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7 min readMay 22, 2016

2016 독서목록 25/120 (2016.4.24)

[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문예출판사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무엇인가? 흥미진진한 이야기인가? 생생한 묘사를 통해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캐릭터인가?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적인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환희인가? 그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도 문학이라는 장르를 애써 피해왔던 것은, 아마 나는 그 정도의 감동을 받아왔고, 그 정도의 감동에 내성이 생겨서 였다.

나는 전체주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것이 인간성을 어떻게 왜곡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저 나찌즘은 惡이고, 파시즘은 害이고, 공산주의는 敵이었지, 그것이 우리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었고, 군대의 막사와 같은 구조의 국민학교에서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 지도자를 찬양하는 것을 배웠지만, 그것이 무엇이 잘못인지는 전혀 생각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시대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 시대를 보냈기에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이라는 논쟁이 붙는다면 나의 주장을 논리있게 펼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여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내가 말할 자신이 없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나의 독서 동료가 표현했듯이, 세상에 눈을 뜨게 하는 것 중 가장 최고봉에 바로 문학이 있었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말한 전체주의적 악의 평범성이란,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표현한 그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2차대전의 기간에 독일과 일본, 그리고 그 후 공산주의 국가에서 그런 사회를 만들고 인류에게 해약을 끼친 것을 눈으로 목격했다. 악을 보고 악인줄 모르고, 선을 보고 선일줄 모른다면 정말 문제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면 그 검은 것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어슬렁 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줄요약 : “인간개조, 계급화, 우민화, 누군가에게는 정말 살기 좋은 세상”

★★★★★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하층계급의 인간이 독서로 인하여 세계국가의 시간을 낭비한다든가, 해로운 독서를 함으로써 그들의 존건반사 작용을 약화시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꽃에 대한 훈련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델타 계급의 인간에게 꽃을 증오하게 하기 위한 심리학적인 수고를 무엇 때문에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인내심을 발휘해 소장은 설명했다. 장미꽃을 보고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게 되는 상태로 이끄는 것은 경제적 고등정책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렇게 오랜 된 이야기는 아닌데, (약 1세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당시에는 감마 계급, 델타 계급, 엡실론 계급에게까지도 꽃을 사랑하도록 훈련했다는 것이다 — 특히 꽃과 전원을 좋아하게 훈련했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원으로 나가고 싶도록 만들어 운송기관을 이용토혹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운송기관을 사용하지 않았나요?”

그 학생이 물었다.

“아니 많이 사용했지”하고 소장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저 그 뿐이었어.” 프리뮬러꽃과 전원 풍경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것들은 그냥 손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공장을 분주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하층 계급의 경우는 자연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도록 결정했던 것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포기시키지만 운송기관을 사용하는 경향은 그대로 보존시킨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증오토혹 하면서도 그들을 시골로 보내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지 프리뮬러꽃이나 전원 풍경에 대한 사랑보다 운송기관을 사용케 할 보다 건전한 경제적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대중들이 전원을 증오하도록 훈련합니다”하고 소장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동시에 전원의 스포츠를 사랑하도록 훈련합니다. 그런데 전원의 스포츠는 반드시 복잡한 장비를 사용하도록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대중은 운송기관뿐 아니라 공업제품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전기 쇼크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p.30~32

책을 읽지 못하게 하면 정말 바보로 만들 수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정말 바보가 된다.

시간이 지나갔다. 성공했다는 생각이 버나드의 뇌리를 스쳤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좋은 술이 늘 그렇듯) 그는 이제까지 불만스러웠던 세계와 완전히 타협하게 되었다. 세계가 그를 중요한 존재로 인정하는 한 세계의 질서는 훌륭했다. p.198

어느 세계에서든지 그 세계의 중요한 인물은 그 세계의 질서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중요한 인물로 인식되지 않는 상황이 그가 그 세계를 부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가 이상해게 생각하는 것은” 하고 야만인이 말했다. “부화병에서 무엇이나 만들 수 있으면서 도대체 왜 그런 것들을 제조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제조를 수행할 때 왜 모든 인간을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으로 제조하지 않는 것입니까?”

무스타파 몬드가 웃었다.

“우리 목이 잘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야”하고 그가 대답했다.

“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신봉하네. 알파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세. 알파 노동자로 채워진 공장을 상상해보게 — 다시 말해서 좋은 유전인자를 지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책임을 떠맡는 일이 (제한은 있겠지만) 가능하게끔 조건반사적으로 단련된 개별적이고 상호연관이 없는 인간들로 채워진 경우를 상상하란 말일세. 그것을 상상해보란 말일세!” 하고 그는 반복했다. p.281,282

전제주의적 사회가 지향하는 바가 어떠할 지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개인보다 전체를 먼저 생각하게끔 가치가 규정된 사회에서 어떤 일이 우선될 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

영국 출신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지적 정보와 함께 재치와 풍자로 가득 찬 다양한 방면의 저술 활동으로 유명한 헉슬리는 20세기 관념소설의 큰 줄기를 이룬 대표적 작가다. 야만인 청년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적인 세계를 제시한 작품으로 문명 비판적 풍자와 도덕적 교훈이 잘 맞물려 현대 문명사회를 희화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진보주의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멋진 신세계』라는 미래 소설이 가장 유명하다.

1916년 시집 『불타는 수레바퀴』를 출간한 이래 몇 권의 시집을 더 냈으나, 1921년 『크롬 옐로우』가 인정을 받은 후부터 일생동안 소설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여겨지는 『연애대위법』(1928)은 다양한 1920년대 지식인들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이 소설로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밖에도 과학문명에 지배되어 가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돋보이는 『멋진 신세계』(1932), 평화운동을 추구하는 작가 자신을 그린 『가자에서 눈이 멀어』(1936), 폭력의 부정을 역설한 『목적과 수단』(1937), 제3차 세계대전을 가상해서 쓴 『원숭이와 본질』(1948) 등의 저서가 있다.

또 1945년 《영원의 철학》을 통해 그때까지 서구 지성사에 전해오던 ‘영원의 철학’이라는 개념을 핵심적으로 통합하여 종교와 영성에 대한 이해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 주요작품으로는 『어릿광대의 춤(Antic Hay)』, 『하찮은 이야기(Those Barren Leaves)』, 『연애대위법(Point Counter Point)』,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가자에서 눈이 멀어(Eyeless in Gaza)』, 『목적과 수단(Ends and Means)』, 『원숭이와 본질(Ape and Essence)』, 『루당의 악마(The Devils of Loudun)』, 『천재와 여신(The Genius and the Goddess)』, 『아일랜드(Island)』 등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