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야독 - 예술경영

J. Hwan Jeon
그림노트 —  season 2
5 min readNov 9, 2014

매주 월, 금 저녁이면 나는 회사일을 서둘러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로 향한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7시반 수업에 지각 도착한다. 다른 수강생들도 마찬가지로 전업으로 학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나처럼 회사를 다니면서 무언가에 이끌리듯 무리를 해가면서 다니는 사람들이다. 공연이나 미술 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IT기업을 다니거나, 광고대행사와 같이 무관한 업종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한예종 수업 '공연장 경영' 수업, 이승엽 교수님 2014.10.31. 桓 - "항상 '모자'를 쓰고 '실눈'을 뜨고 '미소'를 머금고 '스타카토 저음'에 '단화'를 신고 수업을 하신다. 저녁8시 정각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는 자동소등이 된다. 교수님은 다시 불을 켜지 않고 '암전되어 잘됐다!'라고 하며 그대로 수업을 진행하신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 수업이다. 그 다양성이 수업의 매력이며, 많은 수업이 토론식으로 진행되는데 나는 그런 수업이 좋다. 좋은 수업에서 논의되는 담론은 진지한 이론과 다양한 현장을 쉼없이 오가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달(10월17일 금) <공연장 경영> 수업에서는 바로 몇시간 전에 있었던 판교 야외 공연 사고를 통해 공연장 안전 관련 법규와 현장을 주제로 토론이 있었다. 실제 공연업계에 몸담고 있는 학생과 판교 테크노밸리를 오가며 그 공간과 사람, 시간의 특성을 알고 있는 나 사이에 이야기가 오갔다.

올해 1학기 수업이었던 서지혜 교수님의 <문화산업>은 더욱 다채로왔다. 문화산업의 배경과 이론에 대한 이해도 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현장 사람들을 초대해서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학기중에 네다섯명 정도 현장에 있는 분들을 초대해 특강을 듣는데, 영화산업의 모태펀드 책임심사역, 올레TV의 사업총괄팀장 같은 분들을 초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의 '다양성' 덕분에 활발한 토론이 일어났고 교수나 강사, 학생이 모두 함께 탐구하고, 배우는 수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작년 2학기 수업이었던 전수환 교수님의 <기업과 문화예술>은 철저히 실천과 토론 중심의 수업이었다. 기업에서 문화 영역을 담당하고 있던 나로서는 내가 실천했던 사례를 공유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리더십 프로그램으로서 '연극토론' 방식을 만들어 실험한 사례를 공유하고 토론한 것은 내가 하고 있었던 일들의 의미를 확인하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동연 교수님의 <문화이론>을 통해 나는 미셸 드 세르토를 알게 되었으며, 20대 초반 세상을 알지 못했을 때 읽었던 텍스트들(프로이트, 들뢰즈, 라깡 등)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오상은 교수님의 <예술교육> 수업은 나의 대학시절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화 연극소모임>이 내 삶을 변화시킨 가장 훌륭한 예술교육이었다는 것에 고마움을 되새기게 한 의미있는 수업이었다.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예술 시장의 이해> 수업은 공연, 미술, 컨텐츠 세가지 주제로 세 분의 교수님이 순차로 강의를 하는데, 그 중에 김윤섭 교수님(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의 미술 시장의 이해 5회 강연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술이 철학, 역사,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삶을 표현하고 읽을 수 있는 굉장히 매력적인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야가 확장되게 되었다. 앞으로 그림노트를 쓰는데 있어서 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을 종종 다루려고 한다.

동기들 - 2013.3.1 桓 - "첫 학기 시작 이주 전, CNN the biz에서 한예종 예술경영 동기들과의 모임. 우리가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biz 파트너였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연극, 공연기획, 오케스트라 경영, 기업문화 등. 연령대도 최대 30세까지 차이나는 우리는,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2013년에 함께 입학한 동기들 중 반 이상은 지금 졸업을 준비하고 있고, 나처럼 기업을 다니면서 병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학점을 다 마치지 못했다. 나는 내년 상반기에 남은 3학점을 끝내고 졸업논문을 준비할 것이다.

우리 기수(예술경영 14기)는 그 어느 기수보다 더 서로를 아끼고 열심히 공부했다. 약국을 경영하며 동시에 대학로에서 소극장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50대의 최연장자 누님은 한예종을 연극과로 시작해 예술경영까지 세번째 다니고 있다. 홍대 인근에서 라이브극장을 경영하고 있는 사운드엔지니어링 전공자도 있고, 문화예술 사회공헌에 몸담고 있는 분도 있고, 공연과 연극 현장에서 기획에 몸담고 있는 분들도 있고, 나처럼 기업에 다니고 있는 분들도 있고,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찾아가기 위해 예술경영을 선택한 20대 중반의 분들도 있다. 우리 기수의 최연장자의 딸이 최연소자와 나이가 같다. 이러한 '다양성'이 힘이다. 실제로 한예종 예술경영 교수님들은 학생들을 뽑을 때 이러한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뽑는다고 한다. 일상이나 업무를 하면서 이런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고, 만난다 하더라도 어떤 의도를 갖게 되어 친구가 되기 쉽지 않다. 학교 '동기'라는 프레임은 마법처럼 서로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어떤 면에서는 회사에서 유사한 일을 하는 동료들보다 나와 다른 일을 하지만 예술경영 동기들이 더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나이와 영역을 떠나서 어떤 열망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의 학교는 산업사회의 일꾼을 만들어내기 위한 형식이었다. 따라서, 21세기에 학교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들 한다. 미래의 학교는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동기'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서로 배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산업화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 그리스시대 철학자들이나 우리 선조들의 삶을 르네상스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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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Hwan Jeon
그림노트 —  season 2

An intermediary between IT and Culture. Majored in Computer Science and Arts Management. Currently Accelerating Startups in Jeju Island of 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