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기원

2015 독서목록 107/139 (2015.12.20)

[이야기의 기원: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 브라이언 보이드/휴마니스트

나는 재미있는 스토리에 잘 몰입하는 편이다. 처음 스타크래프트에 빠져들게 된 것도 게임의 요소보다는 3가지 종족의 스토리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결투을 벌이는 것보다는 혼자서 미션을 완수하고 시네마틱 영상의 스토리에 더 흥미를 가졌었다. 솔직히 내가 게임을 잘 못해서 늘 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그보다 더 어릴 때는 이불속에서 [로빈슨 크루소]나 [톰 소여의 모험]같은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지금은 남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할 때나 마무리 할 때, 흥미를 끌거나 감동을 주는 약간의 스토리텔링을 가미하려고 늘 노력하는 편이다.

인간은 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될까?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끄는 스토리텔링은 어떤 것일까? 이런 궁금증이 늘 있었기에 이 책은 선뜻 손이 갔다. 제목만을 봐서는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고, 하지만 브라이언 보이드의 [이야기의 기원]은 꽤나 난이도가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이야기에 몰입하는 이유를 진화적인 관점에서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예술과 문학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 말하고 있으며, 그런 관점을 통해서 스토리텔링의 정석으로 회자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4억권 이상 팔린 동화 닥터 수스의 [호턴이 듣고 있어!]의 구조를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나면 내가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는데, 책이 너무 어려워서 뭘 읽었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언제고 내가 세상에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때가 되면, 그 때 다시 한번 읽어봐야 겠다. 쉬운 책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추천하지 못하겠고, 이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책이다.

한줄요약 : “인간은 애기 때도 이야기를 좋아해, 왜 그럴까?”

★★★★☆


인간을 교육의 산물로만 보면 문화적 수단으로 인간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환경에서 생겨난 특성은 거의 되돌릴 수 없다. 한 번 구운 감자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계가 담론이나 텍스트라고 보는 20세기 후반의 인문학자들은 — 전문적 텍스트 독해자들에게는 위안이 되겠지만 — 세계를 다르게 독해하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언어 바깥의 세계도 분명히 존재하며, 그 세계는 실질적인 사회 변화를 요구한다. p.48,49

담론과 텍스트는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담론과 텍스트 안에 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언어 바깥의 세계, 그런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는 생물학적 적응의 현대적 관념을 설명하면서, 강력하지만 까다로우며 충분한 근거가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묻는다. “인간 정신이 설계된 목적을 안다면 인간 정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이 아닐까?” p.59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을 정확하게 설정하는 사람들이 인생을 더 의미있게 사는 법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

실험 상황에서 인간의 유아는 태어난 지 한 시간 만에 어른의 미소를 흉내 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려면 아기는 어른의 얼굴, 특히 어른의 미소를 식별해야 하고, 그 미소에 모방으로 반응하려는 동기를 가져야 하며, 심지어 그 미소를 보기 전에도 어떤 근육을 움직여야 자기 얼굴에 그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배우고 지식을 공유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나중에 보겠지만 바로 그것이 예술의 튼튼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p.66

거울뉴런이 매우 중요한 기능이구나.

우리는 고도로 사회적이기 때문에 특정한 종을 이루는 내재적인 강력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우리는 감정적 경향이 확실하다. 유아는 미소에 미소로 반응하며, 무서운 시선이나 표정을 보면 겁에 질린다. 하지만 인간의 얼굴을 식별하는 내재적 도식이 있다 해도 우리는 각각의 개별 얼굴도 익혀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불과 0.1초 만에 범주화하며, 개별 얼굴은 더 전문화된 매커니즘을 통해 더 빠르게 인식한다. 그러나 개별 얼굴에 반응하도록 훈련된 신경세표를 통할 때는 속도가 약간 늦어 0.17초 정도다. 또한 잘 알고 있는 얼굴을 인식할 경우에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의 부담이 자동적으로 수반된다. p.73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상태를 알아보는 데 1초의 시간이 안 걸린다. 그래서 호감과 비호감도 순식간에 형성된다.

다윈은 그런 사치가 자연선택이론을 거스르는 듯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성적 선택이론을 추가했다. 수컷은 섹스를 놓고 경쟁할 때 다른 수컷을 물리치거나 암컷을 유혹한다. 첫째 경우, 성적 선택이 존재한다면 수컷은 몸집을 키우거나(코끼리바다표범의 수컷) 무기를 갖추고(수사슴이나 사슴벌레의 뿔) 서로 싸우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둘째 경우, 암컷의 감각기관이 수컷에 맞게 편향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수컷의 외모나 행동을 형성한다. 수컷이 암컷에게 경쟁적으로 눈에 띄는 색깔이나 형태(공작새의 꼬리), 노래 같은 행동(새들의 지저귐), 춤(새들의 구애), 집짓기(바우어새)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예술의 역사는 남성이 자기 솜씨를 과시하려는 욕망이 더 많으며, 음악가의 경우 고전음악이든, 록이든, 재즈든 성적으로 가장 풍요한 시절에 음악적으로도 가장 생산적이었다. 그러나 매우 전문화된 사회에서 예술은 공중에게 보여주는 직업적 예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p.112

예술가가 남성이 많은 이유, 역사적으로 성적 차별이 있었던 것에 더해서, 다윈의 성적 선택이론이 합쳐지니 꽤나 그럴듯하게 들린다.

우리는 타인의 관심을 갈망하지만 진부하고 예견된 내용의 이야기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리리 현실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낫다. 관심을 끌려면 이야기에 충격적이고 특이한 인물이나 사건이 포함되어야 한다. 최근의 연구는 예상에 어긋나는 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의 기억에 가장 잘 남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다른 종류의 동물들이 서로 교잡하고, 인간과 동물이 결합하고, 평범한 신체적 제약과 심리적 제약이 분리되는 이야기다. 지금도 외계인, 돌연변이, 로봇, 뱀파이어 등 여러 범주가 뒤섞이는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끈다. 심리적 능력을 가졌으나 정상적인 물리 법칙의 제약을 받지 않는 생물 — 영혼이나 신 — 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했다. p.169,170

누구를, 혹은 무엇을 이야기에 등장시킬 것인가?

흔히 유아는 기억을 갖지 못하고 동물은 매우 제한된 기억만 가질 뿐 사건적 기억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두적 표현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인지능력을 실험한 결과 상당수의 동물과 유아도 장기적 기억을 가진다는 점이 밝혀졌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민물 열대어는 야생에서 2~3년만 살아도 11개월 이상 지속적되는 연쇄적 기억을 가질 수 있다. 양은 일종의 ‘의미적’ 기억을 통해 2년 동안이나 다른 양 50마리와 인간 10명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다. 어치 같은 조류도 사건적 기억을 가진다.

13 개월 된 인간 유아의 시간에 따른 기억은 적어도 8개월 동안 유지된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는 단 한 번만 일어난 사건이라고 해도 그 종류에 관해 의미적 기억, 기대를 형성한다. 어린아이는 “언어 능력을 배우기 이전 시기에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에 관해서도 훗날 그 기억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유아는 말을 몰라도 기억을 여러 달 동안 유지하며, 나중에 말을 배우면 그 암호화된 기억을 말로 되살릴 수 있다. p.220,221

당연히 어류나 조류도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첫째, 우리는 픽션을 예술로 보아야 한다. 음악과 춤, 그리고 신체 장식과 아름다운 돌도끼 같은 최초의 시각 예술보다는 늦었지만 픽션도 엄연한 예술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전에 이미 다른 예술들을 적응으로 — 그리고 유형을 가지고 놀고자 하는 강렬한 성향으로 — 규정한 바 있다.

둘째, 우리는 픽션의 새로움을 보아야 한다. 픽션이 나름대로 적응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픽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그것은 유년기에 가상놀이의 형식을 통해 훈련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픽션을 말하고 들을 수 있으며, 그것을 원한다. p.268

인간이 이야기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종이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들의 성격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타인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우리 자신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격은 비교적 안정적이므로 성격을 예의주시하면 삶에 도움이 된다. 특히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성격일 경우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물 정보에 집중하게 한다. 이 점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는 인물이 오디세우스다. <오디세이아>에서 그는 빈틈없는 전략가이며 용감한 전사일 뿐 아니라 고대 문학에서, 나아가 그 이후에도 다재다능한 인물의 표본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한 친구에게 문학의 모든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다재다능한 인물을 꼽아보라고 말했다. 그 자신의 답은 바로 오디세우스, 라틴식 이름으로 율리시스였다. 오디세우스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그 만능의 주인공을 가지고 직접 <율리시스(Ulysses)>라는 작품을 썼다.

오디세우스는 “왕이자 거지, 영웅이자 사기꾼, 신사이자 악한, 가장이자 방랑자, 충직한 남편이자 방황하는 연인이었으며, 이기적이면서도 동정심이 많았고, 무자비하면서도 상냥했고, 신중하면서도 무모했다.” 그는 불굴의 인내를 자랑하는 나무랄 데 없는 영웅이지만 이상적인 인물은 결코 아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귀환 길에서 그가 거둔 최대의 승리는 동시에 최대의 재앙이기도 하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는데, 그 자신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그 어리석음(아울러 책략)으로 인해 그는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서 결국 동료들의 목숨을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는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동시에 인간 경험의 모든 것을 겪는 인물이다. p.315,316

등장인물의 중요성.

복수는 날카로운 호기심에서 도덕적 분노까지 격렬한 감정을 일으킨다. 보복의 성공과 위험이 다가오면서 불안이 엄습한다. 복수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오로지 도덕적 분노만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복수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욕망을 자극하고 결말에 가서는 큰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오레스테이아(Oresteia)>(고대 그리스의 아이스킬로스가 쓴 비극)부터 <햄릿>과 <제다이의 복수(The Revenge of the Jedi)>에 이르기까지 늘 이야기의 대표적인 주제였다.

우리는 인간이 되고 오랜 기간이 지난 뒤 공격과 보복의 순환을 끊는 법적 제도를 만들었다. 모욕과 위해에 대해 보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심리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있다. p.322,323

꼭 필요한 주제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한 복수가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호소력은 인물과 플롯에서 나온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예술은 예상을 배경으로 삼아 우리의 관심을 끈다. 이야기의 경우 중요한 것은 인간 본선(인물)과 경험(플롯)의 예상이다. 하지만 이야기에 고유한 예술적이거나 서사적인 예상도 있다. 이를테면 이야기 형식에 관한 예상은 이미 개발되어 있거나 우리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확인된다. 육보격 서사시 같은 형식이라면 아무래도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낯설 것이다. 저자에 관한 예상도 있다. 이것은 같은 저자의 다른 작품을 접했을 경우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작품 자체가 이끌어 내는 예상도 있다. 이와 같은 장르, 저자, 작품에 관한 예상에 따라 우리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p.358,359

중요한 포인트

스토리텔링은 우리의 사회적 지능에 호소한다. 스토리텔링이 생겨난 이유는 우리가 서로를 관찰하려는 강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정신 이론을 통해 남을 이해하는 능력이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파악하는 능력은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 이야기 능력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사건을 기술하고 전달하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사건의 기술과 전달은 단지 남들의 관심을 실제의 사건이나 가상의 사건으로 돌리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그 와 달리 이야기는 사실이든 거짓이든 남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에 호소한다. 특히 픽션은 사실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강렬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사건을 꾸며내 우리의 관심에 호소한다. 픽션은 우리의 사회적, 도덕적 감정과 가치를 끌어들여 조율함으로써 협력을 키우며,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행동의 견지에서 우리 정신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방식으로 당면한 현실을 넘어 생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창조성을 촉진한다. p.533,534


브라이언 보이드 Brian Boyd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호메로스에서부터 현대문학, 아동문학, 평전, 만화, 드라마, 에세이, 영화 등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넘나들며 그 원형을 밝히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 등 러시아 문학에 관한 연구로도 명성이 높다. 지은 책으로는 《스토킹 나보코프Stalking Nabokov》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왜 가사는 지속되는가Why Lyrics Last》 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는 《진화, 문학, 그리고 영화Evolution, Literature, and Film》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