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변호사들
2016 독서목록 32/120 (2016.6.4)

[노동자의 변호사들: 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사건 10장면] — 민주노총법률원,오준호/미지북스
노동운동은 나쁜 것일까, 좋은 것일까? 꼭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일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보아온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은 나쁜 것이고,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면 공권력이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막아섰었다. 하지만 내수가 살아나고, 경기가 살아나려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수입이 괜찮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뭘 만들어도 살 사람이 생기지 않는가?
민주노총법률원에서 펴낸 [노동자의 변호사들]은 지난 세월동안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우리나라의 굵직한 노동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사측의 주장이 실려있지 않으니, 읽다보면 약자가 더 억압받는 상황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은 한 쪽의 의견만을 담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힘이 실리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읽을 만 한 책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제는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수준이 되었다. 세계적인 기업도 여럿이다. 이제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도 기업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해줄 때가 되었다. 다른 기업들이 동참하지 않는데, 선뜻 나서서 하기 쉽지 않다면, 결국 그것은 정부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아주 고위직이 아니어도 다들 먹고사는 건 좀 되었으면 좋겠다.
한줄요약 : “노동운동 뒤에 헌신하는 노동변호사들이 있었다.”
★★★☆☆
하지만 1997년 IMF 위기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노동자 파견 사업이 법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찾는데 누군가 끼어들어 ‘당신을 기업에 알선해주겠다.’면서 중간착취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자들은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 이래서는 경제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파견 노동 허용을 요구해왔다. 그러면서 불법적인 파견 노동이 횡행하자, 결국 IMF 직후인 1998년 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이른바 노사정 합의로 제한된 범위 안에서 노동자 파견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p.39,40
가만히 보면 IMF를 즈음하여 우리 사회에 바뀐 것이 참 많다.
“파업만 하면 구속, 형사처분….. 파업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겁니다. 노동조합 간부 하면 전과가 별처럼 붙는 나라도 그렇고요. 아직도 검사나 판사들은 파업을 형사처분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죠.”. p.52
공부를 조금만 해도 알만한 사실일텐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노동운동에 대한 시각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있다.
1816년에 영국 스톡포트의 모자 제조공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자 모의하다가 체포되었다. 판사는 그들에게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미천한 신민도 왕국의 최고 명사들 수준의 법적 대우를 받는 이 행복한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보호받으며, 따라서 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식적인 예의만 있어도 우리는 잭슨 씨처럼 100명 내지 130명의 일손을 고용한 사람을 사회의 은인으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근대 시민들이 왕과 귀족의 체제에 혁명을 일으켜 자유를 움켜쥐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신분 이동의 자유, 소유의 자유, 계약의 자유 같은 것들이었다. 이러한 자유가 보장되자 자산 계급 시민들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자유롭게 그들의 노동을 착취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상품생산은 과거 어느 때보다 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은 장시간의 비인간적인 노동 속으로 시들어갔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열 살짜리 소년이 일곱 살 동생을 데리고 새벽 다섯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방적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흔하디흔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수적으로, 의식적으로 성장하면서 자신들의 권리를 획득하려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용주에겐 해고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다. 상대적 약자인 노동자가 고용주와 맞서려면 우선 ‘단결’해야 한다. 단결의 구체적인 형태가 바로 노동조합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자는 무력하지만,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면 힘이 생긴다. 그 힘을 바탕으로 고용주와 만나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교섭’한다.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필요하다면 ‘단체 행동’에 들어간다. 대표적인 단체 행동이 파업이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에 국가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처음에는 노동자의 단결 활동을 아예 불법으로 여겨 형사처분했고, 나중에는 손해배상 등 민사적 책임을 묻는 식으로 억압했다. 그러나 억압할수록 노동운동은 더 거세졌고, 다수의 시민들이 노동 기본권을 법적 권리로 인식하게 되면서 단결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노동3권’으로 인정되었다. 왜 ‘3권’이냐 하면, 이 세 권리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단결권이 없으면 단체교섭권이 실현되기 힘들고, 단체행동권이 없으면 단결권이 별 의미가 없다. 만약 노동조합에게서 파업의 권리를 빼앗는다면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에 무엇으로 대응하겠는가. 그래서 노동3권은 무엇은 허용하고 무엇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없다. 그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오늘날 노동3권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 시초는 1919년 독일에 있었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이다. 현재 독일 헌법은 명시적으로는 단결의 자유만을 보장하고 있으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단결의 자유에 포함된 것으로 해석한다. 프랑스는 1946년 제4공화국 헌법 전문에서 노동조합 활동권과 파업권을 보장하며, 이탈리아 헌번은 단결권과 쟁의권을 명확히 구분하여 보장하고 있다. 일본은 헌법 제28조에서 노동3권을 명문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1항에서도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하여 노동3건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p.67~69
이렇게 헌법에 명시되기까지 그냥 된 것은 아니다. 역사의 노력이 있었다면 현재의 노력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2년 8월에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 노동자의 47.5퍼센트, 84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수치상 절반 정도의 노동자가 정규직이라는 이야기이지만, 신규 채용의 경우 비정규직의 비율이 훨씬 높아진다. 그리고 비정규직이 처한 현실은 드라마 속 대사처럼 명랑하지 않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49.6퍼센트, 딱 절반이다. 정규직의 근속 연수가 8.17년인 데 비해 비정규직은 2.24년에 불과하다. 정규직이 한 번 직장을 바꿀 때 비정규직은 최소 세 번을 옮겨 다닌다는 뜻이다. p.150
비정규직의 비율이 생각보다 높네.
오준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역사, 민주주의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책을 쓰고 번역했다.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저항과 혁명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했다. 지은 책으로 『소크라테스처럼 읽어라』(2012년), 『반란의 세계사』(2011년), 『진짜 민주주의』(공저, 2012년)가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보이지 않는 주인』(2011년), 『나는 황제 클라우디스다』(전3권, 2007년) 등이 있다.
한국노총법률원
연간 500~600건의 노동 사건을 맡고 있는 국내 최대의 노동자 지원 법률단체이다. 2002년 민주노총 부설 기관으로 설립된 이래 2006년 KTX 여승무원, 2007년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언론노조 파업, 2010년 MBC노조 파업, 2011년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 집단 해고,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등 한국 사회의 주요 노동 사건 지원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