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2016 독서목록 63/120 (2016.9.24)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 최진석/위즈덤하우스

동양 철학은 아무리 읽어도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서양 철학도 어렵긴 매한가지지만 동양 철학의 어려움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서양 철학은 책을 읽어도 그 내용 자첵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지요. 아마도 서양 철학은 어떤 철학자를 이해하려면 그 철학자에게 영향을 준 앞의 철학자를 이해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유일 것입니다. 예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의 스승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읽지 않는 사람이 내용을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지요. 또 번역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철학의 경우 단어의 뉘앙스 차이가 상당히 중요한데, 서양의 언어끼리는 그나마 쉬운 부분도 있겠지만, 독일의 철학을 영어로 변역한 것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하니,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서양 철학 책 중에는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책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양철학의 어려움은 조금 다릅니다. 사실 우리는 학교시절부터 공자니 맹자니 하는 동양 철학자들을 들어왔고 그들이 했던 이야기의 적지 않은 부분을 들어면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동양 철학은 이사람이 해석한 것이 다르고, 저사람이 해석한 것이 다르니, 얼핏 들으면 이해가 되는 것 같다가도 자세히 들어가 보면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 철학은 어렵습니다. 아는 것 같기는 한데, 설명하자니 어렵고, 모르는 것 같기는 한데 들으면 알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어려운 동양 철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훌륭한 선생님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동양 철학을 누구나 배우는 시대가 아니니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그런 선생님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 배움의 갈증은 [생각하는 힘 노자인문학]과 같은 책을 만나면서 해소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대중을 상대로 강의가 유명한 최진석 교수입니다. 사실 처음 방송으로 강의를 들을 땐, 크게 내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마 강의가 듣고 싶어서 들은 것이 아니라 TV채널을 돌렸는데 강의가 나와서 그랬겠지요.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최진석 교수의 내공이 실감됩니다. 노자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어보았지만 최진석 교수의 노자 풀이는 정말 괜찮은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한 번씩 교양삼아 필독하고서 최진석 교수의 강의를 보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뭔가를 알아가는 흐뭇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부족한 점이 정말 많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뭔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고, 그래서 철학이라는 분야에 손이 가게 되나 봅니다. 옛 선현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고서는 소름끼치게 나의 부족함을 더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살면서 철학이라는 분야의 책을 읽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봅니다. 가을이 완전히 가기 전에 한 권이라도 더 읽어야 겠습니다. 가을만큼 독서하기 좋은 시간도 없을테니까요.

한줄평 : “최고의 노자해설, 꼭 읽어보시길”

★★★★☆


인간은 이 세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면서 살아갑니다. 또 생각의 투영을 통해 자신과 아무 관계없이 그저 존재하는 자연 세계와 인간이 관계 맺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만물 중 인간이 있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 외에, 인간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단언컨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버스, 전화기, 컴퓨터, 물동이, 칫솔, 야구방망이 등 사물은 물론 민주주의, 국회, 독재, 법원 등 모든 제도 역시 인간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자연 세계 위에서 부유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삶의 방향은 바로 생각의 방향이고, 가치의 충돌은 생각의 충돌이며, 제도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와 직결됩니다. 다시 말해 생각을 추적하는 일이 삶을 추적하는 일이고 결국 인간의 정체를 추적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P.17,18

빙고!

언젠가 ‘어떤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몇 사람이 모여 한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지요. 우리가 모두 경험해봤겠지만, 하고 싶은 말을 참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옮기지 않고 혼자만 가지고 있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이 힘든 일을 해내면 훌륭한 인격자로 인정받지만, 힘들다고 지키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나 가벼운 사람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심지어 예상치 못한 큰 화를 부를 수도 있고요. P.42

알면서도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말을 참자.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훌륭한 사람(군자)은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를 도모하지 모두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처럼 똑같게 하려 하지 않는데, 좀 부족한 사람(소인)은 유니폼을 입혀 놓은 것처럼 똑같게 하려 하지 차이를 인정하는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P.58

내가 하는 행위에도 이것을 적용할 수 있지만, 남을, 인재를 다루는 방식에도 적용되어야 할 원리다. 하지만 이것이 지배논리로 발전된다면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서양에서는 탈레스를 ‘철학의 아버지’로 부르면서 최초의 철학자라는 칭호를 붙입니다. 탈레스는 이 세계의 근원은 물이라고 말했어요. 탈레스가 이 말을 하기 전에 당시 사람들은 모두 이 세계의 근원은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신의 뜻으로 이 세계가 이뤄졌다고 믿던 당시 사람들과 달리 탈레스는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는 능력에 의존해서 이 세계가 물을 근원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이해했지요.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고 하는 이유는 이처럼 신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 스스로의 생각으로 이 세계와 마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의 근원을 물로 이해한 탈레스의 생각이 화학적으로나 물리학적으로나 지구과학적으로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탈레스가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중시하기 때문이지요. 철학은 믿음에서 생각으로, 신에게서 인간으로 이동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P.70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인 이유가 이런 것도 있구나

흔히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오래된 학문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다루는 텍스트가 굉장히 오래됐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동양철학은 신흥 학문이예요. ‘철학’이라는 번역어가 동양에 들어와 학문으로 본격 진행되는 것이 1847년부터 입니다.

1847년 일본 학자인 니시 아마네가 ‘philosophy’라는 단어를 철학’으로 번역하면서 철학이라는 말이 동양의 학수계와 사상계로 진입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철학이 하나의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의 하나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어요. P.167,168

현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나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나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 사람을 기점으로 현대를 해석한다면 결국 이성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되지요. 칼 마르크스는 우선 근대적 세계관에서 가장 중심적 지위를 차지했던 이성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존재성을 가지는 물질의 부산물로만 존재한다고 폭로합니다. 매우 분명하고 명징한 이성적 활동들이 사실은 사회계정젝인 조건과 같은 물질적 기반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버리지요. 프로이트는 마르크스와는 다른 각도에서 현대를 엽니다. 그는 인간의 의식 활동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힘은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이라고 말합니다. 프로이트가 이런 말을 하기 전까지 인간의 의식 활동은 바로 명징한 이성의 활동일 뿐이었죠. 그런데 프로이트가 등장해서 오히려 이성적 활동으로 보였던 것들은 사실 성적인 의미가 강한 무의식의 발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인간의 근본적인 뿌리는 이성이 아니라 성적 욕망을 내용으로 하는 무의식이라는 것이죠.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그의 저작 <니체와 철학>에서 “현대 철학은 대부분 니체 덕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니체 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니체가 바로 현대라는 것이죠. 니체가 왜 현대입니까? 그는 근대 이성을 계산적 이성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성이 아니라 동물적인 권력에의 의지가 우주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이성은 정신으로 존재하고 의지는 육체로 존재하죠. 근대가 이성의 시대였다면 현대는 비이성, 즉 ‘육체성’의 시대입니다. 마르크스의 사회 경제적 조건도, 프로이트의 성적 욕망도, 니체의 의지도 모두 육체성입니다. 육체성은 바로 구체성입니다. P.179,180

그런데 유가와 도가는 분명히 차이가 있긴 합니다. 유가는 채우고 채우고 채워서 그 높이를 우주의 높이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보고, 도가는 비우고 비우고 비워서 우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 것이거든요. P.182

신념이 강한 사람은 행동이 경박합니다. 이념이 강한 사람은 행동이 가볍습니다. 진리에 대한 신념이 강한 만큼 행동의 근거가 너무나 분명하거든요. 이 분명한 근거로부터 확신을 부여받는 순간 과감해져버립니다. 반면 이념에 집중하지 않고, 세계 자체에 몰두하는 사람은 세계가 관계와 변화 속에 있음을 인지하고 변화를 발생시키는 중첩된 경계들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경계에 서는 혹은 대립면을 품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죠. 이런 사람의 행동은 과감하지 않고 중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숙한 손님이 중후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P.248,249


최진석

1959년 음력 정월에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태어나고, 유년에 함평으로 옮겨 와 그곳에서 줄곧 자랐다. 함평의 손불동국민학교와 향교국민학교, 광주의 월산국민학교, 사레지오 중학교, 대동고등학교를 나왔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흑룡강대학교를 거쳐 북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삶의 지혜와 인문학적 통찰을 담은 강연 및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문·과학·예술 분야 국내 최고 석학들이 모인 인재육성기관 ‘건명원建明苑’의 초대 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는 누구인가』(공저)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인간이 그리는 무늬』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등이 있고, 『노자의소』(공역) 『중국사상 명강의』 『장자철학』 『노장신론』 등의 책을 해설하고 우리말로 옮겼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은 인문학에 목마른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감탄과 감동을 자아낸 ‘EBS 인문학 특강’을 기반으로 엮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문학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인문적’으로 사고할 능력을 기르는 데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노자 철학의 탄생 과정을 비롯해, 현대인에게 필요한 ‘인문적 사고의 힘’을 기르는 방법을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 책을 통해 생각의 틀을 깨는 정신적 자유를 회복하고, 진정한 덕성과 행복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