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경고

2015 독서목록 1/139 (2015.1.1)

[행복의 경고 : 현대인들의 부영양화된 삶을 꼬집어주는 책]​ — 엘리자베스 파렐리/베이직북스/원제:Blubberland

내가 어릴적에 바나나는 먹어보기 힘든 꿈의 과일이었다. 실물은 시내에 나가서나 구경을 했고, 그나마도 너무 비싸서 부모님은 사주실 엄두도 내질 못하셨었다. 그래서 그나마 바나나맛 우유를 사주시면, 그걸 먹으면서 바나나가 이런 맛일 거라고 상상만 했었다. 그래서인가 아직도 프라스틱 통에 담긴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몇달전엔 겨울 양복을 산다고 와이프와 함께 가산동에 있는 마리오 아울렛엘 갔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 15만원을 주고 캐시미어가 들어간 근사한 양복을 샀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20여년 전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서 명동의 롯데 백화점에서 첫 양복을 샀을 때도 50만원을 넘게 주고 유명 메이커의 양복을 샀던 기억이 났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물질적 풍요의 세상을 살고 있다. 예전에는 옷이나 공산품은 닳아서 헤어져 못입거나, 더이상 고칠 수 없을 경우에나 사게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의 패스트 패션은 닳아서 못입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행이 지나서 못입게 될 만큼 상품의 회전이 빠르다. 공산품은 엄청난 고가품도 있지만, 기술 혁신과 물류 혁신으로 브랜드와 디자인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매우 저렴한 상품들은 다 사용하지도 못할 만큼 넘쳐나고 있다. 이런 풍요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과거 20여년 전보다 물질의 풍요만큼 정신적 풍요속에서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너무나도 풍족한 영양소, 지나치게 넉넉한 주거환경, 성형이나 의복등을 통한 맹목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등이 실제 우리의 삶을 어떻게 갉아먹고 있는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현대인들 중에서 풍요의 문제가 있는 인구보다는 아직도 빈곤과 풍요롭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인구가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명확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다소 깊이있게 설명하는 방식이어서, 대략적인 주장은 이해가 되지만 표현이 난해한 부분이 때문에 읽어나가는 데는 힘들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그렇게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도, 지나치게 어렵게 설명하는 점은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보다는, 선진국의 중산층들에게 그들의 지적인 허영심을 충족해 주는 정도로 타겟을 삼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줄요약 : “그만 먹고, 그만 가져도 되잖아?”

★★★☆☆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성공을 겨냥하지 마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겨냥하면 할수록 성공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행복과 마찬가지로 성공은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과로 발생해야 한다. 성공이란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매진할 때 뜻하지 않은 부산물로 얻어지는 것이다.” p.54

빅터 프랭클의 이 말은 전에도 참 마음에 와닿았는데, 다시 이렇게 봐도 울림이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과 추구하지 말고 뭔가에 매진할 때 부산물로 얻어지는 것이 있다. 돈, 행복, 성공, 명예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지만 그래도 뭔가 해야 한다고 확신하는가? 마약을 복용하고 폭력이 지속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을 뿐이라고 확신하는가? 하지만 사실은 빈민가와 빈민가 생활양식의 차이점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적 사고방식에 있다. 마약하는 사람들, 술 취한 사람들,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집을 주고 그 집에 살게 한다고 해서 이들의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레드펀 지역의 고층건물들은 사무직 여피족들이 일하는 그린 스퀘어(가난을 모르는 젊은 세대 중 고등교육을 받고 도시전문직에 종사하면서 한해 3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의 고층건물들과 외관상 똑같다. 이들 사이에 인과관계는 없으며 설령 있다 해도 정반대이다. 사회적 문제에는 사회적 원인이 있다. 빈민가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행위이다. 하지만 도시에는 층이 있다. 외견상 사회적 소동의 근본은 빈곤층에 맞서는 부유층이라고 하는 대도시의 힘의 역학에 있다. 계급 전쟁은 도시에 잔존하는 마지막 와비 사비를 말살하고, 별난 것들, 보헤미안적인 것들, 창의적인 것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역기능을 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띤 미의 전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p.112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현상만을 개선하려고 할 때, 우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문제를 바라보게 될 때 현상의 원인인 문제의 근본에 접근하도록 노력하자.

그래서 우리는 불쾌한 것을 제거하는 것 자체, 겉치레, 과장과 왜곡에 갑자기 피로감을 느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도시 전체가 부유하고, 모든 사람들이 은행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직이고, 깊이는 없는 허울만 존재하는 도시는 아니다. 우리는 도시 중심부에 진정한 그 무엇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진짜 먼지, 연기, 시시한 것들, 구식의 노동방식 등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들이 일하는 도시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진정한 가치인가? 아니면 단순히 오래된 것에 대한 향수인가?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노동의 실재인가? 아니면 단순히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예인선과 저인망어선들에게 항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이다. 호주의 화가 제프리 스마트가 살아 움직이는 항구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대담한 그래픽아트로 묘사한 기중기나 컨테이너선, 생기 넘치는 모습들, 갈매기들이 몰려 있는 고기잡이배 등 단순히 시각적인 동기들은 우리가 지키고 싶어하는 바로 그 실재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116

도 시 미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시민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중요하다. 보이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손가락질과 펜과 자로 인해서 삶 자체가 망가지는 사례들이 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엘리자베스 파렐리 Elizabeth Farrelly

엘리자베스 파렐리 교수는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칼럼니스트이며, 오클랜드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런던과 브리스톨에서 건축 실무를 보다가 시드니 대학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시드니 대학에서 겸임 부교수직을 맡고 있다. 파렐리는 건축 잡지 「건축 평론(The Architectural Review)」 런던지점에서 편집 조수 업무를 했고, 시드니 시의 고문 위원직과 호주 도시설계 시상식에서 취임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파렐리의 저서는 매리언 마호니 그리핀 상(Marion Mahony Griffin Award, 2002년), 파스칼 비평가 상(Pascall Prize for Critical Writing, 2001년), 애드리언 애쉬턴 상(Adrian Ashton Award, 1994), CICA 파리 국제 비평 상(1992) 등을 수상했다. 1993년에는 《글렌 머컷: 세 개의 집(Glenn Murcutt: Three Houses)》을 출간했다. 《글렛 머컷》은 2003년 건축가 상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엘리자베스 파렐리는 배우자와 두 자녀와 함께 시드니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