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사람을 말하다

2014 독서목록 71/149 (2014.6.27)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 : 인생의 지혜를 담은 고전 강의] — 이중톈/중앙books

현대의 중국인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성장세가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미성숙한 문화가 안쓰럽기도 했다. 장홍제가 쓴 [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을 보면, 현대의 중국인들이 금金,원元,청淸등의 외부 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변모해간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동양문명의 발상지이고, 우수한 정신문화의 본류이다. 현대의 서양철학서를 읽어보면 그들이 철학의 중심이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많이 이동하면서 동양철학의 상당부분을 수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국은 역사속 진시황 시절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현대사의 문화대혁명등을 통해서 그들의 고귀한 정신문화를 스스로 파괴해 온 단절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아마 아직까지도 자유로운 정신문화에 대한 연구가 다방면으로 깊이있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 마이클 센델이나 셸리 케이건 등의 책을 읽으면서, 많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정신문화의 깊이에 감탄을 했었다. 그래서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는 내심 그들과 어깨를 견줄만한 깊이를 기대하며 설레임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동양고전을 풀이하는 방식으로 서술된책이다. 이중톈은 삼국지 강의를 통해서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이 책에서는 주역, 중용, 병가, 노자, 위진, 선종에 대해서 독작들에게 풀이를 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 수준이 깊지 않다. 처음 주역부분은 그나마 조금 줄기를 보여주는 것 같은데, 뒤로 갈수록 줄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가지만 건드리는 느낌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신용복 교수의 <강의>가 훨씬 더 시원하게 풀이해주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냥 동양고전을 이중톈이라는 학자의 시각에서 풀이해 준 정도의 책이다. 그 정도를 기대하고 보면 많을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제목처럼 사람에 대해서 뭔가를 기대하고 보면 나처럼 원하는 것을 전혀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냥 동양 고전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꼭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석학의 책을 읽어볼 날을 기대해 본다.

한줄요약 : “이중톈의 동양고전풀이”

★★★★☆


문제는 점복에 나오는 시와 비, 가와 부, 흉과 길이 <역경>에서 어떻게 음과 양으로 변하게 됐는가라는 점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이러한 세 가지 선택이 모두 판단이기 때문이다. 시와 비는 사실 판단이고, 가와 부는 결정 판단이며, 흉과 길은 결과 판단이다. 만약 판단만 있고 이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없다면 그저 점복으로 끝날 뿐 철학이 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주역>은 단지 무술의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점복을 통해 전체 세계를 인식하는 것에 도달 하고자 했다.
어떻게 세계를 인식했는가? 더욱 추상화시켰다. 그렇다면 시와 비, 가와 부, 흉과 길을 더욱 추상화한 결과는 무엇인가? ‘일정일부一正一負’이다. 일정일부는 음양 이외에도 남과 북, 상과 하, 좌와 우, 백과 흑, 명과 암, 남과 여 등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너무 구체적이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음양이다. p.33

사실판단과 결정판단, 그리고 결과판단의 근거가 되는 가치의 기준에 대해서도 조금 짚어주었으면 좋으련련만…


<역경>의 이러한 괘 순서는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일이 성사됐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닌가. 아니다. 절정에 이르면 이제 다시 비탈길을 내려가야 한다. 이제 미제가 주어진다. 의미는 분명하다. 성공했거나 승리했다고 향후 순풍에 돛단듯 만사여의萬事如意 하고 만사대길萬事大吉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히려 천하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앞으로 힘들고 성가신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니 항시 “두려워 조심하기를 마치 깊은 연못 앞에 서 있는 듯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하라戰戰競競, 如臨深淵, 如履薄氷. (<시경, 소아, 소민小旻)는 말이다. p.47,48

주역에서 시사하는 바는 세월이 지나도 항상 깨달음을 준다. 세상의 지혜를 고대에 담아놓은 책이다. 물론 현대의 지혜서보다 훌륭하다.


주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우환의식, 또는 <역경>의 사상은 <역전>의 작가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역전, 개사 하>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위기를 의식하는 자는 자신의 자리를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멸망을 대비하는 자는 자신의 생존을 보존할 수 있다. 혼란을 걱정하는 저는 제대로 다스릴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편한할 때도 위기의 순간을 잊지 않고, 편안히 생활할 때도 멸망의 화를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도 혼란을 있지 않으니, 이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하고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危者, 安其位者也. 亡者, 保其存者也. 亂者, 有其治者也. 是故君子安而不忘危,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 p.48

리더가 성공의 순간에 위기론을 들고나온 경우를 종종 보았었다. 그들은 매우 지혜로운 리더였다. 알고보니 주역에서 이미 제시했던 문장이다.

“모순이 있어야 충돌이 있고, 충돌이 있어야 변화가 있으며, 변화가 있어야 발전이 있고, 발전이 있어야 전망이 있다.”
그러니 모순과 충돌, 변화가 있는 것이야말로 하늘만큼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하! 이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음不怕變”이 아니라 “변하지 않음을 두려워함怕不變”이다. 주지하다시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더욱 대단한 일이다. 왜 그런가?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으면 피동적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변하는데 자신만 홀로 변하지 않고 견딜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변해야 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능동적이다. 변하지 않으면 조급해한다. 물론 <주역>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변화속에 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 그 자체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않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러나 변하지 않음을 두려워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충분한 사상적 준비와 응변應變의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이것이 곧 능동성이니 어찌 대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p.60

주역이 시사하는 바는 현대생활에도 매우 유용한다. 특히 지금처럼 시시가가의 변화가 매우 빠른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현대인을 위한 주역 해설서가 괜찮은 것을 출판된 것이 있나 알아봐야겠다.

사실 지극한 영예나 찬사는 아예 영예나 찬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한 훼손 역시 훼손이 없는 것과 같다. 루쉰 선생은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모욕을 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군중 속으로 몰아놓고 손가락질하면서 뭔가 말하려다 멈추고 그저 머리를 잡고 흔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군중들은 그 사람이 도대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같이 욕설을 퍼붓고 돌팔매질을 한다. 사실 그 사람은 전혀 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아무런 지적도 없이 행해지는 ‘무훼無毁’는 오히려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다. 반대로 그 사람의 죄상을 일일이 나열할 경우 누군가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게 뭐 대수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내가 보기에 좋은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저 그의 머리통을 흔들면서 “이 자가! 이 자가!”라고 말하기만 해도 누군가는 의심이 들 것이고,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는 말처럼 너 나 할 것 없이 진짜로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無’의 힘이다. p.249,250

이런 상황이 잘 머리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과연 군중이 따라줄까?

실제로 강이나 바다가 대단한 것은 그것이 텅 비고 낮은 곳에 처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온갖 더럽고 하찮은 것도 모두 받아들여 그야말로 물고기와 용이 함께 어울리고 물과 진흙이 함께 흘러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사람은 모든 것을 포용할뿐더러 특히 천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까지 받아들인다. 세상은 크기 때문에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 있다. 만약 점잖은 군자만 받아들이고 비루하고 천한 소인은 내친다면 이는 ‘포용’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군자가 굳이 포용이 필요하겠는가? p.252

泰山不辭土讓, 河海不擇細流 이 문구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