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의 철학

2015 독서목록 32/139 (2015.4.25)

[온도계의 철학 :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 — 장하석/동아시아

이 책은 먼저 저자인 장하석교수의 집안부터 알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일단 [나쁜 사마리아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등으로 친숙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 장하준씨가 친형이다. 고려대학교 장하성교수도 사촌간이다. 그의 부친 4형제는 모두 6.25전쟁에 의용병으로 참전했다고 하며, 조부의 3형제도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집안의 대단한 자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친일에서 얻은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집안이 명문가 행세를 하지만, 그들의 후손들도 물려받은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집안은 훌륭한 역사의식과 뛰어난 두뇌를 물려받은 진정한 명문가이며 그런 후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리학과 철학을 복수전공한 장하석교수는 스탠포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으며, 28살의 나이로 런던대학교 교수로 임용되고서 2005년 영국과학사학회에서 뛰어난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이반 슬레이드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이른바 ‘과학철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커토시상’(Lakatos Award, 지난 6년간 영어로 저술된 최고의 과학저작물에 수여하는 상)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 과학철학자로 명성을 알렸다. 그리고 그 수상작이 바로 이 책인 [온도계의 철학]이다.

이 책에서 장하석교수는 직접 연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과학역사에서 온도를 측정하는 것에 관련된 과학의 발전과정을 하나씩 상세하게 돌아봄으로써 과학의 진보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한편으로 앞으로의 과학의 진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위대한 과학자와 한 시대에 살고 있고, 그 위대한 과학자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흠뻑 느꼈던 책이다. 그럼에도 워낙 과학지식이 없는 나로선 읽어내기가 매우 벅찼던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한줄요약 : “과학의 진보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들을 정말 어떻게 알지?’라는 의문을 갖고 논의하는 것을, 철학자들은 공연히 거창하게 ‘인식론’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아주 실용적인 종류의 인식론 논의입니다. 우리가 다들 일상생활에서 매일같이 사용하는 온도계, 이 온도계들이 진짜 온도를 틀리지 않게 말해준다는 것을 우리가 정말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지? 온도계에 넣은 수은이, 온도가 올라가는 그대로 균일하게 팽창하는 것인지, 어떻게 시험해볼 수 있는가? 이런 순진한 질문들이 의외로 대답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책의 연구는 시작되었습니다. p.9

내가 아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내가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풀어내는 사람이 위대한 뭔가에 접근한다.

추상적이지만 이전에 아무것도 입증된 적이 없는 고정점을 찾아야만 하는 어떤 살마의 과업을 생각해보라. 이런 상황은 별들 사이의 우주 공간에 내던져져 무엇이 정지해 있는지 찾으라는 물음을 받은 이가 처할 곤경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절대적 정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인슈타인은 논외로 하더라도, 우주 공간의 별난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무엇이 움직이고 무엇이 고정됐는지 판단하는 일을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무언가가 고정됐는지 아닌지를 말하려면 그것이 고정된 것으로 밝혀져 판단의 기준이 될 만한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최초의 고정점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우리가 벽에다 물건을 걸어두기 위해 못을 박고자 하지만 사실상 거기에 아직 벽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건물의 기초를 놓고자 하지만 기초를 다질 단단한 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p.91,92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누군가가 개척한다면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그가 개척해 놓은 곳까지는 수월하게 갈 것이다. 문명의 진보는 이렇게 작은 발자국 하나하나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진보적 정합론(progressive coherentism)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흥미롭게 언급할 만한 것이 있는데, 은유에 담긴 물리적 상황이 정확히 말 그대로 이해된다면, 확고한 토대 위에 건출물을 세운다는 토대론의 주요한 은유가 사실 정학론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건축물 은유를 흔히 토대론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편평한 지구가 등장하는 우주론만큼이나 시대에 뒤진 것이다. 어떤 고대 신화 속의 우주 그림에는, 편평한 지구가 아주 커다란 코끼리의 등 위에 올려져 있고 그 코끼리는 거대한 거북이 등 위에 서 있다고 한다. 그러면 거북이는 또 무엇 위에 서 있을까?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구의 실제 형상을 생각해보자. 그러면 토대의 토대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은 잘못된 물음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편평한 지구에서 위쪽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둥근 지구에서 바깥쪽으로 구조물을 세운다. 우리가 지구에 건축물을 세우는 이유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지구가 근본적이거나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또한 지구 자체가 궁극적으로 확고한 어떤 무엇 위에 놓여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토대 자체는 다른 무엇의 토대 위에 있지 않다. 지구는 자체 내에서 응집하며 다른 물체를 끌어당기는 거대하고 딱딱하며 조밀한 물체이기 때문에 그저 토대로서 구실을 한다. 과학에서도 우리는 우리에게 처음 주어진 것 주변에다 구조물을 세운다. 거기에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출발점이 필요하지 않다. 되돌아보면 아이러니는 자명하다. 토대론자들은 정합론에 꼭 맞는 은유에 의존해왔던 것이다. p.429,430

그렇다면 모든 것을 의심에서 출발하는 데카르트는 방법은 상당히 중요한 것을 지적한 것이구나.

추상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추상화는 널리 적용되기 이전에는 일반적이지 않다.

추상적인 관념(idea)의 가치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제시돼야 한다. 첫째, 그 그럴듯함(cogency)이 추상적인 고찰이나 논증을 통해 증명돼야 한다. 이 점은 내가 이 장을 시작하며 노력했던 바인데, 의지할 만한 다른 확실한 토대가 없을 때 인식적 반복이 훌륭한 진보의 방법이 된다는 옹호하는 것이다. 둘째, 교육적으로 갖가지 구체적인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그런 관념을 끌어들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관념의 응용성(applicability)을 증명해야 한다. 인식적 반복의 관념은 내가 이 책에서 살핀 역사적 사건 각각의 과학적 진보가능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였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그런 응용성을 일반적인 것으로 넓히려면 훨씬 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p.450

과학적 탐구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체화되지 않는 생각들을 실현해 내는 데도 좋은 길잡이가 될 만한 부분이다.


장하석

장하석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는 1967년 장재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의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친형이며,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과 장하성 고려대학교 교수가 사촌으로, 그의 가족은 인동 장 씨 명문가로 유명하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 명문 고교인 노스필드 마운트 허만 고등학교를 거쳐 물리학 연구 전통이 뛰어난 캘리포니아 이공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양자물리학의 측정과 비통일성」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후(post-doctor) 과정을 밟았다. 1995년 28세의 나이로 런던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2005년 영국과학사학회에서 뛰어난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이반 슬레이드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이른바 ‘과학철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커토시상’(Lakatos Award, 지난 6년간 영어로 저술된 최고의 과학저작물에 수여하는 상)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 과학철학자로 명성을 알렸다. 수상작인 『온도계의 철학』은 토머스 쿤의 저작들과 비견되기도 하며, 2010년 40대 초반의 나이에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로 초빙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서로는 『온도계의 철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