 것을 듣기나 했는가? 아, 그렇구나.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에 이미 우리 손을 통해서 이념을 이유로 자행한 엄청난 학살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를 못하고 있구나. 아, 그렇구나. 우리는 광주에서 선량한 시민들이 죽어갔어도 그 죽인 자들에게 죄를 묻지도 못하고 있구나. 아, 그렇구나. 우리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영혼들을 바다에 수장시키고도, 그 부모들의 마음도 달래주지 못하고 있구나.

역사를 통해, 지금의 우리는, 후손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넘겨줄 수 있을 것인가? 김구가 테러범이 되고, 수탈이 수출로 바뀌어도 우리는 그저 마음속에 슬픔과 분노만을 머금고 있어노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한줄요약 : “테러를 자행하는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 불령선인不逞鮮人

★★★★★


“자경단, 자경단원 중에는 자경을 넘어서, 학살과 조선인 학대를 즐기는 자들이 생겨났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들의 행동은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있던 자들이 자신의 굴절된 마음을 약자에게 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인 조선인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폭력을 휘두르며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발산시키는 순전히 약자를 겨냥한 가혹행위였다.”

“(자경을 표방한 그 폭력의) 대상은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자여야만 한다. 그런 약자라면 누구든지 상관없이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 는 구마가야에서의 사건에 대해서라기보다 자경단 일반에 대해 쓴 글이다. 여기에 그려진 것은 특정한 시대나, 국가, 지역과 관계없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진 추악함에 불과하다고 말해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증오 연설hate speech이 인터넷상에 난무하고, 인종주의자들이 “조선인은 모두 죽여 버려라”라고 소리치며 거리에 나오는 현재의 일본에서 이 묘사는 묘한 설득력을 가진다. p.113,114

그러고 보면 현재에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우의 행태는 정말 생각해 봐야 할 일이 아닌가?


가토 나오키

1967년 도쿄 도 출생. 호세이(法政) 대학을 중퇴하고 출판사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이며 가시마 주이치(鹿島拾市)라는 필명으로 『사회신보』를 비롯하여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쑨원과 연대하여 신해혁명에서 세계혁명을 꿈 꾼 ‘미야자키 도텐’, 1950년대 도쿄 빈민 생활협동조합 운동 [개미의 모임]에 대한 기록문학을 쓴 ‘마쓰이 도로’, 조선인 여성비행사 ‘박경원’ 등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글을 썼다. 『9월, 도쿄의 거리에서』(갈무리, 2015)는 그의 첫 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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