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방명록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6 min readFeb 11, 2017

2017 독서목록 7/100 (2017.1.25)

[스위스 방명록: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 — 노시내/마티

스위스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멋진 알프스, 맛있는 초콜렛, 철통같은 은행, 영세 중립국, 높은 국민소득, 최고급 시계… 그래도 이미지가 좋은 것들이 많이 떠오르네요. 여유만 된다면 정말 당장 비행기표를 끊고 스위스에 가서 산악열차도 타고, 알프스 관광도 하고, 스키도 타며 인생을 즐기고 싶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으니 그것은 마음속의 로망으로 남겨야겠습니다. 그런 스위스에 대한 동경은 저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사실 유럽에서도 수많은 사람들도 그런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니체, 헤세, 바그너 등 수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이 스위스를 다녀가거나 잠시 살았었습니다. 스위스의 호젓한 시골에 별장을 짓고 몇 년간 살면 어떤 기분일까요?

노시내의 [스위스 방명록: 니체, 헤세, 바그너, 그리고…]음 묘한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처음에는 정여울씨의 [헤세로 가는 길]처럼 철학자에 대한 소개와 여행기 정도로 생각하고 책을 골랐습니다만, 그런데 이 책에은 스위스의 역사에 대한 소개가 더 많습니다. 니체, 헤세, 바그너에 대한 소개는 아주 적은 분량이고 대부분 스위스의 주요 인물들과 도시, 그리고 그것에 대한 최근의 역사적 배경 등을 소개합니다. 어느 나라를 여행할 때, 그 나라의 명승지를 보고만 오는 것은 크게 감동적이지 않지만, 그 명승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인물들에 관심이 있어서 여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홍준씨가 소개한 ‘사랑하면 알게되고, 아는만큼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말이 이 책에 딱 맞는 구절인 것 같습니다. 스위스를 여행하기 전에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감동을 느께게 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정말 아는 것이 없어서 지금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무엇을 보고 무슨 감동을 받았는지 남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사진만 남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어디 가서든 사진만 열심히 찍는 사람도 있긴 하지요. 어찌 보면 지금 스위스로 훌쩍 떠날 여유가 없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가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 이렇게 책을 통해서 보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으니까요.

한줄요약 : “스위스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서, 깊이가 있다”

★★★★☆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이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명성 드높은 관광지가 된 것은 확실히 영국인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벌써 1864년에 요하네스 바드루트의 쿨름 호텔에 영국인이 묵고 있었다는 사실로도 짐작할 수 있듯 영국인들은 스위스 산악지대가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되기 훨씬 전부터 그 아름다움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으며 18세기부터 알프스로 빈번히 발걸음을 했다. 식민지지배의 역사가 오래된 영국인에게 해외 장거리 여행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었다.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알프스로 향한 영국인들은 주로 귀족들이었다. 당시 영국 상류계급의 자제들은 가정교사와 함께 유럽을 돌아보는 전통이 있었고, 그 여정에는 유럽대륙을 동서남북으로 잇는 교통의 요지인 스위스가 들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들이 남긴 여행기는 스위스를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누구보다 앞서 산업혁명을 이루고 부를 축적한 영국인들은 점차 대중적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철도의 발달로 국내외 여행은 더 빠르고 안락하고 저렴해졌다. 한편 급속한 산업화의 여파는 많은 이들을 자연을 그리워하게 만들었고 이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산행으로 황폐해진 마음을 달랬다. 산을 타는 취미에 심취한 영국인들이 세계 각지의 산악지대를 탐색했고 알프스는 곧 이들에게 이상적인 목적지로 자리매김했다. 1857년 세계 최초로 알프스등반 동호회 ‘알프스클럽’이 창립된 장소도 스위스가 아닌 영국 런던이었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스위스인들은 1863년 서둘러 ‘스위스 알프스클럽’을 설립했지만 영국보다 6년이나 뒤늦었다.

알프스 전역이 영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되는 현상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또 한 사람은 단체여행의 창시자이면서 근대 관광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인 여행업자 토머스 쿡(Thomas Cook,1808~92)이다.

토머스 쿡은 1841년 교통과 숙식을 포함하는 저렴한 국내외 여행 상품을 기획해 참가자를 모집하고 여행지로 인솔하는 패키지 여행을 고안해낸 최초의 인물로, 단체할인요금이라는 새로운 컨셉으로 관광의 대중화에 이바지했다. 1963년 6월 런던의 청년알프스클럽 소속 영국인 남녀 6인은 쿡이 조직한 세계 최초의 알프스 단체관광 ‘그랜드 투어’에 참가한다. 이때 쿡 본인도 62명의 참가자를 이끌고 직접 스위스로 향했다. 스위스에 가는 건 그에게도 첫 경험이었다.

스위스에서 3주를 보내고 귀국한 여섯 젊은이들은 여행기를 작성했고, 쿡은 이들의 경험담을 여행서로 출간해 더 많은 여행객을 모으는 사업수완을 보였다. 알프스를 보러 가려는 여행객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추세를 감지한 스위스 관광업계 종사자들도 방문자들의 수요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리하여 스위스는 19세기가 끝나갈 즈음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굳히고야 만다. 그와 함께 한때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었던 험준한 알프스는 마음의 안식과 신체 단련의 기회와 멋진 경치를 제공하는 종합 휴양지로 이미지 변신을 겪는다. p.41,42

스위스가 원래부터 관관 명소가 아니었구나. 우리나라도 잘 해서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전 국민 동원체제로 국방을 강화하고 지정학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추축국과 격돌하는 참사를 영리하게 피해가던 이 시기, 스위스는 비록 국경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었음에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30만명의 난민을 받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유대인은 3만 명에 불과했고, 또 다른 유대인 수만 명이 국경에서 입국을 거절당했다. 영화 제목처럼 ‘우리 배는 꽉 찬 상태’라며 살기 위해 절박하게 문을 두드리는 유대인 난민을 죽음의 길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당시 전 유럽을 휩쓸던 반유대주의와 민족주의의 물결에서 스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눈에 유대인은 유럽인과는 다른 인종이며, 스위스 사회에 통합되기 어려운 이교도였다. 게다가 전 국민이 물자부족에 시달리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시기에 난민의 증가는 불편한 경제적 부담이었다. 박해를 이유로 유대인 난민을 받아주기 시작했다가는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죽음을 피해 스위스로 몰려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스위스 정부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관해 모르지 않았지만 어설픈 동정은 금물이었다. 국익과 자국민의 안녕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p.134,135

스위스의 이기적인 면이다. 스위스는 상당히 폐쇄적인 면이 있는 나라다. 무조건적인 로망은 금물.

노시내

연세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까운 이들은 공부강박증이라고 놀리지만 지금도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진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압도당할 때는 아무거나 들고 읽기 시작하는 활자중독자다. 유학을 떠난 이래 햇수로 18년째 타국생활 중이다. 미국에서 8년, 일본에서 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4년, 지금은 2년째 스위스 베른에 머물며 글을 짓거나 옮기고 있다. 『일본의 재구성』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등의 책을 옮겼고 『빈을 소개합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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