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5 min readSep 28, 2015

2015 독서목록 50/139 (2015.6.21)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창비/Men Explain Things To Me

페미니즘은 내게는 늘 관심밖의 이야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여성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그런 운동에 관심을 갖거나 동조를 해본 일은 없었다. 나는 늘 여성에 대해 평등한 사고와 태도를 갖고 있고, 남성우월주의자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에게 “우리나라의 남성들은 대부분 청춘의 한 가운데를 나라에 바쳐야하는 운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남성이 조금 더 배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라는 책은 여성이 성적 차별이라는 틀안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희생당하고 있는지를 강한 어조와 논리로 설명하는 책이다. 혼자서 책을 골랐다면 아마도 나는 이 책을 찾지도 않았겠지만 회사에서 함께하는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도서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중적 논리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 최근 인도에서 여대생이 버스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사례와 비슷한 사례들이 열거되는 부분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사실을 떠 올라 딸의 키우는 부모의 입장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성성을 기반으로 폭력이라는 도구로 타인을 지배하는 방식에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아마도 대부분 익숙할 것이다. 남성들도 그런 형태의 지배에 종종 희생된다. 하지만 그것을 여성에게 들이대는 것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우리는 남자이면서, 누군가의 아들이고 오빠이고 남편이고 아빠이기에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가 이 책 한 권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공감하기는 어렵겠지만, 관심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앞으로 관심을 계속 가져봐야 겠다.

한줄요약 :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니들이 알아?”

★★★★☆

이런 사건들은 모두 예외적인 범죄였지만, 일상적인 폭행도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미국에서 강간은 6.2분마다 한건씩 신고되지만 총 발생 건수는 그 다섯배는 되리라고 추측된다. 그 말은 미국에서 거의 1분마다 한건씩 강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 사건들의 피해자를 다 더하면 수천만명이 된다. 여러분이 아는 여자들 중에서 적잖은 비율이 그런 생존자들이다. p.39

미국은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미국은 국제문제에 신경을 끄고 자국의 문제들이나 좀 돌봐야 하는 나라구나.

진화생물학자들이 자주 말하는 공리가 있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한 생물체의 배아가 발달하는 과정은 그 종이 진화해온 과정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총재의 성폭행 혐의라는 개체발생은 IMF의 계통발생을 반영한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그 조직은 미국의 경제적 비전을 나머지 세계에 부과하려 한 악명 높은 브레턴우즈 회의 결과 중 하나로서 제2차 세계대전 말에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IMF는 원래 각국의 개발을 돕기 위해서 돈을 빌려주는 기관으로 설립되었지만, 1980년대에는 이미 자유무역주의와 자유시장주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조직이 되고 말았다. IMF는 대출금을 볼모로 삼아서 온 남반구 국가들의 경제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획득했다. p.71

세계의 권력기반도 인간간의 원초적 폭력의 권력기반과 많이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주에 터진 섹스 스캔들의 울림이 이렇게 큰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세상의 더 큰 관계들, 가령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IMF의 공격 같은 다른 관계들을 보여주는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런 공격은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대대적인 계급전쟁의 일부다. 이 전쟁에서 부자들과 정부 내 부자들의 대리인들은 나머지 사람들을 희생해서 자신들의 소유를 늘리는 데 주력했다. 저개발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맨 먼저 댓가를 치렀지만, 우리도 이제 댓가를 치르고 있다. 그런 정책들이 낳은 고통이 우파 경제학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와서 민영화, 자유시장, 감세의 명목으로 노동조합, 교육제도, 환경,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을 결딴내고 있기 때문이다. p.78

작가의 시각이 매우 통찰력이 있고 예리하다.

레베카 솔닛 Rebecca Solnit

1961년에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캘리포니아 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부터 인권운동, 기후변화 문제,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지권 반환운동, 반전운동, 반핵운동 등의 현안에 참여해왔고,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한 대중적 지식인이다.
지은 책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것으로 『걷기의 역사』와 『어둠 속의 희망』이 있고, 그 밖에도 예술·생태·장소·정치 등에 관한 책 10여 권을 저술했다. 그중에 『그림자의 강(River of Shadows)』은 전미도서상, 래넌 문학상, 마크 린턴 역사상 등을 수상했다.
1988년부터 여러 유력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고, 다수의 전시 카탈로그에 글을 썼다. 현재 《하퍼스 매거진》의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진보적 독립 언론매체인 ‘톰디스패치닷컴’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활발하게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10년 미국의 대안잡지 《유튼리더》에서는 솔닛을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선지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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