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10 min readSep 20, 2015

2015 독서목록 49/139 (2015.6.20)

[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 조너선 하이트/웅진지식하우스/THE RIGHTEOUS MIND

책을 읽다가 나중에 참고가 될 만 하거나, 괜찮은 부분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 내용을 바로 에버노트에 옮겨 놓는다. 그런데 어떤 책은 옮겨놓을 만한 부분을 거의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책이 그저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옮겨놓고 싶은 부분이 책의 거의 대부분이라서 많이 옮기지 못하는 책도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진흙속에서 진주를 찾은 것 같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진주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의 나를 괴롭히는 주제는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선이었는데, 사실 나는 원래 보수적인 성향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진보적 성향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어서 그랬다. 왜 내가 보수적인 성향에서 진보적인 성향으로 바뀌어 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나는 그것을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해 내가 눈을 떠가고 있는 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그 혼란함의 상당부분을 해결했다.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이라는 책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정치적 성향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고 흘러가는지를 매우 예리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 현대인들의 정치적 성향이 극단적으로 가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까지 보내고 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모르면 인간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를 이해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벼락이 생기는 원인을 모르면 신의 징벌이라 생각할 것이고, 원리를 알면 피뢰침을 달려고 할 것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성장함을 느끼고 책을 쓴 작가에게는 무한한 감사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우리가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 진정한 양서이다.

한줄요약 : “반대편 사람들도 이해해봐.”

★★★★★

인간을 별개의 개인으로 보는 서양인의 사고가 사실은 무척 유별난 것임을 슈웨더는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양의 사고에서 개인은 경계가 정해져 있고, 고유성을 지니며, 동기와 인식을 가진 하나의 통합된 우주이다. 또 개인은 인식, 감정, 판단, 행동의 역동적 중추로서 각종 기관을 갖추어 별개의 온전한 존재로 기능한다고 여겨진다. 이 온전한 존재는 자신과 유사한 별개의 존재와 대립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사회 및 자연의 주변 환경과도 대립한다. 그러나 우리 머릿속에 이런 개념이 아무리 뿌리 깊이 박혀 있다 해도, 세계 문화 전반의 맥락에서 봤을 때 개인에 대한 이러한 사고는 다소 특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p.50

지금은 그러한 인식이 세계 여러 곳으로 퍼져갔고, 각 지역에서 고유의 개념과 충돌하여 여러가지 문제와 발전을 만들어왔다.

그 아픔을 달래려고 제퍼슨은 코스웨이에게 연애편지를 썼다. 하지만 유부녀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도리는 아니었기에, 가급적 의중을 덮어 가리기 위해 그는 문학적 수법을 동원했다. 즉, 자신의 머리와 가슴이 서로 대화하는 형식으로 편지를 쓴 것인데, 언젠가 끝나고 말 ‘우정’을 계속 잡으려 하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일인지를 두고 머리와 가슴이 서로 설전을 벌이는 내용이다. 제퍼슨의 머리는 플라톤이 말하는 바람직한 이성을 대변했고, 따라서 가슴에게 왜 자신까지 질질 끌고 가 한바탕 난리를 치게 하느냐고 꾸짖는다. 가슴은 머리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머리는 근엄한 말투로 이렇게 설교한다.

세상만사는 계산대로 돌아가는 법. 그러니 행동에 나설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손에 천칭을 들고 일일이 재봐야 하는 거야! 한쪽 접시에는 어떤 대상이 가져다줄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올려놔. 하지만 반대쪽 접시에도 그것에 따르는 모든 고통을 올려봐야 해. 그러고 나서 천칭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잘 보란 말이야!

가슴은 머리의 이러한 호통을 몇 번이고 참고 들어주다가 마침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방어하고 나선다. 그러면서 머리에게 제자리를 일러주는데, 머리는 사람 사이의 일을 놔두고 다른 문제나 잘 다루라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 둘이 살 곳을 한자리에 마련해주면서, 그 제국을 둘로 나누어 각각 우리에게 주셨지. 자연이 자네에게 준 곳은 과학이라는 땅이야. 그리고 내게는 도덕이라는 땅을 주셨지. 원을 정사각형에 접하는 문제나 혜성의 궤도를 따지는 문제, 또 가장 튼튼한 아치를 세우는 문제나 저항력이 가장 작은 고체 물질을 알아내는 문제, 이런 것들은 자네가 맡게. 그건 자네 영역이고, 그런 문제를 이해할 능력을 내게 전혀 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공감, 자비, 은혜, 정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나의 영역이니 여기서는 자네의 간섭을 사양하네. 애초부터 자연은 자네에게 이것들을 다룰 힘을 주지 않으셨어.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자연이 가슴의 방법론을 택한 거지. 도덕은 인간의 행복에 너무도 본질적인 문제이고, 그런 중대한 문제를 머리의 불확실한 짜 맞추기 식의 논리에 맡긴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야. 따라서 자연은 과학이 아니라 감성을 도덕의 기반으로 삼으신 것이네.

이로써 우리에게는 마음에 관한 모델이 세 가지 생긴 셈이다. 플라톤은 이성이 주인의 자리에 있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럴 경우 오로지 철학자들이나 대가(大家)의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해도 말이다. 흄은 이성이 열정의 하인이고, 또 하인이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제퍼슨의 제3안에 따르면, 이성과 감성은 서로 독립적인 공동통치자와 같다. 그 옛날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제국의 땅을 동서로 나누어 반씩 다스렸던 것처럼 말이다. 과연 이들 중 옳은 것은 누구일까? p.75~77

나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웨이슨(Peter Wason)은 판단과 정당화는 별개의 과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골리스도 웨이슨의 견해에 뜻을 같이하여 이상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정리를 했다.

인간은 판단이 내려지면(판단 자체도 뇌 속의 비의식적인 인지 장치를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옳을 때도 있고 옳지 않을 때도 있다), 그 근거를 하나둘 만들어내 그것들이 자신이 내린 판단의 설명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근거라는 것들은 사실 (해당 주장에 대한) 사후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p.97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군. 그것이 신념과 같은 것이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고.

이 사회적 직관주의자 모델을 보면 우리가 도덕적, 정치적 논쟁을 할 때 왜 분통 터지도록 답답해하는지가 설명된다. 도덕적 이유가 다름 아니라 직관이라는 개가 흔드는 꼬리이기 때문이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건 의사소통을 하겠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가 개의 꼬리를 붙잡아 억지로 흔든다면 개가 행복할 리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람들의 논변을 완전히 논박하는 것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 흄은 이 문제에 대해 오래전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논쟁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 어느 쪽도 추론을 통해서 자신의 신조를 끌어내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情)에 호소하지 않는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이 더 올바른 원칙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p.107

그런 거구나. 난 왜 이걸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많이 아쉽다.

자, 여기 신들이 모여 여러분이 태어나는 날 동전 던지기를 한다.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당신은 일평생을 누구보다 정직하고 공평한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파렴치한 악당이라고 믿는다. 한편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당신은 자신의 필요에만 맞으면 언제든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성인군자라고 믿는다. 여러분이라면 동전의 앞뒤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서양 고전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저작인, 플라톤의 <<국가론(Republic)>>에서는 앞면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위한 길임을 갖가지 논변을 들어 구구절절 주장한다. 선하게 보이는 것보다 실제로 선한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p.147

그런데 실제로 살다보면 선하게 보이는 놈이 더 바람직하게 살아가고 있다. 미디어의 발달로 그것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 외에도 군집 스위치를 켤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버지니아 대학에 있으면서 10년 동안 나는 이와 관련된 생각을 가지고 학생들과 요모조모 논의해보았는데,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 군악대에서 연주할 때, 설교를 들을 때, 정치 집회에 참석할 때, 명상을 할 때에도 사람들의 스위치가 ‘켜진다’는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도 대부분 이 스위치를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경험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 중에서 인생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한 경우는 소수에 불과했다. 대체로 그 영향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내에 사라졌다.

군집 스위치가 시의적절하게 켜질 때 사람들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내 눈에는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개인별로 보면 여전히 학생들은 성적, 장학금, 연애 상대를 두고 서로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학생들은 수업 외 활동에도 무척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대체로 팀플레이어의 면모를 십분 발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게는 새삼 감탄스러웠다. 학생들은 함께 연극도 하고, 스포츠 시합에 나가 다른 팀과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정치 명분을 위해 집회를 열기도 하고, 수십 개 프로젝트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샬로츠빌은 물론 머나먼 이국의 빈자와 병자를 돕기도 했다. 학생들은 어떤 소명 같은 것을 찾고 있었다. 자신을 넘어서서 더 커다란 집단의 일부가 되었을 때만 찾을 수 있는 그런 소명을 말이다. 더불어 학생들의 그런 노력과 모색은 두 차원 모두에서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두 차원 모두에서 살아가는 호모 듀플레스인 것이다. p.415,416

아, 리더가 조직의 군집 스위치를 켤 줄 안다면 대단한 성과를 내겠구나. 위대한 리더들은 어떤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군집 스위치가 언제 켜지는 줄을 아는 사람일테고 말이다. 그게 어디에 있는지 나도 빨리 알아내야 겠는데.

조너선 하이트 Jonathan Haidt

뉴욕 대학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 긍정심리학 분야의 선구적인 학자이자 현재 영미권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지식인이다. 1985년에 예일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았으며, 1992년에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카고 대학에 들어가 인도 오리사에 체류하며 박사 후 연구를 수행했다. 1995년부터 줄곧 버지니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오다, 2011년에 뉴욕 대학 스턴 경영대학원의 교수진으로 합류했다.
하이트의 연구는 도덕성의 여러 감정적 토대, 도덕성의 문화적 다양성, 도덕성의 발달 과정 등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기에는 구토감, 치욕, 원한과 같은 부정적인 도덕 감정에 대한 연구를 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동경, 경외, 도덕적 고양과 같은 당시만 해도 연구가 미진하던 긍정적인 도덕 감정의 연구에 주력하게 되었다. 또한 하이트는 사람들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상황들을 지켜보며 상대방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돕기 위해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도덕성 기반 이론’을 세우고 웹사이트 ‘YourMorals.org’를 공동 개발해냈다. (Civilpolitics.org. 참조).
2008년 ‘진보와 보수의 도덕적 뿌리’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 하이트의 18분짜리 TED 강의는 게시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이후 ‘종교, 진화와 자기 초월의 행복’, ‘ 공동의 위협이 어떻게 공통의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는가’까지, 이 세 편의 강의는 조회 수 300만 회 이상에 이르며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버지니아 대학에 재직 당시 교수상을 세 차례 수상했으며, 버지니아 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미국 국제외교 전문지〈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서는 2012년 그를 ‘세계 100대 사상가’로 꼽았으며, 영국 정치평론지〈프로스펙트Prospect〉에서도 ‘2013년 세계의 사상가’ 65명에 그를 포함시켰다. 그가 집필한 논문은 90여 편이 넘으며, 저서에《행복의 가설Happiness Hypothesis》이 있다. 홈페이지는 JonathanHaidt.co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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