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보 맵핑과 비디오: 작가 노트

배민기

1) 목적을 위해 2) 효율적으로 3) 왜곡된 수많은 지도 이미지들을, 1) 목적 없이 2) 비효율적으로 3) ‘교정’하는 것입니다.

워크숍 <비정보 맵핑과 비디오> 기획 회의에는 <서울자유지도>를 담당하는 큐레이터 강이룬, 소원영과 퍼실리테이터로 위촉된 배민기를 포함, 3인이 참여했습니다. 큐레이터들이 각각 뉴욕과 싱가포르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의는 행아웃 화상 미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3인은 오픈 데이터 기반 지도 서비스인 오픈스트리트맵을 활용하고, 해당 서비스 내 데이터 구축에 기여하는 방안을 포함시키자는 것으로 워크숍의 느슨한 지향점을 설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워크숍 참여자들이 지도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경유하는 프로세스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배민기는 오세훈 시장 시절 생산된 조감도 등으로 서울 지도를 재구성한 이도진의 <서울 판타지아> (2012), 한강 다리를 가나다/알파벳/너비 순으로 재배열하여 가상의 서울 지도를 만든 우태희/신덕호의 <인덱싱> (2010), 구글 3D 지도의 맵핑 글리치를 수집한 클레먼트 벨러의 <구글어스에서 보내는 엽서> (2011) 등을 참조/변형/연상 작용의 주재료로 삼았습니다.

이에 더해 기획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업은 박잠실의 <서울맵핑>(2016)으로, 이는 2016년 2학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진행된 수업 <디자인 아트 2>를 수강한 박잠실이 강사인 배민기와 크리틱을 통해 생산 및 제출한 수업 최종 결과물이었습니다. 박잠실은 ‘조악한 지도(poor map)’라 칭할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웹 지도들을 실제 서울의 지리정보에 맞춰 조합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수업 내에서 아이디어가 처음 제시된 순간부터, 배민기는 박잠실에게 이미지를 조합하는 과정 혹은 결과물 생산 과정 전반에 좀 더 기술 지향적인 방식이 추가되거나, 또는 최종 결과물을 (2D 지도로 제약할 것이 아니라) 3D 지도로 확장하는 것이 좋겠다는 피드백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기술 기반을 한 학기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고, 당시의 결과물은 지도 자체와 그것을 통해 파생된 패브릭 어깨가방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디어가 스크린 기반 기술 지원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큐레이터 2인을 만나 현실화된 것이 본 워크숍과 최종 영상물입니다.

Seoul Mapping (2016) by Zamsil Park.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비스듬한 정보 디자인

이에 더해 디자이너 배민기가 짧지 않은 기간 품고 있던 의문이 <비정보 맵핑과 비디오>의 전체 과정(과 제목 자체)의 개념적 히든 레이어로 장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의문은, 이른바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인 안에 존재하는 담론적 차원의 ‘정보디자인’을 어떻게 갱신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정보디자인에 관한 통사적 서술―심지어 북태평양 마셜 제도의 미크로네시아인들이 야자나무 잎줄기로 만든 해상 지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은 마치 좁은 의미에서의 시각적 정보전달 기술이 문명사 속에서 늘 균질한 밀도로 논의되어 온 것만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시각문화 트렌드로서의 정보디자인은, 리처드 솔 워먼 외 몇몇 인물이 ‘띄워’ 90년대 중반 즈음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유행은 몇 가지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는 영미권 매체에서 공해를 이루고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에 숫자를 쓰고 정보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되거나, 또는 ‘판독 불가능할 만큼 복잡하게 줄을 그어놓은 디자이너 포트폴리오’가 되었습니다. 2013년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기사에 등장한 “인포그래픽스는 최악의 파워포인트 결과물과 최악의 엑셀 결과물을 포토샵으로 던져넣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정보디자인 작업물이 오늘날 맞닥뜨리는 이 기묘한 절벽을 우회적으로 지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단편적인 자료의 나열인 데이터를 특정한 관점과 시각을 통해 조직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시각적 정보로 변환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을 특정한 단어로 고정하여 담론적 힘을 발휘하는 행위는 이미 시효가 다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이러한 갱신을 위한 괴상한 돌파구로 기능할 수 있는, 반쯤은 농담이지만 반쯤은 진담인 발견은 계간 <그래픽>이 주관하여 2016년 11월에 개최된 ‘포스터 이슈 2016’의 주제전 <온 포스터>에 참여한 이재원 디자이너의 작업물 <비정보디자인>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작업에는 특정 장소에서 수집한 25장의 포스터에 존재하는 데이터들이 시각 정보 전달을 위한 그래프의 형식으로 가시화 및 배치되어 있지만, 그 결과물이 특정한 정보를 전달하지는 않습니다. 정보디자인의 형식을 취하지만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는 이 방법이 기존의 정보디자인 교육을 비스듬하게 일신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배민기가 맡았던 서울여자대학교 2016년 2학기의 <인포메이션 디자인 2> 수업 프로젝트 일부에서는 ‘온전하게 정보 디자인의 형식을 취하고 그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규약들을 철저히 지키지만, 결과물은 정보를 불완전하게 전달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데이터의 속성과 그래프의 가시화 논리가 불일치하는 방식을 취하는 ‘표상하는 바가 없는 것을 표상하는 작업’이나, 특정한 그래프를 수집한 후 그 그래프의 형태를 닮은 지형지물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그래프를 모사하는 사진을 찍는 작업’ 등이 생산되었습니다. 제가 워크숍을 소개하며 사용한 문구인 “불명료한 정보전달과 그 결과물의 느긋한 감상을 목적으로 삼는 비정보디자인 활동의 예시”는 이러한 뒤틀린 접근방식의 연장 선상에 존재합니다.

조악한 지도와 비정보적 심술

이러한 배경 위에서, 이 워크숍에서는 서울의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지리적 정보를 표시하기 위해 불균질하게 생산한 다양한 시각물, 즉 지도 이미지를 수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지도라기보다는, ‘조악한 지도’인 동시에 ‘급진적으로 주관적인 지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지도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다양하게 떠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도심의 오래된 식당의 명함 뒷면에 그려진, 길의 끝부분이 동글동글하게 표현된 흑백 약도가 있습니다. 또는 구청이 주관하여 홍보 목적으로 만들어진, 위치 정보만이 가까스로 유지된 수채화에 가까운 관광지도도 있겠죠. 지나치게 이상적인 풍경을 묘사하다 보니 신흥 종교의 낙원과 유사해진 아파트 조감도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건물에 적용된 투시도와 길의 구조에 적용된 투시도가 전혀 다른, 놀랍게도 일종의 엉터리-차원이 생성된 회사 명함의 지도도 흥미롭습니다. 한편 유독 칙칙한 색감을 드러내는 등산안내도도 있습니다.

이 조악한 이미지들은 그 조악함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목표에 따라, 각자가 정의한 유용성에 따라 실제 지리정보를 효과적이고 실용적으로 왜곡하고 있고, 많은 경우 그 목표를 성취합니다. 지도를 보면 중요하지 않은 길을 통째로 생략해버리거나, 미묘하게 다른 각도를 나타내는 오거리를 정오각형처럼 표현하기도 하지요. 이 지도를 그린 이들은 정보전달을 위한 시각디자인 관련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해리 벡이 런던 지하철 노선도를 새롭게 디자인하며 제시한 효율적 왜곡, 즉 지하철 노선도라는 특수한 매체는 실제 지리정보를 시각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역이 형성하는 관계를 시각화해야 한다는 판단을 나름의 방식으로 체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비정보적 심술을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1) 목적을 위해 2) 효율적으로 3) 왜곡된 수많은 지도 이미지들을, 1) 목적 없이 2) 비효율적으로 3) ‘교정’하는 것입니다. 미리 준비된 이미지 DB와 참여자 자신이 모아온 각종 지도 이미지를 재료로 사용하여, 참여자들은 하나의 스크린 지도 (오픈스트리트맵) 위로 다채로운 이미지 모음을 맵핑합니다. 맵핑은 이미지상의 주요 지점과 스크린 지도상의 지점을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즉, 왜곡된 이미지를 다시 왜곡하여 교정하는 것입니다.

비정보 맵핑과 비디오

워크숍은 2017년 6월 24, 25일 양일간 진행되었습니다. 24일에는 워크숍의 기획 의도와 워크숍 진행을 위한 기술기반을 공유하는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고, 25일에는 참여자의 기여를 통한 맵핑이 진행되었습니다. 맵핑 작업에는 (지오레퍼런서와 오픈레이어스 플러그인을 포함한) QGIS 프로그램이 활용되었으며, 박수연, 이종배, 장윤정, 신화정, 송예환, 강지우, 배상현, 박연진, 이지혜, 박잠실, 김나해, 박재희, 김수현, 민진아, 김선재, 표하연 총 16명의 성실한 기여로 200여 장의 이미지가 서울 지도상에 생성 및 배치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자유롭게 이미지를 생성하고, 그 이미지를 별도의 웹사이트에 업로드했습니다. 워크숍 공간 앞쪽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많은 이미지들이 한눈에 드러나도록 업로드된 이미지 목록이 실시간으로 재편집되었으며, 재편집된 이미지는 한 장의 거대한 이미지로 합쳐진 후, 타일 방식으로 나뉘고 서버에 저장되어 스크린 지도 위로 뿌려졌습니다. 이미지 목록의 편집을 제외한 모든 기술 기반의 구축과 유지보수는 큐레이터 소원영이 담당했습니다.

워크숍이 완료된 후 70여 장의 이미지를 보강하였으며, 이 이미지를 지형과 건물 데이터가 반영된 서울 지도에 투사한 후, 그 지도 위를 입체적으로 유영하는 결과물을 유니티를 활용하여 제작했습니다. 유니티에 관련한 기술지원은 뉴미디어 스타트업 비트겐(Vittgen)의 (워크숍 참여자이기도 한) 배상현, 황준오, 박나현이 맡았습니다.

최종 결과물의 매체는, 워크숍 제목에 드러난 것처럼 ‘비디오’입니다. 맵핑을 위한 특정 소프트웨어 사용법의 습득, 참여자들의 다중 업로드를 위한 사이트 구축, 타일링 알고리즘의 마련, 타일링 서버의 구축, 타일링된 이미지조각의 실시간 맵핑 등 스크린 기반 기술이 다양하게 적용된 이 워크숍의 결과물은 어떤 면에서 뉴미디어식 상호작용이 전제된 무엇이 되는 편이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에 대해 성실한 심술을 적용하고, ‘만지고 반응하고 기뻐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어떤 지긋지긋한 참신함을 떨쳐버리려 고민을 지속한 끝에, 최종 결과물의 매체는 비디오, 즉 영상물이 되었습니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영상은 낯간지러운 ‘인터랙션’ 없이 그냥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DDP의 특정한 벽에 투사될 이 비디오를 그 어떤 능동성 없이 비정보적 표정을 짓고 멍하니 쳐다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배민기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를 2008년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2011년 석사학위를, 2015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잡지 <DOMINO>의 편집 동인으로 제작에 참여했으며, 시각창작집단 ‘Optical Race’의 초기 구성원으로 참여했었다. 서울시립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 등의 대학 강의 업무와 출판, 건축, 패션 영역 회사들과의 협업 업무를 비교적 균등하게 배분하며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개인전 <Put Up & Remove>(2016, 플랫폼플레이스 홍대), 단체전 <XS: 영스튜디오 컬렉션>(2015, 탈영역우정국)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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