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대 비극

2016년 독서목록 29/120 (2016.5.14)

[셰익스피어 4대 비극] — 셰익스피어연구회/아름다운 날

셰익스피어를 왜 읽어야 할까? 아들이 책을 많이 읽기를 원하셨던 나의 어머님께서는 내가 어릴적 집에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을 사다 놓으셨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중학교 무렵에 다양한 세계문학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아뿔싸, 그런데 어머님께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한국문학은 괜찮은데, 외국문학에는 번역이라는 벽이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책들이 차탈레 부인의 정사장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어렵기 그지 없었으니, 내가 서양의 고전문학에서 더 멀어진 계기가 된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최근의 일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류 문학의 유산 중 최고로 손꼽힌다. 얼마전 읽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도 야만인 존은 우연히 얻게 된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고 그 구절을 암송한다. 아마 헉슬리는 문학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꼽을 것 같다. 왜 셰익스피어가 최고지? 그렇다면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독서모임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이 정해지고서 내가 제일 궁금했던 것은 번역이었다. 번역이 제대로 안 된 책이라면 걱정인데…다행히 내가 어릴 적 읽은 세계문학전집처럼, 대학 교수들이 번역의 대부분을 조교들에게 시키고 자신은 이름만 올리는 그런 번역이 지금은 잘 없다.

이제야 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최고의 문학으로 손꼽히는지 조금을 알겠다. 셰익스피어 이후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셰익스피어가 표현한 인간 내면의 묘사를 따라해 왔는지 아제는 좀 알겠다. 왜 아직도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절찬리에 상영되는지 이제야 좀 알겠다. 영화로 얼핏 스토리를 알고 있는 이야기도 제대로 된 전집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제 당신도 셰익스피어를 만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갈증이 있다면 말이다.

한줄요약 :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인간의 나약한 내면”

★★★★★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인가! p.24

이 표현의 원작이 셰익스피어구나. 우리가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들이 얼마나 나오는지 잘 살펴보아야 겠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건 그저 잠자는 것일 뿐, 잠들면 마음의 고통과 육신에 따라붙는 무수한 고통은 사라지지.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그러면 또 꿈도 꾸겠지. 아, 그게 문제로다. 이 세상의 고민에서 벗어나 죽음 속에 잠든 때에 어떤 악몽이 나타날지 생각하면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지. 그래서 결국 괴로운 인생을 그대로 이끌고 가는가. 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모욕을 참겠는가. p.71

가장 유명한 표현.

그대는 가난하지만 더욱 풍요롭고, 버림을 받았으므로 더욱 소중하며, 경멸을 당했으므로 더욱 사랑스러운 분이 되셨습니다. p.305

매우 멋진 반어 표현이다. 극단에서 반전을 주는 표현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장님이 되어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은 전부 효자가 되지.

운명의 여신은 매춘부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는 문을 잠그네. p.346

운명의 여신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1564년 4월 23일 런던 북동쪽의 한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tford upon Avon)에서 존 셰익스피어(John Shakespeare)와 메리 아덴(Mary Arden) 사이에서 장남이자 셋째 아이로 태어나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셰익스피어는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 중등학교)’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여기서 라틴어, 그리스어 기초를 배우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나 영국 역사에 대해서 읽고 배울 수 있었으며, 덕분에 영국 역사극과 로마의 영웅들을 소재로 한 비극을 쓸 수 있었다. 그는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한 후 극단에 들어가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고, 1585년에서 1592년까지 런던에서 배우, 작가로서 성공하기 시작, 1595년경, 런던 연극계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20여 년 간의 작품 활동을 통하여 희곡 38편, 154편의 소네트, 2편의 이야기 시와 몇편의 다른 형식의 시를 썼다.

그가 극장가에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에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의 극작가들이 많…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는 1564년 4월 23일 런던 북동쪽의 한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tford upon Avon)에서 존 셰익스피어(John Shakespeare)와 메리 아덴(Mary Arden) 사이에서 장남이자 셋째 아이로 태어나 1616년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셰익스피어는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 중등학교)’ 정도의 교육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여기서 라틴어, 그리스어 기초를 배우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나 영국 역사에 대해서 읽고 배울 수 있었으며, 덕분에 영국 역사극과 로마의 영웅들을 소재로 한 비극을 쓸 수 있었다. 그는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한 후 극단에 들어가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고, 1585년에서 1592년까지 런던에서 배우, 작가로서 성공하기 시작, 1595년경, 런던 연극계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 20여 년 간의 작품 활동을 통하여 희곡 38편, 154편의 소네트, 2편의 이야기 시와 몇편의 다른 형식의 시를 썼다.

그가 극장가에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에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의 극작가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 극작가 로버트 그린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질투심에서 그의 학식이 낮음을 가지고, “라틴어는 조금밖에 모르고 그리스어는 더욱 모르는 촌놈이 극장가를 뒤흔든다”고 은근히 비꼬았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이 그들을 ‘대학 출신 재간꾼(University Wits)’ 정도로 부르고 있지만, 셰익스피어를 ‘대가(Master)’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적 정신에 대한 마땅한 예우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게 된 데에는, 그가 운 좋게도 풍부한 문학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도 한몫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던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문예 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제반 양상들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성숙한 문학적 또는 문화적 분위기,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문학 작품 이상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참고서 역할까지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장르별로 크게 희극(Comedies), 비극(Tragedies), 역사극(Histories)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작 연대는 대체로 4기로 나눈다. 1590년경 당시 유행하던 유혈 낭자한 통속 복수 비극의 특성이 있는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Titus Andronicus)>를 시작으로 한 1기(1590∼1592)는 습작기였다. <실수 연발(The Comedy of Errors)> 같은 소극(farce), 엘리자베스 여왕의 할아버지 헨리 7세가 튜더 왕가를 이루면서 장미전쟁을 종식하기 직전의 역사를 다룬 역사극 3부작을 쓰기도 했다.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을 정도로 영국의 큰 보물이었다.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리어 왕』,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으로 세계 최고의 극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 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주로 짐작이나 추측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최근 그의 실존 여부의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