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주식회사

Yoon, Kyho
Reading, Thinking & Sharing Bookers
7 min readMar 28, 2017

2017 독서목록 16/100 (2017.3.2)

[철학 주식회사: 미생 플라톤의 직장생활 체험기] — 샤를 페팽/이숲

철학에 대해서 알려면 여러 철학자들을 알아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부터 시작해서, 중세의 철학자들, 그리고 근대의 철학자들이 이어서 나오고, 현대의 철학자들이 그 뒤를 이어서 달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과학의 발전처럼 철학도 어떤 철학자가 앞선 철학자의 견해에 동의하는 주장을 추가하거나, 반박하는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철학이 발전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철학을 알고자 한다고 책 몇권을 읽는 것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철학자 한 명이 탄생되기까지 그 앞에 어깨를 빌려준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철학은 무척 어렵습니다.

저같은 사람에게 샤를 페팽의 [철학 주식회사]는 참 재미있고 의미있는 책일 것 같습니다. 이 책의 구성은 참 독특하고 흥미롭습니다. 철학자들로 구성된 코기톱이라는 회사에 신입사원 플라톤이 입사를 합니다. 이 회사의 사장은 ‘신’인데, 사장을 직접 만나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목소리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인력자원실장 니체와 노조위원장 마르크를 비롯해서 여러 철학자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철학자들을 통해 우리는 그 철학자들의 특징에 대해 알아가게 됩니다. 통상적인 철학책에 비하면 겉만 살짝 핥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재미나게 철학자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는 책이라는 점이 이 책의 특징입니다. 서울대추천 인문고전 50선의 어린이 만화와 샤를 페팽의 [철학 주식회사]를 함께 읽으면 좀 쉽게 철학에 접근할 수 있겠군요. 그렇게 철학에 흥미를 갖고서 조금 깊이있는 책들을 한 권씩 읽어가면 어느덧 여러 철학자들이 내게 말을 거는 수준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나의 사고와 행동에 기준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깊이가 없으면 맹목적이고 편협하게 됩니다. 최근의 일부 극우 시위자들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 너무나 편협하다는 것에 놀라곤 합니다. 세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오직 “빨갱이”와 “애국자”밖에는 없다는 것이 말이죠. 지금은 그런 기준말고도 중요한 기준점이 너무나도 많은데 말이죠.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있겠지요. 그럼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을 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주장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양성안에서 정체된 사회가 발전과 진보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양한 철학자들의 주장과 견해를 알고서 현재 세계의 문제를 인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줄요약 : “여러 철학자들을 쉽게, 재미있게 소개”

★★★★☆

프랑스어로 ‘일(travail)’이라는 말의 라틴어 어원 tripalium이 반항하는 노예에게 가하는, 끔찍하게 길고 참혹한 고문 도구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고대 희랍인들에게도 일은 결코 기분 좋은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사유하는 현자들의 고매한 활동과 비교할 때 일 혹은 노동은 번잡스럽고 쓸데없는 짓으로 여겼죠. 세상에는 일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훌륭한 활동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친구들과 토론한다든가, 사랑하는 사람과 술을 마신다든가, 영원한 진리를 탐구하고 찬미한다든가, 아고라에서 공공의 선에 대해 논쟁한다든가……. p.10

일을 하지 않고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

어느 기업이나 자부심을 품고 있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회사에 입사하고 거기서 일한다는 것은 그간 그 회사가 효과가 입증된 규칙에 따라 완성한 프로세스들의 복잡한 체계를 따르고 거기에 적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회사에서 통용되는 규칙을 지키지 않고 혼란을 일으키는 행동은 괘씸죄로 여겨져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프로세스가 최고’인 이런 세계에서 ‘직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그 기업에 대한 최악의 모욕이 됩니다. p.26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 그곳의 규칙을 따르는 것. 젠장 그러면 정말 잘 하던가…

슬픈 피에로! 다른 직원들에게 닥쳤던 일이 드디어 그에게도 덕치고야 말았습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피에로도 더없이 꼼꼼하게 준비했지만, 결국 프리젠테이션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흔히 ‘피티’라고도 부르는 이 공개 발표에서 그야말로 죽을 쑤고 만 겁니다. 그는 피레젠테이션할 때 절대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칠판에 적혀 있는 내용을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그것을 그대로 읽었던 것이죠. 그야말로 내용을 ‘재탕’했던 겁니다. 사람들은 이미 읽은 내용을 그가 ‘재생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자, 기분이 언짢아졌습니다. 그나마 그가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은 덕분에 다행히도 상황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습니다. 파워포인트 사용자는 흔히 자신이 화면에 투사한 내용에 스스로 매료되어 청중을 바라보는 일을 잊곤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잘못은 없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남들도 뻔히 보고 있는 내용을 설명한답시고 되풀이해 읽으면서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지조차 않는 태도는 그들을 회피하거나 그들의 시선을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홀로 여러 사람 앞에 서서 프레젠테이션에 몰두한 그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을 몹시 불편하게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죠.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은 발표자가 카리스마도 없고 귀중한 시간만 허비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면 분노로 바뀝니다. p.99,100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는 방식에 대한 부분이 숨어 있다.

실장이든 부장이든 탐장이든 부서를 이끄는 책임자가 실망스럽다면, 게다가 치졸하기까지 하다면 회사 생활은 참으로 고달파집니다. 우선 부당하다는 생각부터 들죠. 서류 하나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서 책임자랍시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면 짜증이 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모욕당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부서장의 수준은 부서 전체의 수준에 영향을 미칩니다. 나를 대표하는 윗사람이 가치 없는 인물이라면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 되는 걸까요? 대통령이 자기표현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비서관들이 써준 담화문이나 앵무새처럼 읽고 있다면, 그로 인한 결과는 참담할 겁니다. 우두머리가 한심하면 국민도 직원도 그만큼 위축되게 마련이죠. 그러나 이와 반대로 우두머리가 위대한 리더라면 추종자들도 한결 성장한 듯한 느낌이 들고, 우두머리가 영감을 주는 리더라면 추종자들도 고양된 기분을 느끼게 될 겁니다. p.159,160

이런 경우를 생각보다 상당히 많지.

샤를 페펭(Charles Pepin)

1973년 프랑스의 파리 근교 생클루에서 태어났다. 국립 정치학교와 국립 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으며 현재 국립 레지옹 도뇌르 고등학교와 파리 정치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2001~2006년 프랑스 공영 TV 방송 FR3에서 『문화와 종속』이라는 철학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2006~2007년 TV 방송 Canal+에서 철학 관련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했다. 현재 전향과 심리학, 철학 매거진 등의 잡지에 글을 연재하고 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분야에서 독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 파리 MK2 극장에서 매주 월요일 공개 철학 세미나를 열고 있다. 저서에 소설 『하강(Descente)』(1999), 『부정한 여인들(Les infideles)』(2003), 철학서 『철학과 함께한 일주일(Une semaine de philosophie)』(2006), 『철학자들의 정신분석(Les philosophes sur le divan)』(2010), 『권력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Qu’est-ce qu’avoir du pouvoir?)』(2010),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때』(Quand la beaute nous sauve)(2013) 등이 있으며 2011년 만화가 쥘이 그림을 그리고 그가 글을 써 출간한 『만화보다 더 재 미있는 철학 이야기: 세계철학 백과사전(La planete des sages: Encyclopedie Mondiale des philosophes et des philosophies)』은 프랑스에서 대단한 호응을 얻은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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