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공부

2016 독서목록 30/120 (2016.5.21)

[자본론 공부: 김수행 교수가 들려주는 자본 이야기] — 김수행/돌베게

나에게 칼 마르크스는 불경스러운 이름이었다.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빨갱이들이라 배웠기에, 그의 책은 읽기는 커녕 자본론을 읽었다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 조차 꺼려졌었다. 칼 마르크스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그리 오래 전은 아니다. BBC에서 전문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사상가로 칼 마르크스가 단연 1위로 꼽혔다는 뉴스를 듣고서였다. 아니, 칼 마르크스가? 왜지? 그렇게 칼 마르크스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시작되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는 말을 듣고 쉽게 읽겠다는 의지가 생기지는 않았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으면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욱 내켜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만난 것이 작고하신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공부]였다. 김수행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니 공부가 좀 되겠다는 생각에 책을 펼치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실망스럽다. 김수행 교수는 책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그 주장은 대부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자의 재산을 빼앗아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지난 세기동안 인류가 큰 희생을 치르고 실패로 끝난 원론적인 주장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유주의 국가가 아닌가? 김수행 교수님의 [자본론 공부]에서 너무 아쉬운 점은 [자본론]에 대한 비판이 없다는 점이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종말의 예언한 것이, 공산주의 체제의 실패 이후에도 [자본론]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본론]을 알아야 할 이유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앞당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극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칼 마르크스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지적했고, 자본주의는 언제고 종말을 맞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칼 마르크스가 주장한 대로 자본가의 재산을 빼앗아 세계 노동자의 단결된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은 좀 어처구니가 없다. 김수행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칼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이 현대 한국에서 갖는 의미와 한계를 지적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대로 된 조언을 했어야 했다. 이 책은 누구에게 추천하기가 부끄럽다.

자본주의의 출발점을 만든 애덤 스미스와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한 칼 마르크스에서 일치되는 것은 인간의 노동을 신성함이다. 그 둘은 노동의 가치를 생산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자본주의가 꽤 발달한 지금의 사회에서 이제 인간의 노동은 기업의 이윤을 지키기 위해 줄여야 할 비용 중의 하나로 취급된다. 좀 더 나은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는 자유주의를 지켜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도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기업의 이윤도 중요하지만, 단순 노동을 해서 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노동자들의 수입도 먹고 살만하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가? 그래야 이 체제가 더 지속되고 성장하지는 않을까? 듣기만 해도 부러운 북유럽 국가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한줄요약 : “내가 자본론에 대해 설명해줄께”

★★☆☆☆


어쩌면 [자본론]은 경제에 관한 책이고, 수요와 공급의 변화로 가격이 결정되는 원리를 가르칠 것이므로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라고 속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경제를 사회의 ‘토대’라고 보면서 경제 영역의 문제가 어떻게 정치, 법률, 문화 영역 등 다른 모든 영역을 물들이고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외치는데, 이 계급투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경제 영역에서 서로 자기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싸울 뿐 아니라, 이 경제 영역의 계급투쟁이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 확산, 전파되면서 기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P.13

그렇다면 자본론의 핵심적인 내용은 사회 변혁에 있는 것인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경제 구조 안에서 자본의 역할을 설명한 것이고?

동일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인간 집단을 계급이라고 부르는데, 마르크스는 도구나 기계, 원료, 토지 등 ‘생산수단’을 가진 ‘지배계급’과, 이런 생산수단을 가지지 않은 ‘피지배계급’으로 크게 나누었습니다. 피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이 없어 자기 스스로 생산할 수 없고 따라서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배계급의 강제와 지휘에 복종하여 일을 하는 대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p.22

마르크스가 정의한 계급이 그나마 나은 것은 이론적으로는 세습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수단은 세습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부의 계급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주가 농노로부터 생산물 대신 화폐를 받았다는 사실은 봉건사회의 기본 구조를 무너뜨리는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역사적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농민이 1년에 밀 10가마를 영주에게 바치던 관행이 1년에 은화 10개를 바치는 관행으로 변화했다면, 밀 1가마의 가격은 은화 1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밀 1가마의 가격이 갑자기 어떤 이유로 은화 4개로 4배나 폭등하게 되면, 농민들이 1년에 바치는 은화 10개는 밀 10가마에 해당하는 가격이 아니라 실제로는 밀 2.5가마를 바치는 것이 될 것이고, 농민들은 이익을 보아 그들의 손에 화폐가 쌓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16~17세기에 유럽에서는 이런 물가폭등 현상(‘가격혁명’이라고 부릅니다)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금과 은이 화폐로 기능하고 있던 시기에 금과 은을 찾아 세계를 정복하던 스페인은 멕시코와 페루에서 노다지 은 광산을 발견했고, 은의 생산비가 크게 감소하여, 예전에는 은화 1개로 살 수 있던 상품이 이제는 은화 4개를 주어야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물가가 폭등하는 가운데, 영주는 자기의 사치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토지를 팔기 시작했고, 농민드은 그 토지를 사서 이른바 ‘자영농민’이 되었습니다. 자영농민들 중 일부는 대토지소유자로 성장하고 일부는 대토지소유자의 일꾼으로 되는 과정이 진행되면서, 영주와 농노 사이의 인격적 지배, 종속관계는 붕괴하게 된 것입니다. 영주들이 직영지를 팔거나 거대한 빚을 지고 몰락하는 과정에서, 더욱 큰 영주들이 작은 영주들을 무력으로 합병하여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는 이행기에 나타난 ‘절대주의 국가’입니다. p.24,25

화폐이 가치 변동은 때로는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구나.

따라서 복지국가는, 국가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선의의 제3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서민들의 거대한 자본주의 반대 정서에 부닥쳐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자본가계급과 국가가 궁리해 낸 탈출구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p.37

이렇게 과격하게 사회를 바라볼 수도 있구나. 자본론의 핵심에는 기존의 질서가 스스로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들을 담을 수 있는 지식배경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금이 ‘세계화폐’(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화폐)의 기능을 정지하게 된 것은 미국 정부가 1971년 8월 15일에 “이제부터는 미국 달러를 가져오더라도 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입니다. 1945년부터 그때까지는 세계화폐를 관리하는 국제통화기금 IMF가 공식적으로 미국 달러와 금을 세계화폐로 지정했으며, 세계 각국은 미국 달러와 금으로 국제 거래를 결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국가들은 미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발행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미국 달러가 자기의 가치(또는 구매력)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IMF는 미국 달러에 대한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35달러를 미국 정부에 제시하면 미국 정부가 금 1온스를 각국 정부에 지불하기로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전쟁이나 원조 등으로 미국 달러를 대량 발행함으로써, 금시장에서는 금 1온스가 35달러가 아니라 1,000달러에 달할 정도로 달러의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몇몇 외국 정부가 이 기회를 이용해 35억 달러를 미국 정부에 보내 금 1억 온스를 받은 뒤, 이 금을 금시장에 팔아 1,000억 달러의 거금을 챙기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자기의 금 저장소(포트 녹스Fort Knox)에 있는 금이 자꾸 줄어드니까.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주는 조항을 정지시킨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IMF 자본금 중 85%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IMF는 미국의 지시를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p.57,58

미국정부의 금 태환 거부에 이런 사례가 있었구나.

최근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실업자를 줄이는 것은 민간기업의 고유한 영역이다”라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제의 ABC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대규모 실업자는 결국 따져 보면, 민간기업들이 취업자를 대규모로 해고해야 기업의 수지가 맞겠다고 판단한 결과입니다. 취업자를 해고한 민간기업에게 다시 고용하라고 하면 민간기업이 순순히 받아들일까요? 이 때문에 정부는 실업자를 고용하는 민간기업에게 공적 작금을 지원하거나 세금을 삭감해 준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간기업은 이윤을 더 많이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취업노동자를 해고하여 실업자를 만드릭도 하고 실업자를 고용하여 취업자의 수를 늘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업자의 문제를 민간기업에게 맡기는 것은 애초에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p.131

정부가 해야할 일이 있고, 기업이 해야할 일이 있다.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이 제시하는 삼위일체 공식을 비판합니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산업자본가의 지휘, 감독을 받는 임금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새로운 가치 중 일부가 임금이라는 형태로 노동자에게 분배되고 나머지는 잉여가치의 형태로 산업자본가의 주머니에 먼저 들어가는데, 이 잉여가치가 대부자본가에게는 이자의 형태로, 토지소유자에게는 지대의 형태로, 국가에게는 세금의 형태로 분배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잉여가치가 산업자본가의 기업이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의 수입 원천이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자계급이 창조한 잉여가치입니다. 이로써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동자계급을 더욱 착취하려고 탄압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속류경제학의 삼위일체 공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P.255,256

마르크스의 견해에서 노동의 신성한 가치에 대해서는 공감이 되지만 모든 노동이 신성하다는 전제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노동에 대한 분류도 엄청나게 세분화 된 지금에 와서는 부족한 부분이 대단히 많은 것 같다.


김수행

1942년 10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살았다. 1961년 4월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모교인 대구상고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다. 대학 1학년 때 일본어를 공부하여 일본 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일찍 접할 수 있었다. 석사학위 논문은 「금융자본의 성립에 관한 일 연구」였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서울대 조교 생활을 그만두고 외환은행 조사부에 들어가 런던 지점에 부임하면서 영국 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2월부터 1975년 5월까지 런던에서 외환은행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영국의 복지사회와 공황을 모두 경험했다. 복지국가도 공황에 빠지는 것은 ‘자본주의체제’이기 때문임을 실감하여 공황을 연구하려고 런던대학교 버크벡(Birkbeck)대학에 들어가 아내가 주는 돈으로 경제학 석사(1977년)와 박사(1982년) 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원래 「The Marxian Theory of Economic Crises: A Critical Appraisal of Some Japanese and European Reformulations」였지만, 귀국해서 전두환 독재정권의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 지도교수와 상의하여 주 제목을 「Theories of Economic Crises」로 바꾸었다.

‘반독재투쟁’에 앞장서던 한신대학교의 초청을 받아들여 1982년 10월부터 1987년 1월까지 근무하다가, 1987년 6월 항쟁이 불을 지핀 ‘학문의 자유화’ 운동 덕택으로 1989년 2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에 부교수로 임용되었다. 금서로 분류되던 『자본론』을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배짱으로 제1권을 상, 하 두 권으로 1989년 3월에 번역 출판하고 제2권을 1989년 5월에, 제3권을 상, 하 두 권으로 1990년 11월에 출판했다. 이것이 『자본론』 세 권 전체를 동일인이 한글로 번역 출판한 첫 사례였다. 2008년 2월에 서울대학교를 정년퇴임하고 현재에는 ‘평생교육의 메카’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마르크스경제학을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에 관해 알기 쉬운 책을 많이 쓰고 대중강연도 많이 하고 현실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마음먹고 있다.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자본주의경제의 위기와 공황』『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공저)『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도입과 전개과정』『새로운 사회를 위한 경제이야기』『알기 쉬운 정치경제학』 ,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세계대공황: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사회의 사이』등을 집필했고, 『자본론』『국부론』『고삐 풀린 자본주의』(공역),『금융자본론』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