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밤중 삼거리 작업실

2017년 독서목록 71/100 (2017.12.27)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11 min readSep 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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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 삼거리 작업실: 클라이언트의 거친 생각과 디자이너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아트디렉터] — 홍동원/동녘

저는 어릴 적부터 잡지 광고에 만년필로 쓴 듯한 멋진 글씨로 보고 동경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급스러운 수첩이나 필기구를 보면 갖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결국 서랍 속에는 만년필과 펜촉, 그래고 수십병의 색색별 잉크가 굴러다닙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캘리그래피도 조금 배우고 해서 제법 흉내는 내니, 저질러 놓은 지름에 대해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얼마전에는 메모지에 휘갈겨 써놓은 글씨를 집사람이 얼핏 보고는, 인쇄된 글씨인줄 알았다며 놀란 얘기를 할기도 해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또 스티브 잡스가 캘리그라피 수업을 들었을 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한 것을 떠올리면서, 잡스 형님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혼자 생각하며, 그 뿌듯함을 한껏 키우곤 합니다. 저는 도대체 왜 이럴까요?

조금씩 사모은 게 제법 됩니다.

아트디렉터 홍동원은 주로 글자와 관련된 디자인을 하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오설록’이나 ‘행복이 가득한 집’ 같이 우리가 자주 보던 글씨체 디자인을 하신 분이고, 또 우리가 잘 모르는 많은 것들을 디자인 하신 분인입니다. 제가 글자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그의 책 [오밤중 삼거리 작업식]을 괜시리 관심이 갔습니다. 디자인을 하는 작가가 그런 작품을 하게 되는 과정을 덤덤하고 쉬운 글로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고 소소하니 따뜻하게 읽어갈 수 있는 책입니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는 분이라도 쉽게 따라가면서 볼 수 있는 책이니, 거기에 저처럼 글자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것 같습니다. 가볍고 편하면서 따뜻하게 독서하고 싶은 분에게 추천드립니다.

우리의 한글은 정말 뛰어난 글자입니다. 이런 글자를 더욱 멋지게 디자인하고 서체를 개발하고 하는 일들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에게 맡겨진 사명일지도 모릅니다. 한글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아름다운 한글 서체가 세상에 나오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언제고 한글 캘리그라피도 좀 배워보아야 겠습니다.

한줄요약 : “한글 서체 디자인, 궁금해?”
★★★☆☆

그리스 사람들은 창의성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혼을 ‘데몬’이라고 불렀다. 소크라테스는 저 멀리 어딘가로부터 ‘데몬’이 자기에게 지혜의 말을 전해 준다고 믿었다. 로마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들은 육체에서 분리된 창의적인 혼을 ‘지니어스’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로마 사람들에게 ‘지니어스’란 말이 천재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지니어스’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벽 속에 살고 있는 마술적인 신성한 혼, 다시 말하면 일종의 요정 같은 것이라고 믿었던 셈이다.
‘지니어스’는 예술가들이 작업할 때 벽 속에서 몰래 기어 나와서 예술가들의 작업을 도와주고 그 작업의 결과를 정해 준다. 그러니까 예술가가 멋진 작업을 해낸 것은 ‘지니어스’가 때 맞춰 강림해 계시를 내렸기 때문이고, 만일 결과가 형편없었다면 ‘지니어스’가 게으름을 피웠다는 말이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결과물로 만들 수밖에 없는 디자이너로서 면피를 할 수 있는, 마음에 드는 이야기다.
이런 ‘지너어스’에 대한 생각이 오랜 기간 이어지다가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신이라든가 신비 같은 것을 무시하고, 각 개인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는 거창한 생각을 가지면서 인간은 건방져졌다. 이것이 합리적인 인간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라면 몰라도 그 양반 발끝도 못 따라가는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할 생각이 없다. 미켈란젤로는 분명 천재다. 그런 천재 앞에서 ‘지니어스’는 요정임을 포기하고 사람의 능력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천재라는 말에 우쭐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비명횡사하기 싫다. 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또 평생 디자이너로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 ‘지니어스’가 내 작업실 벽 속에 살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p.41~44

디자인을 하려면 필수의 선행 과정이 있다. 자료수집, 그리고 스케치가 그것이다. 디자이너는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것을 만들어 내는 마술사가 아니다. 성경에 보면 이에 대한 진리가 쓰여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롭게 보이게 만들 뿐이다.’ 잠시 유식한 척하자면, 하나님은 The Creator, 디자이너는 Acreator. 한국말로는 창조주, 디자이너는 창작가라 한다. p.93

사기와 진실은 백지장 차이다. 남을 속이느냐, 자신을 먼저 속이느냐가 다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과정을 지나면서 방황하지 않는 독종은 없다. 남에게 받은 의심은 의심도 아니다. 자기 안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의문은 같은 길을 힙겹게 가고 있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다. 모두를 방황하게 하고 일만 힘들어질 뿐이다. 고통스럽게 긴 터널을 지나 끝이 보일 때 즈음 나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불면증이 생겼다. 새벽까지 일하고 지쳐 쓰려져 있는 디자이너들 옆에서 한 쪽 한 쪽 화관을 넘기며 며칠 후 만들어질 책을 상상하며 날을 샜다. 그렇게 일하면 당당하게 할 말이 생긴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p.151

헬베티카라는 글자가 있다. 지금은 컴퓨터에 기본 서체로 깔려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알고 있다. 이 글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인 1953년에 만들어졌다. 그 헬베티카와 유사한 글꼴로 우리 한글에는 고득이란 글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 글자꼴의 이름이 고딕으로 정해진 연유를 잘 모른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작명을 한 글자꼴이 아니기 때문이다.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명조도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자기 글자꼴을 만들면서 지은 이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
헬베티카는 교통표지판에서, 수많은 기업의 로고에서, 공항의 이정표에서, 또 인쇄물에서 쓰여지는 대표적인 글자다. 이 글자는 세계적으로 사용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름을 모른다. 그래서 스위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 ‘헬베티카’라는 책을 만들었다.
‘글꼴에 대한 존경의 표현(Homage to a Typoface)’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세상 사람들이 헬베티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수많은 화보를 통해 보여준다. 빨간색 바탕에 굵은 헬베티카의 이니셜 ‘H”를 흰색으로 중앙에 놓아 스위스 국기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제본도 헬베티카의 딱딱한 글꼴의 느낌을 살려 등배가 각이진 양장본의 형태로 만들었다. 당연히 책의 본문도 모두 ‘헬베티카’의 글자꼴로 디자인되었다.
헬베티카가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사랑은 커녕 천박한 모양이라는 타박이 쏟아졌다. 2천 년 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공식적으로 영문 알파벳 대문자(당시 소문자는 없었다)를 정리하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영문 활자의 기본 모양을 갖추었다. 당시 종이가 없었으므로 돌에다 글자를 새기던 시기라 글자꼴은 당여니 세리프를 갖게 되었다. 우리가 붓으로 글자르 쓰는 문화라 명조 글자꼴에 ‘돌기’가 남아 있듯이 말이다. 그 세리프는 글자의 쓰기 습관이 바뀐 19세기 말까지도 당연하게 글자꼴에 살아남아 있었고, 아무도 그 기능적이지 않고 장식적이기만 한 모양새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헬베티카는 19세기 말, 독일 라이프치히 어두컴컴한 뒷골목 활자 공방에서 만들어졌다. 멋진 장식을 다 떼어네고 뻣뻣한 기둥 같은 성의 없는 글자꼴을 만들어 냈으니 그 타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타임스(Times)’, 프랑스를 대표하는 ‘가라몬드(Garamond)’,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보도니(Bodoni)’에 비해 무식한 바바리안의 상징이 되어버린 헬베티카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상징이라고 하기엔 어울린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독일 사람들 그 누구도 자랑스럽게 여지기 않았다. 글자꼴을 만들고 처음 붙여진 이름은 ‘악지텐트 그로테스크’ 글자는 한동안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며 활자 공방 구석에 처박혀 살아야 했다. 헬베티카는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은 그 꼴사나운 글자가 스위스 국경을 넘게 만들었다. 평소 그 무식한 글자꼴에 관심이 많던 스위스의 글자회사 ‘덴 하스’는 글자 디자이너 막스 미딩거에세 글자를 다듬어 달라고 부탁했고, 마침내 글자가 20세게를 대표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글자가 새롭게 완성되었을 때 관계되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 멋진 글자 모양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글자는 스위스를 만든 민족의 이름을 따서 ‘헬베티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지금 헬베티카는 독일과 스위스 국가의 공식 서체로 자랑스럽게 사용된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에 무료로 풀어놓았다. p.187

일본이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19세기 말, 그들은 스스로 ‘동양의 관문’이라고 정의했다. 관문? 서양이 아시아를 착취하러 들어올 때, 문지기를 하면서 통행세를 받으려고? 아니면 길 안내를 하며 ‘뽀찌(수수료)’를 뜯으려고? 아니다. 서양이 어떤 방법으로 동양을 착취하는지 눈여겨보려던 것이다.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빨리 개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서양에 합승해 아시아 한쪽이라도 먹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양의 지배 세력과 야합한 일본은 어느 날 갑자기 통치자를 ‘천황’이라 칭하고, 중국의 황제를 깔보기 시작했다. 일본 국민을 하늘의 민족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발전한 서양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사절단과 유학생이란 이름으로 정보 스파이를 세계로 파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발인 ‘대동아전쟁’을 꿈꾸지 시작할 때 주음 일본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려면 일본 국민부터 그에 걸맞는 지식을 갖춰야 하는데 실상은 대부분 ‘무지렁이’였다. 이대로 전쟁을 일으켰다간 그 야심찬 꿈을 이루기는 커녕, 서양 양아치들의 놀림감이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20세기를 지배할 ‘하늘의 민족’을 교육할 만한 ‘그 무엇’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지식을 국민에게 녹일 수 있을까? 그들이 내린 답은 ‘신서’였다. 그래서 세계의 알토란 같은 지식을 일본어로 번역해 신서라는 저렴한 양식으로 국민에게 대량 살포했다. 자원이 부족해 책의 꼴은 아주 작은 크기로 제한되었고,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어 가격은 누구나 경제적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쌌다. 또 일본 정부가 앞장서서 책을 팔았다. 일본이 자랑하는 신서의 스타일은 비록 서양의 페이퍼백을 베낀 것이지만,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때는 유신 혁명이 일어났던 1972년, 다음 해였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유신’으로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전국 학교에 일본의 신서를 닮은 ‘자유 교양 도서’를 대량으로 살포했다. 학교에서 단체로 구매했던 도서 보급 사업은 그야말로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시장에서 큰 대야에 생선을 떠다 파는 어머니께서 좌불안석을 정도로 책값은 3개월 월사금보다 비쌌다. 이 책은 표지나 본문의 양식이 문고판을 따랐건만, 가격만큼은 달랐다. 못살던 시절, 자식만큼은 잘살았으면 하는 소망에 학교에서 하라는 것은 무조건 따라야만 했던 그때, 버스도 입석은 15원이었고, 좍석은 25원이었던 시절, 삼중당 문고가 100원, 좀 두꺼우면 150원 정도였던 시절은 보낸 50대라면 300원이 넘는 이 책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전국의 까까머리 학생들은 입시 수준의 강도로 책을 읽어야 했다. 내 경우만 하더라고 그 책들을 읽고 숙제로 독후감을 내야 했고, 결과는 국어 성적에 반여되었다. 뺑뺑이를 돌려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던 세대이니 성적이 뭐 그리 대수냐, 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땐 무서운 ‘사랑의 매’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단행본 디자인에는 두 가지 커다란 줄기가 있었다. 20세기 중반부터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조판 방법인 가로쓰기 디자인과 지금은 사라지고 거의 볼 수 없는 전통적인 방법인 세로쓰기 디자인이 그것이다. 그에 따라 제본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글을 읽는 왼쪽매기(좌철, 左綴)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는 오른쪽매기(우철, 右綴)가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문화적으로 지금보다는 다양한 면을 찾을 수 있다. p.269

홍동원

출판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디렉터이다. 그는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였다. 독일의 에센 종합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다가 들어왔다. 문자와 언어를 다루는 편집디자인을 하려면 네 나라 문자로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니야?” 담당 교수에게 받은 질문을 곱씹다 귀국을 하였다. 이후 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위원, 서울그라픽센터 상임연구원, 디지틀조선 창간 아트디렉터, 디자인하우스 객원 아트디렉터로 활동하였다.

조선일보 섹션신문 ‘굿모닝 디지털’ 창간에 참여하여 신문아트디렉터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일간스포츠’, ‘국민일보’ 그리고 ‘한겨레신문’의 리뉴얼 디자인을 담당했다.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추천 작가로, ‘글씨’미디어 이사이자 투바이트 폰트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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