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사의 길을 가다

2018 독서목록 1/100 (2018.1.6)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8 min readSep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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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사의 길을 가다: 압록강 넘은 조선 사신, 역사의 풍경을 그리다] — 서인범/한길사

“무사”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중국으로 간 고려의 사신 일행이 그 과정에서 분쟁에 휘말리며 전투를 벌이는 영화인데, 당시에 상당히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특히 정우성이 펼치던 창술과 안성기의 활솜씨가 일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면 일국의 사신임에도 참 위험스러운 상황을 많이도 맞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각 국에 외교관을 파견하고 대사관도 만들고 치외법권으로 인정받고 있고, 하루이틀이면 비행기를 타고 안전하게 오갈 수 있습니다만, 과거에 사신들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일행이 정말 사신인지를 증명하기도 쉽지 않았을테고, 또 언제 어느 나라에서 사신이 온다고 미리 통보되지도 않았을테니 상대국의 국경을 지키는 관리에게 뇌물도 줘야 했을 것이고, 중간에 도적이나 산짐승의 습격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사신으로 선발되서 다른 나라에 다녀온다는 것은 정말 목숨을 거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서인범의 [연행사의 길을 가다]는 독특한 시각의 역사책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신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하지만 그 사신의 일행들이 얼마나 고생스럽고 위험한 길을 다녀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동국대 사학과 교수인 서인범은 표해록(漂海錄)과 연행록(燕行錄)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을 다녀오던 길을 따라갑니다. 표해록은 성종때 제주에서 배를 탔다가 풍랑으로 표류해 중국의 강남지방에 도착해서, 우여곡절 끝에 북경을 거쳐 요동반도를 통해 조선으로 돌아온 최부라는 관리가 쓴 책이고, 연행록은 조선시대 사신들의 기록물입니다. 서인범은 이 책에서 조선시대의 사신들이 왕래한 여정을 통해 그들이 겪었던 여러가지의 일들을 설명하며,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조선의 외교활동의 원인이나 결과를 보여주는 책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 외교의 과정 중에 특히 사신들의 이동 과정을 보여주는 책은 처음 읽어봅니다. 내용이 신선하고 서술의 방식이 독특해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조선시대에도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최근 이루어진 남북정상의 만남을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 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또 그를 둘러싼 미국, 일본, 중국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없습니다.

한줄요약 : “조선시대 사신, 완전 개고생”
★★★☆☆

서장관: 그래, 애석한 이야기야. 조선에서는 임란 때 우리나라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구원해준 명나라를 재조지은再造之恩, 즉 나라를 다시 세워준 나라로 떠받들었지. 물론 의리와 명분도 중요해. 그런데 외교라는 게 의리만 가지고 할 수 있겠나! 야만족이라고 치부하던 후금이 얼마나 성장해서 어떤 힘을 기르고 있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거지.
이곳은 춘신사 나덕헌 등이 [국서]國書를 내버린 장소로 유명한 곳이기도 해.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가 국호를 청이라 정하고, 숭덕崇德으로 연호를 바꿨지. 다른 나라 신하들이 태묘太廟에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의 예를 행했는데, 오직 나던헌·이확李廓만이 절을 하지 않았어.
서인범 : 청나라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례하게 받아들였겠는데요. 홍타아지가 분노했겠네요?
서장관 : 아냐! 화를 참았어. 홍타이지는 “조선 사신의 무례함은 일일이 들어 말하기 어렵다. 이것은 다 조선이 원망을 맺으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짐朕이 먼저 빌미를 열어 사신을 죽이게 한 다음 맹세를 어겼다는 책임을 나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이다. 짐은 결코 한때의 작은 분노로 분풀이하지 않으련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할 때에도 사신으로 온 자를 죽이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조회朝會에 참가했음에야. 불문에 부치라”하며 나덕헌을 살려주었네. p.119

청나라는 본래 스스로를 여진이라 일컬었으나 숭정 8년1635 만주滿州로 바꾸었다. 만주는 문수보살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에서 따왔다. 그들이 얼마나 문수보살 신앙을 널리 신봉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은 중국의 동북부 지역인 요녕·길림·흑룡강 동부지역에서부터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沿海州와 한국의 동북부지역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거주했다.
여진족은 숲에서 모피를 획들할 수 있는 담비를 잡거나 인삼을 채취했고, 평지에서는 농사를 지었다. 명나라는 이들 여진족을 남쪽의 건주여진建州女眞, 북쪽의 해서여진海西女眞, 모란강·흑룡강 일대의 야인여진野人女眞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명나라는 여진족 부족 추장에게 무관직을 제수했다. 추장은 자신의 부족을 직접 다스리면서 말이나 모피를 명나라에 진상하고 그 답례품으로 견직물을 받았다.
전주좌위의 한 추장의 아들로 태어난 누르하치는 각 지역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을 통일해 1616년 현재의 요녕성 신빈 新賓만주자치현 허투알라를 도성으로 정하고 후금을 건설했다. 그는 3년 후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는 사르후 전투에서 20만 명에 달하는 명나라 군사를 대패시키고 1621년 요양을 점거했으며 1625년에는 도성을 심양으로 천도했다. 이듬해 9월 누르하치가 죽자 여덟째 아들인 홍타이지가 후사를 이었다. 그는 미완성인 궁전을 계속 축조해 1632년 궁준의 주요 부분을 완성했다. 1635년 홍타이지는 여진족의 이름을 만주족으로, 심양을 성경盛京으로 고쳤다. ‘성경’은 만주어로 ‘번영하는 도시’라는 뜻이다. 이듬해 1636년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바꾸면서 각 궁전의 명칭도 정했다. 1644년 순치제가 산해관을 넘어 북경으로 들어가 그곳을 수도로 삼자 성경은 배도陪都로서 동북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p.176,177

임경준 : 누르하치는 건주여진 출신이지요?
서인범 : 맞아. 건주좌위의 한 추장의 아들로 성은 애신각라(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야. 원래 기오로가 성으로, 후에 만주어로 금金을 의미하는 아이신을 붙였어. 그의 조상의 탄생에 관해 이런 전설이 있지.. 어느 날 백두산 동쪽 부쿠리 산 기슭 호수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세 명의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어. 그때 까치가 가져온 붉은 과실이 막내의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여인은 곧 임신하게 되었지. 이 막내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누르하치의 시조라는 거야.
임경준 : 재미있는 얘기네요. 누르하치는 어떻게 세력을 키웠나요? 요동 총병관 이성량이 누르하치를 비호하다가 실각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서인범 : 음, 누르하치는 이성량의 비호를 받아 세력을 키웠어. 당시 요동 지역의 최대 상품은 담비 모피와 인삼이었는데, 모피는 북경의 고위 관료들에게 목도리로 팔렸고 인삼도 고가로 팔렸어. 중국 강남 지역에서는 인삼을 구입하려면 인삼 무게만큼의 은을 주어야만 했을 정도로 비싸게 거래되었지. 누르하치는 이들 특산품을 장악해서 이익을 취했고 그 과정에서 이성량과 결탁해 그의 보호를 받았던 거란다. 결국 만력 36년1608 이성량은 ‘기지담로’棄地啗虜: 땅을 버리고 오랑캐를 꾀어냈다 라는 죄로 실각당하게 되지. 한인이 개척한 압록강 유역의 관전官田 일대 700여 리 약 270킬로미터 를 누르하치에게 뇌물을 받고 방기했다는 죄목으로 처벌당했던 거야.
임경준 : 이 일로 누르하치가 명나라 조정이 대립하게 되지 않았나요?
서인범 : 그렇지. 누르하치에 대한 명나라의 대응이 엄격해졌어. 누르하치는 해서여진을 병합하고 명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네. 그는 만력 46년1618 명나라가 누르하치의 부친과 조부를 이유 없이 죽였다는 등 총 7개 조항을 내세우면서 공격을 시작했어. 이른바 ‘칠대한’을 들어 명나라를 공격한 거지. 그러자 명나라 조정은 요동경략遼東經略 양호로 하여금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4로路로 공격해 누르하치를 토벌하도록 했어. 이에 맞선 누르하치는 우선 무순撫順 방면에서 진격해 온 총병관 두송杜松의 군대를 사르후에서 섬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지. 곧이어 개원開原으로부터 진격한 총병관 마림의 군대를, 남쪽에서는 총병관 유정의 군대를 대파했단다. 유정은 임란에도 참전했던 용장이었어. 또 다른 부대였던 이여백李如栢은 아군의 패배 소식을 듣고 철군했지. 이 싸움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를 알리는 역사의 분기점으로 작요했어.
임경준 : 동아시아의 패권이 달라졌군요. 이 당시 우리나라 군사도 참전했나요?
서인범 : 바로 도원수 강홍립이 이때 참전했지. 명나라의 군사파견 요청을 받은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가서 돕도록 했어. 이 가운데 조총을 다루는 포수가 3,500명으로, 명나라 장수 유정 휘하에 배속되었지. 후금 군대의 기습을 받고 유정 군대가 패하자 강홍립은 곧바로 청나라에 투항했어. 그렇지만 장수 김응하는 훌로 큰 나무에 의지해 활 세 개를 번갈아 쏘아 많은 적을 죽였네. 후금 군사의 철창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는 데도 활을 놓지 않아 적들도 감탄하고 애석해했다고 하네. 그가 통솔했던 군사 3,000명도 전사했어. p.20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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