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공부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5 min readSep 28, 2015

2015 독서목록 52/139 (2015.6.28)

[말공부: 2500년 인문고전에서 찾은] — 조윤제/흐름출판

자기계발류의 베스트셀러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는 책 제목이 정말 좋다는 점이다. 제목만 봐도 왠지 뭔가 대단한 내용들로 차있을 것 같은 자태로 나를 유혹한다. 하지만 대부분 책을 읽고나면 좋아서 소장하고 싶은 생각보다는 내던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제목에 속은 것이다. 두번째는 작가의 치열한 연구나 깊은 고민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나마 본인의 성공스토리를 절절하게 적은 책들은 좀 나은 편이지만 여기저기서 한번 이상은 본 듯한 좋은 말들, 고전의 사례들을 짜임새 있게 나열하고는 거기에서 무슨 원칙이나 방향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렇게 제시하는 원칙이나 방향은 그것을 사람들이 몰라서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못하고 있는 것이므로, 아마 작가 자신도 잘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꽤 있다.

조윤제의 [말공부]는 군더더기없는 자기계발서다. 제목도 근사하고 짜임새도 훌륭하다. 하지만 딱히 뭐가 마음에 안드는지는 잡아내기가 어려운데, 읽고 나니 별로 남는게 없다. 동양고전의 사례들이 생소한 사람들이야 재미있게 읽겠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이 딱히 찾기 어려운 편이 아니고 여기저기서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사례들이다. 또 그 사례를 통해서 알려주고자 하는 말에 대한 공부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어릴 적 부모님이나 혹은 어른들에게 말버릇 없다고 면박 한번 당한 것이 훨씬 효과적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서 말공부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그나마 동양고전에 자주 나오는 사례들을 통해서 편한 독서를 하실 분에게는 추천할 수 있겠다.

한줄요약 : “동양고전을 잘 보면 말과 처신을 배울 수 있단다”

★★★☆☆

제환공이 재상 관중에게 물었다.

“부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요?”

관중이 대답했다.

“물의 한계는 우물의 물이 다 말라 없어진 경우를 말하고, 부는 스스로 만족했을 때가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 패망하고 맙니다. 따라서 부에는 한계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비자> p.43

부의 한계라는 말은 요즘의 시대에 많이 필요한 말이다. 하지만 부에는 한계가 없구나.

경공이 안자에게 물었다.

“충신의 왕 섬김이 어때야 합니까?”

안자가 대답했다. “왕이 난을 당해도 따라 죽지 않으며, 왕이 망명할 때에 전송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경공이 불쾌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 이유를 묻자 안자가 대답했다.

“ 신하가 좋은 의견을 내놓아 그 의견이 채택되었다면 평생 난을 당할 일이 없으니 신하로서 죽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 좋은 모책을 내놓아 그것이 채택된다면 평생 도망갈 일이 없는데 어떻게 왕을 전송할 일이 있겠습니까? 만약 좋은 의견을 내놓았는데도 채택이 되지 않아 난이 발생하여 죽는다면 그 죽음은 허망한 것입니다. 또 좋은 모책이 채택되지 않아 도망칠 알이 생겨 왕을 전송한다면 이 역시 신하로서 왕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 것이지요. 무릇 충신이란 왕에게 오직 좋은 것만 드리는 자이지 왕과 함께 위난에 빠지는 자가 아닙니다.” <안자춘추> p.74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된 길을 가게 하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불가항력도 있지 않은가?

혜자는 전국시대 논리를 중시하는 학파였던 명가名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특히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던 장자와 친분이 있었고, 그와 많은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드는 혜자와 직관과 달관으로 대처하는 장자의 논쟁은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해학이 넘치고 재미있었다. 마치 땅을 딛고 선 사람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과의 대화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의 대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물고기의 즐거움’이다. 장자가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라고 하자 혜자는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알 수 있으냐”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장자는 “당신이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느냐?”라고 대답한다. 혜자는 다시 “내가 자네가 아니니 물론 자네를 알 수 없다. 자네 역시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라고 대답한다. 이 말에 장자가 대답한다. “자,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자네가 나에게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음을 알고 물은 것이 아닌가? 나는 여기 호숫가에서 물고기와 하나가 되었기에 그 즐거움을 알 수 있는 것일세.” p.172,173

장자가 처음에 본인이 이야기를 해서 알게 된 것이지 혜자가 장자가 알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물은 것인가? 장자 어르신이 말장난 하시네.

주문왕이 숭나라를 치고 봉황의 언덕에 이르렀을 때 신발 끈이 풀어지자 직접 허리를 굽혀 끈을 묶었다. 태공망 여상(강태공)이 물었다.

“폐하, 시킬 신하가 없습니까?”

주문왕이 대답했다.

“최고의 군주 밑에 있는 신하는 모두 스승이요,

중간의 군주 밑에 있는 신하는 모두 친구요,

하급 군주 밑에 있는 신하는 모두 시종입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선왕 때부터 있던 신하들이므로 이 일을 시킬 사람이 없소.” p.269

매우 훌륭한 리더의 자세다. 부하 직원을 뭐에 시켜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그 일을 맡겼는 지를 항상 명심하자.

조윤제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마케팅실에서 근무했다. 삼성전자 근무 당시에는 대소비자 판매 캠페인, 전사 사원판매제도 등을 기획, 주관하는 등 기획통으로 이름이 높았다. 삼성영상사업단 (주)스타맥스의 마케팅 팀장, 문구유통기업의 대표를 역임했다. 이후 출판계로 진출하여 《노빈손》 시리즈로 유명한 뜨인돌출판사의 부사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기획과 번역을 하며 집필 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첫 책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는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출판계에 몸담으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열정적으로 탐독했고, 특히 《논어》, 《맹자》, 《사기》 등을 비롯한 동양고전 100여 권을 원전으로 읽으면서 문리가 트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동양 고전이야말로 오늘을 읽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지혜의 보고임을 깨닫고 그것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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