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7 min readMar 5, 2017

2017 독서목록 13/100 (2017.2.2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어니스트 헤밍웨이/민음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Metallica의 ‘For Whom The Bell Tolls”가 먼저 생각납니다. 고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좋아했던 메탈리카의 이 노래를 듣고 내용이 궁금해서 당시 헤밍웨이의 소설도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는지라 책을 읽었다는 생각만 나지, 무엇을 읽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어봅니다. 헤밍웨이의 대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청소년 시절 저의 집에는 세계문학전집이 있어서 그것을 읽었는데, 당시 그 책들의 번역은 대부분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말 번역이 잘 되어 있지요. 그래서 믿고 읽는 출판사민음사로 골랐습니다.

미국인 대학강사인 로버트 조던은 스페인 내전에 프랑코의 독재에 대항하는 좌파진영에 자원입대합니다. 교량 폭파임무를 맡게 된 주인공은 산지의 게릴라 부대에서 마리아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교량 폭파를 마치고 복귀하는 중에 부상을 당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어마어마한 소설도 대강의 줄거리는 정말 간단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품고있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우선 제목부터 보야야 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라고 한다면 종이 울리는 것이 무엇을 기념하거나 알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서양의 교회 종탑이 누군가의 장례식을 알리는 종입니다. 그러니까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라는 정도의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죽음에 의미를 담기 어려운 일들이 아주 많이 일어납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죽음들입니다. 필라르가 과거를 회상하는 마을의 부르주와들을 처형하는 장면들, 철수 때 말을 확보하기 위해 작전을 폈다가 전멸을 당하는 안셀모 부대원들, 다리를 지키던 병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맞는 죽음까지. 사실 신념을 위해 죽음을 바치는 것이 숭고한 것처럼 그려질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사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주인공 로버트 조던이 과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스페인의 내전에 참전해야 하는 이유도 선명하지 않습니다. 파블로 일당이 마을을 장악하고 반동 부르주와들을 처형하는 장면에서도 과연 그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아야 할 정도로 나쁜 인물들이었는지, 그리고 그 군중들이 그들을 처형할 만큼 분노에 휩싸여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전멸을 당한 안셀모 부대원들이나 파시스트 병사들도 가만히 보면 평범한 동네의 평범한 청년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의미없는 죽음들이 겹치면 작은 분노와 분노가 쌓여가면서 광기어린 전장의 분노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정작 각 진영의 핵심 사령부에 신념과 사명이 있냐하면 그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의미없는 죽음들에서 그런 죽음을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과연 그 죽음에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는지 헤밍웨이가 독자들에게 거꾸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탁핵집회와 탄핵반대집회가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누군가가 분노를 담아내도록 뒤에서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대립에서 쌓인 작은 분노들이 모여 대량학살이라는 광기가 이땅을 휩쓸고 같 전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 쌓여가는 분노가 장작더미가 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집회에 폭력은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잘못된 정권에 대한 엄정한 국민의 심판을 헌법이 보장하는 비폭력적인 집회가 이루어내는 역사적인 장면을 기대합니다.

한줄요약 : “헤밍웨이의 명작, 필독서”

★★★★★

“자네 자신이라, 맞는 말이야. 자네 자신만 생각하게 된 것은 벌써 오래전부터지. 자네 자신과 자네 말들. 저 말들을 손에 넣기 전까지만 해도 자네는 우리하고 한편이었어. 하지만 이제 자네도 자본가가 되었어.” 안셀모가 말했다. p.39

진보가 보수로 되는 순간이 있다. 무언가를 가지게 되었을 때.

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년 7월 21일 미국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에서 출생하였다. 고교시절에는 풋볼 선수였으나,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의 『스타 Star』지(紙) 기자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의용병으로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이 되어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 중 다리에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 휴전이 되어 1919년 귀국하였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특파원이 되어 다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여행하였고,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파리에서 G.스타인, E.파운드 등과 친교를 맺으며 작가로서 성장해간다.

1923년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詩) Three Stories and Ten Poems』를 출판한 것을 시작으로 1924년 단편집 『우리들의 시대에 In Our Time』, 1926년 『봄의 분류(奔流) The Torrents of Spring』, 밝은 남국의 햇빛 아래 전쟁에서 상처입은 사람들의 메마른 허무감을 그린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를 발표한다. 1929년 전쟁의 허무와 비련을 테마로 한 전쟁문학의 걸작이라 평가 받는『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를 완성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일생 동안 헤밍웨이가 몰두했던 주제는 전쟁이나 야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선천적인 존재 조건의 비극과, 그 운명에 맞닥뜨린 개인의 승리와 패배 등이었다. 본인의 삶 또한 그러한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드라마틱한 일생이었다. 당시 스무 살의 나이에 경험한 세계 1차대전을 비롯하여 그는 스페인 내전과 터키 내전에도 참전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쿠바 북부 해안 경계 근무에 자원했다. 이런 그의 경험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이탈리아 밀라노 병원에서 한 간호사와 나눈 사랑은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의 소재가 되었으며, 1936년 에스파냐내란 발발과 함께 그는 공화정부군에 가담하여 활약, 그 체험에서 스파이 활동을 다룬 희곡 『제5열(第五列) The Fifth Column』(1938)이 탄생되었고, 다시 1940년에 에스파냐 내란을 배경으로『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를 썼다.

이처럼 전쟁을 소재로 한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통과 단절된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 ‘잃어버린 세대(the lost generation)’를 대변하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들은 헤밍웨이를 20세기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강을 건너 숲 속으로 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1950)는 예전의 소설의 재판(再版)이라 해서 좋지 못한 평을 얻었지만, 다음 작품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1952)는 대어(大魚)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고상한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단편이다.

심볼리즘과 운율을 유감없이 구사하여 그린 용기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생전에 쓰기를 벼르다가 끝내 쓰고야 만 작품’이라고 작가 자신이 말한 니힐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단편집으로는 『우리들의 시대에』 외에 『남자들만의 세계 Men Without Women』(1927) 『승자(勝者)는 허무하다 Winner Take Nothing』(1932)가 있다. 하드보일드(hardboiled)풍의 걸작 『살인청부업자 The Killers』(1927),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 of Kilimanjaro』(193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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