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클래식 둘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7 min readJan 30, 2017

2017 독서목록 3/100 (2017.1.14)

[더 클래식 둘: 슈베르트에서 브람스까지] — 문학수/돌벡개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주로 미국의 팝송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우리나라 가요를 즐겨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이부터는 외국의 팝송도 좋은 줄을 모르겠고, 가요도 마음에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이제는 늙었나보다 하며 클래식에 눈을 돌린 것은 대략 10여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클래식은 좀처럼 다가가지질 않았습니다. 너무나 어려웠고, 정작 들어도 좋은 줄을 몰랐으니까요. 그런 제게 클래식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책이 바로 문학수의 [더 클래식]이었습니다. 작가가 추천해 준 음반을 하나씩 사모으며 계속해서 듣다보니 어느 순간 클래식 음악이 너무 좋아지더군요.

문학수의 [더 클래식 둘]은 전권을 읽고 바로 사놓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아까워서 읽지를 못하고 보관하면서 군침만 삼키던 책입니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만 책을 읽고서 음악까지 찾아서 듣게 되는 책은 없었습니다. 문학수씨가 제게 그 벽을 넘게 해주었기 때문에 저는 누군가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바로 문학수의 [더 클래식]을 추천합니다. [더 클래식 둘]은 전편에 이어서 낭만시대에 접어든 다양한 음악가를 소개하고 마찬가지로 각 음악별로 3장의 명음반을 소개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소개하는 선율이 어떨지 기대를 하면서 한 부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한 책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위해 책을 고르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됩니다.

음악을 아는 것과 듣는 것은 다릅니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정작 음악을 듣지 않으면 좋은 줄을 모르죠. 이 책에서 문학수씨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왜 클래식을 듣냐는 질문에 ‘그냥 좋아서’라고 대답할 수준이 아직은 아닙니다만 지금처럼만 가게 되면 저도 언제가는 ‘정말 좋아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밖에 날씨가 찬데 따뜻한 집안에서 향기로운 차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 읽는 독서가 호사스럽게 느껴집니다. 행복하네요.

한줄요약 : “클래식이라면 필독서, 강추!”

★★★★★

어떤 이가 “미스 터치를 발견했다”고 떠벌리고 있었습니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쯤 돼 보이는 남성이었습니다. 몇 해 전,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였습니다. 라두 루푸Radu Lupu(1945~)의 연주회가 막 끝난 직후였습니다. 연주회장에 가면 가끔 이런 이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연주자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할 때가 더러 있는 법이고, 이른바 대가들의 경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날 루푸도 두어 번의 눈에 띄는 실수가 있기는 했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 실제로 행하는 연주란 그런 것입니다. 한데 그 ‘약간의 실수’를 꼬투리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해보려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한국의 클래식 시장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마음이 씁쓸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p.61

그런 정도의 실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직도 누구의 음악인지도 헷갈리는 정도니 어서 많이 듣자.

‘캐릭터 피스’Character Piece라는 말을 아시나요? 우리말로 바꾸면 ‘성격적 소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만의 시대인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이 피아노 음악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는데,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장르가 바로 ‘캐릭터 피스’라고 할 수 있지요. 소나타와 변주곡 등의 고전적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피아노 수품들을 일컫습니다. 아름다운 시적 영감이 두드러질 뿐 아니라 A-B-A의 단순한 3부 형식, 또 선율과 화성이 매우 강조돼 있어서 듣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쉽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에 속합니다.

시대적으로 보자면, 몇 가지 객관적 조건이 캐릭터 피스의 출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나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개량과 발전이겠지요. 과거에 비해 연주하기가 보다 쉬워졌고 음량도 더욱 커졌습니다. 또 하나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성장입니다. 새로운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부르주아지 중에서 이른바 ‘부자’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그들이 집안에 피아노를 들여놓기 시작하지요. 귀족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음악을 자신들의 교양으로 만드는 것은 신흥 부르주아지에게 매우 중요한 문화적 목표였습니다. 거기에 또 하나의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바로 악보 출판의 활성화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조건들이 무르익으면서 음악은 좀 더 대중적인 지평을 얻게 됩니다. 부유한 집안의 부인이나 딸들은 집안에 피아노 선생을 불러들여 레슨을 받으면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합니다. 우리 머릿속에 여전히 자리해 있는 ‘돈 많고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 예쁘게 차려입은 딸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부모가 그 옆에서 흐뭇하게 미소 짓는 장면은 그렇게 19세기에 이미 등장했습니다. p.91~93

음악도 이런 과정을 걸치면서 발전을 하게 된 것이구나.

예컨대 <콘트라베이스>가 그렇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몸집이 가장 커다란 악기인 콘트라베이스는 어떤 존재일까요? 사실 이 악기는 ‘오케스트라’라는 계급사회에서 매우 낮은 위치를 차지합니다. 권력 서열이 보잘것업다는 뜻이지요. 물론 저현低鉉의 깊은 맛을 우려내기 위해 꼭 필요한 악기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늘 뒷전에 엉거주춤 서 있는 악기이기도 하지요. 오케스트라의 전면에서 화려하게 조명 받는 바이올린에 비하자면, 또 관악기들이 터뜨리는 우렁찬 팡파르에 견주자면, 콘트라베이스는 왠지 서글프고 안쓰러운 악기입니다. 그래선지 쥐스킨트의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 최후의 쓰레기 같은 존재입니다.” p.183

악기에서 계급과 서열이 존재하는구나.

지금까지 29곡의 음악을 함께 들었습니다. 어떤가요? 좀 어렵고 무겁습니까? 하지만 귀에 익숙한 소품만 들어서는 음악을 ‘내 것’으로 만들기가 좀 어렵습니다. 보다 본격적으로 음악에 육박해 들어가려면 ‘큰 산’을 2박 3일 종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 등산을 몇 차례 거치고 나면 동네 뒷산쯤은 쉽게 오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묵직한 대곡大曲을 종종 거론하고 있습니다. 사실 곡의 분량이 길어서 그렇지, 실제로 몇 차례 들어 보면 음악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그 긴 음악을 들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 아울러 시간을 투자해 그것을 들을 만한 ‘낭만’이 고갈돼 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나’와 음악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음악을 실제로 들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이미 형성된 ‘어떤 생각’의 틀에 갇히거나, ‘클래식 초보자를 위한 매혹의 선율’ 같은 것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클래식을 듣고 유식해져야지, 라는 허위의식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음악 듣기는 아무런 현실적 이득이 없는 무위無爲의 행위에 가깝습니다. ‘왜 음악을 듣는가’라고 누군가 당신한테 물어오면, ‘그냥 좋아서’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사심 없는 사랑’과 비슷합니다. 그냥, 가슴을 열고 음악을 포옹하기 바랍니다. 때로는 마음먹고 ‘큰 산’을 올라가 보기 바랍니다. p.307~309

참 좋은 조언이다. 여태까지 허위로 음악을 찾았지만 이제 조금씩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냥 좋아서라는 이유가 너무 좋다.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부터 클래식 음반을 쫓아다닌 음악 애호가. 오랫동안 [경향신문]에 음악비평을 써왔다. 여러 매체에 음악과 관련한 글들을 연재하는 한편, 음악과 인문학이 결합된 대중강연을 펼치고 있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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