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10 min readOct 3, 2015

2015 독서목록 55/139 (2015.7.11)

[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 신영복/돌베게

신영복교수님의 책은 [강의] 이후 두번째로 읽게 되었다. [강의]를 읽었을 때 받은 감명이 너무 커서, 그 이후로는 어지간한 동양고전 풀이한 책은 내 성에 차지 않았다. 특히 이중톈의 책을 읽으면서 늘 신영복교수가 떠올랐고, 우리나라에는 정말 훌륭한 동양고전의 스승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에 비해 이중톈의 고전 풀이는 대중적인 인기에 편승하고 있을 뿐 깊이가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신영복 교수님의 신간 [담론]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어는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책은 크게 두 챕터로 나뉘는 데 고전에 대한 부분과 인간에 대한 부분이다. 우선 고전에 대한 풀이는 전에 비해 더 쉽게 풀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깊이는 더 깊어진 느낌이다. 조금 알면 많이 아는 체를 하게 되고, 어느 단계를 넘어 더 많이 알게 되면 쉽게 풀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를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결코 깊이를 잃지 않으며 숨가쁘게 흘러간다.

두번째 인간에 대한 부분은 주로 감옥에서의 생활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언급된 부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간다. 모든 것에 인간을 앞에 두고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오는 데도 우리의 현실은 인간보다는 돈이, 이념이, 사회전체의 이익이 앞으로 나오면서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자문하게 되고, 때로는 우울의 늪에 빠지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법이다.

신영복 교수님의 책을 읽는 내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깊은 공감과 감명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이 시대에 부족한 무엇인가를 채울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좀 많이 읽혀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찾아 들어야 겠다.

한줄요약 : “나에게 감옥은 대학이었습니다”

★★★★★

우리의 강의는 여기 저기 우연의 점들을 찍어 갈 것입니다. 순서도 없고 질서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들이 모여서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p.15

신교수님 말씀은 한말씀 한말씀이 주옥이다. 학생들은 좋겠다.

기승전결이라는 시의 전개 구조가 그렇습니다. 먼저 시상詩想을 일으킵니다. 기起라고 합니다. 다음 그 상황이 일정하게 지속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승承입니다. 이러한 양적 축적의 일정한 단계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질적 변화입니다. 그것을 전轉이라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지금까지의 과정이 총화된, 다시 말하자면 기 승 전의 최종적 완성형으로서의 결結로 마무리되는 구조입니다. 기승전결은 사물의 변화나 사태의 진전을 전형화한 전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란 그런 관점에서 ‘변화의 틀’이기도 합니다. 사물과 사물의 집합 그리고 그 집합의 시간적 변화라는 동태적 과정을 담은 틀이며 리듬이기도 합니다. p.35,36

내가 찾던 내용이다. 기승전결 머리속에 넣어놓도록 하자.

우리가 살아가면서 득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득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궁금하지요? 득위의 비결을 소개하겠습니다. 개개인의 위位를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득위의 기본에 관해서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70%의 자리’가 득위의 비결입니다. “70%의 자리에 가라!” 가지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게 득위입니다. 반대로 70의 능력자가 100의 역량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면 실위가 됩니다. 그 경우 부족한 30을 함량 미달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거짓으로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맡은 소임도 실패합니다. p.63

뜨끔~!

[논어]는 우리가 건너뛸 수 없는 고전입니다. 중국 사상을, 공자가 활동한 시기를 중심으로 공자 이전 2,500년 그리고 공자 이후 현재까지 2,500년으로 나눕니다. 최근에 중국은 공자를 세계화 아이콘으로 삼고 있습니다. 공자 연구소를 500개 설립한다고 합니다. 공자가 14년간 망명을 끝내고 68세에 고향에 돌아와서 73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5년 동안 학사學舍를 세워 제자들과 만납니다. [논어]는 망명 중에 그리고 망명 후에 향리에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화록입니다. 물론 공자 당시에는 [논어]란 책이 없었습니다. 공자 사후 100년 이후에 공자 학단에서 만든 책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공자 제자 중에 대상인인 자공子貢이 있습니다. 공자의 14년간의 망명도 자공의 상권商圈이 미치는 곳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공은 자로子路나 안회顔回처럼 공자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이 공자 삼년상을 마치고 돌아갈 때 움막을 철거하지 않고 계속 시묘살이를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사재를 털어서 학단을 유지합니다. 이 학단의 집단적 연구 성과가 [논어]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회 같은 뛰어난 제자를 갖기보다는 자공 같은 부자 제자를 두어야 대학자가 된다고 합니다. 일찍이 사마천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p.76,77

세상살이 참, 모든 것이 그렇구나. 공자도 어떻게 보면 잘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위악이 약자의 의상依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僞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시위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붉은 머리띠, 문신입니다. 단결과 전의戰意를 과시하는 약자들의 위안적 표현입니다. 강자들의 현장은 법정입니다. 검의 법의法依의 엄숙성과 정숙성이 압도합니다. 시위 현장의 소란과 대조적입니다.

닛타 지로新田次郞의 [알래스카 이야기]에서 읽은 눈썰매 이야기입니다. 알래스카에서는 눈썰매를 끄는 여러 마리의 개 중에서 가장 병약한 개의 줄을 짧게 맨다고 합니다. 개들이 빨리 달리게 할 때에는 짧게 매여 있는 개를 채찍으로 때립니다. 그 병약한 개의 비명이 다른 개들을 더욱 빨리 달리게 합니다. 그 병약한 개가 죽고 나면 나머지 개 중에서 가장 병약한 개가 그 자리에 묶입니다. 혹시라도 자기가 썰매를 끄는 위치에 있다면 엄벌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 엄벌이란 병약한 개를 채찍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충분히 연구되어 있습니다. 엄벌과 공포는 사회를 경직시킵니다. 반대로 참여와 소통은 많은 사람들의 잠재력을 고양하고 사회역량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와 소통 구조는 자칫 썰매 위의 자리가 침벌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그리고 사회란 원래 썰매의 위 아래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약한 개를 채찍으로 때려 왔습니다. 법과 정의 그리고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p.268,269

위선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 왔지만 위악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깔끔하게 설명하다니, 참 대단하다.

미국 유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황인종이 백인 다음 서열쯤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이 미국 생활이라고 합니다. 흑인과 남미인들보다 더 아래 서열입니다. 인도인이나 이슬람계보다 아래 서열임은 물론입니다. 흑인은 대통령을 배출한 인종입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연예인을 찾다가 막상 안소니 퀸Anthony Quinn이 멕시코 출신이란 사실 앞에 무너집니다.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우리들의 콤플렉스입니다. 콤플렉스는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자기의 하위에 그 사람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무하려는 심리적 충동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라틴아메리카를 밑에 깔려고 하다가 앗 뜨거워라 놀랍니다. p.339

신영복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육사에서 교관으로 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고, 1998년 3월, 출소 10년만에 사면복권되었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현재 석좌교수로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저자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한편 한편이 유명한 명상록을 읽는 만큼이나 깊이가 있다. 그의 글 안에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안에서 만난 크고 작은 일들과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정감어린 필치로 그려져 있다.

‘일요일 오후, 담요 털러 나가서 양지바른 곳의 모래 흙을 가만히 쓸어 보았더니 그 속에 벌써 눈록색의 풀싹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봄은 무거운 옷을 벗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던 소시민의 감상이 어쩌다 작은 풀싹에 맞는 이야기가 되었나 봅니다.’슬픔이 사람을 맑게 만드는 것인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울타리 밖에 사는 우리보다 넓고 아름답다. 시인 김용택의 “아름다운 역사의 죄를 지은 이들이 내어놓은 감옥에서의 사색은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글귀가 공감되는 부분이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듯, 수형 생활 중 자신이 직접 겪으면서 털어놓는 진솔한 이야기와 사색들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져내린 뒤 자본의 전일적 지배가 강화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정보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세기말의 상황 속에서 그가 찾아낸 희망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다. 『나무야 나무야』에서 그는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도 푸르고 굳건하게 뻗어가고 있는 ‘남산의 소나무들’처럼 ‘메마른 땅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낸다.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오늘의 자본주의문화에 대한 그의 시각은 냉엄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상한 채 상품미학에 매몰된 껍데기의 문화를 그는 통렬히 비판한다. 그리고 ‘정보’와 ‘가상공간’에 매달리는 오늘의 신세대 문화에 대해서도 그것이 지배구조의 말단에 하나의 칩(chip)으로 종속되는 소외의 극치일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임을 갈파한다. 또한 단순히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이어진다. 그는 소나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무엇 하나 변변히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반성하면서 자연을 오로지 생산의 요소로 규정하는 현대 문명의 폭력성을 질타한다. 이러한 근본적 성찰의 밑바닥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연대에 대한 옹호이다. 그는, 화사한 언어의 요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써 깨닫고 가르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 밖에 다른 저서로는 『손잡고 더불어』『나무가 나무에게』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청구회 추억』, 『다른 것이 아름답다』(공저), 『여럿이 함께』, 『한국의 명강의』(공저),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기세춘 공역, 4권)이 있다. 홈페이지 ‘더불어숲’ (http://www.shinyoungbok.pe.kr)이 운영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