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서울자유지도

Wonyoung So
Seoul Libre M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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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min readOct 3, 2017

나는 자전거를 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초등학교 3학년에 처음 시작한 자전거는 고등학교 때 통학 수단이 되었고, 또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을 무렵 3년간 든든한 통근수단이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레이싱 로드 바이크를 타게 된 것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다 크고 나서 새롭게 접한 로드바이크의 세계는 운동을 통한 힘든 감정이 사람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한국에서 안 가본데가 없을 정도로 온 국토를 돌아다녔고, 낙차하여 죽을뻔한 고비를 넘겼고, 미국에 건너가서도 메사추세츠주의 작은 마을들을 매주 돌아다니며 같이 자전거 타는 친구에게 에너지바로서의 한국 양갱의 우수성을 전파했다.

양갱 최고

자전거로 했던 활동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서울의 가장 유명한 로드자전거 힐 클라임 장소인 북악 팔각정까지의 기록을 10분 안쪽으로 줄였을 때이다. 처음에 북악산을 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한데, 심장이 바깥으로 나올 것 같았고 숨을 너무 거칠게 쉬어 왼쪽 심장 근처 근육이 땡기기까지 했다. 한국의 자전거 무크지 <바이시클 프린트 #03: 커스텀 컬처> 에서 인터뷰했던 것처럼, 이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피트니스로 자전거를 접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4년 당시 큰 낙차사고 직후라 웃는 얼굴에 이빨이 없다..
자전거의 모든 것을 센싱하는 사이클링 컴퓨터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개선” 이라는 두루뭉술한 가치는 심박센서/스트라바 구간 기록의 측정/GPS/케이던스 센서/(가지고 싶었던)파워미터와 같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기록가능해지게 되면서, 나의 몸은 정말로 개선 가능한 것이 되었다. 자전거 데이터 서비스 스트라바의 Segment 기능이 없었다면 북악 팔각정에 “기록” 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북악산은 나에게 그냥 더럽게 힘든 산 정도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또 시시각각 변하는 심장 박동수와 페달링의 속도를 체크하면서 달리지 않았다면 북악의 구간 별 스프린트 전략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이 데이터를 통해 더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북악산을 타며 스스로 반복적 개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최종 목표는 단지 “북악산을 10분 안에 올라가 보겠다” 는 좀 쓸데없어 보이는 목표였지만, 나에게는 “데이터를 통한 자기결정적 목표 설정과 실현” 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도전이었다.

자전거를 통한 다른 특별한 기억은 “조물주 위의 건물주”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자전거를 타며 필드 드로잉을 했던 일이다.

사이클링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GPS 디바이스는 지도라는 캔버스를 가지고 드로잉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로 스트라바에서 자기 동네 지도에서 닭을 그리거나 고양이를 그리는 등의 별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도시스케일의 드로잉 작업은 #StravaArt 라는 해시태그로 트위터에 공유되기도 한다.

Stephen Lund’s Strava Doodles

사이클링 컴퓨터를 통한 드로잉 경험은 GPS라는 보이지 않는 데이터가 실제 도시공간과 만나게 되는 경험을 했다는 지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 드로잉을 통해 서울의 홍대/삼청동/서촌 지역의 건물데이터 밑작업을 할 수 있었고, 프로젝트를 위해 코드나무의 장승훈 님이 홍대의 주소를 전부 입력하는 하는 수고를 추가로 하여 다음과 같은 홍대/삼청동 지역의 상점 변화 속도에 대한 시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수고를 굳이 했던 이유는, 당시에는 건물 외곽선의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는 서울 유명한 거리의 상점의 개/폐업 속도를 보여주는 시각화 작업인데, 이를 위해 건물의 외곽선을 시각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데이터를 그릴 당시에는 정부에서 건물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었고, 구글이나 네이버, 다음 지도에서 건물 데이터를 따로 스타일링할 방법도 없었다. 남은 유일한 방법이 오픈스트리트맵의 데이터를 다운받아서 가공하는 것인데, 2012년 당시 서울에는 오픈스트리트맵의 건물 데이터가 전무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생각을 덜 하고, 그냥 그리는 것이었다.

홍대 지역의 OSM 데이터

그렇게 해서 다음과 같은 지도 작업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홍대와 삼청동, 서촌 지역의 건물 데이터 기여 후에 서울 지역의 오픈스트리트맵에서 일어난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홍대 지역을 보면, 기여작업 이후에 미처 커버하지 못했던 합정역 이남의 지역들과 망원동 지역까지 건물 데이터가 들어차서, “홍대 로컬 지도” 같은 것을 만드는 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모양새가 되었다. 서촌과 삼청동도 처음에 건물 데이터를 기여했을 때를 기점으로 해서 많은 데이터가 추가되고 덧붙여졌다.

오픈 데이터에 기여한 나의 데이터가 공공의 것이 되어 추가되고 진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그리고 데이터가 서울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실제로 상호작용하는 광경을 지켜보게 된 것은, 시민이 데이터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를 통해 물리적 공간에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오픈 데이터는 시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고 자기가 스스로 행하고 결정하는 자기결정 제작 문화를 확산시키면서, 동시에 그 결과물의 수혜를 모두가 직접(지도 제작물을 누리는 것), 혹은 간접적(데이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재사용하는 것)으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서울자유지도를 시작하게 된 강력한 계기 중 하나가 된다.

시장이 스마트한 도시?

자전거에 각종 센서를 달아 페달링 속도를 확인하고 내 몸에도 심박 센서를 달아 북악산 완주 10분대 돌파라는 목표를 이루는 것처럼, 스마트 시티는 도시에 사이클링 컴퓨터를 달아버린다는 것이 기본 컨셉이다. IBM이 2008년에 스마트 시티를 위한 솔루션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한 이래로, 새롭게 생기게 된(혹은 재개발되는) 많은 도시들이 이 행렬에 동참했다. 리우에서는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유치했고, 한국에서는 송도국제신도시가 신도시 건설 단계에서부터 스마트 시티를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하지만 언론에 공개된 리우의 스마트 시티는, 시의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 관리체계를 갖추었지만 시민들에게는 철저히 닫혀 있는 세계로 보인다. “나사 본부의 종합상황실 처럼 생긴” 리우 시의 종합상황실은 스마트 시티의 센서들이 뿌려주는 정보를 독점할 때에 생겨날 수 있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당시 리우 시장인 Edurado Paes는 인터뷰에서 개별 범죄에 대해서 매우 빠르게 반응하는 것, 홍수 등의 자연재해에서 주민들을 정확한 시간에 대피시키는 등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물론, 이러한 기능이 시민들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모여진 데이터가 분석되고 그 결과를 통한 결정사항이 시민들에게 한 방향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매우 하향식이다.

나사의 종합 상황실처럼 생긴 리우의 스마트 시티 상황실. Andre Vieira for The New York Times

모든 것이 통합된 스마트 시티의 종합상황실은 그 목적을 충분히 충족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가지의 목적과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흡사 이것은 온 자전거에 센서를 부착한 프로 사이클리스트가 감독의 지시를 받아 팀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모양새와 같다. 팀의 지시를 받는 사이클리스트들은 자신의 심박을 160 이상 넘기지 못하도록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고, 리더를 위해 죽어라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페달링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닌 것임에 틀림이 없다. 팀의 리더로 지정된 사람을 놔두고 산을 정복하러 혼자 나갈 수도, — 프로페셔널 사이클리스트로서 별로 하고 싶진 않겠지만 — 다른 길로 새어나가 풍경을 즐길 수도 없다.

가끔 리더로 지정된 사람을 두고 산을 정복하러 나가긴 한다..

도시의 모든 환경과 생활에 관한 데이터가 몇 명의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참고될 사항으로서만 이용되는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서 추구해야 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스마트 시티에서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분석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는, 데이비드 와인버거가 디지털 DIY 다큐멘터리인 <Press, Pause, Play>에서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대량생산을 누가 결정하는지에 대한 언급과 묘하게 닮아 참고할 구석이 있다.

“크리에이티브 산업에서는 우리가 어디서 예술품들을 구입하고, 어디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지 보통 알아요. (…) 그렇지만 여기에는 가격이 정해져 있죠. (…) 여기에서 누군가는 결정을 해야하는데, 그 누군가들 역시 인간이므로 매우 제한된 범위의 취향이나 의견,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전통적으로, 그리고 불행하게도 일반적으로, 이 사람들은 매우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집단인데, (…) 제가 말한대로, 보통은 백인 남성들이죠. 이들은 미술관에 어떤 것이 들어가야 하는지, 그리고 신문의 첫 페이지에 무엇이 들어갈지를 정해왔어요.”

마찬가지로 정부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아무리 공공을 위한 일들을 진행한다고 해도, 그들은 시민 전체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므로, 매우 제한된 범위의 취향과 의견을 가지게 되어 시민들의 이야기를 전부 수용할 수 없다. 게다가 시민들은 이제 오픈소스 기술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비용으로 그들 나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스마트 시티의 데이터를 직접 손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민 데이터 운동,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스마트시티 담론이 가지고 있는 하향식 방식과 대조하여, 시민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구와 목적을 그들의 방식으로 충족하기 위해 데이터를 그들 나름의 목적으로 — 자기결정적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 활용하는 시민 데이터 운동 (Civic Data Movement), 혹은 시민 기술 운동(Civic Tech Movement)는 비슷한 시기에 대안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는 시민이 데이터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혹은 국가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공개된 데이터를 이용해 우리 이웃과 도시, 그리고 국가를 바꾸는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2013년 내셔널 시빅해킹 데이의 소개문) 는 시민 데이터 운동은 정부 자체의 리소스로는 할 수 없는 문제를 시민이 직접 오픈소스 기술을 이용해 스스로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FixMyStreet(2007), SeeClickFix(2009)와 같은 대정부 제보형 서비스들이 성공 사례로 소개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 2009년에 정부와 개발자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코드 포 아메리카가 설립되었다. 한국에서도 코드 포 아메리카의 로컬 브랜드인 Bridage를 통해 코드나무, 코드 포 서울코드 포 인천이 만들어져 많은 발룬티어들이 다양한 형태의 시민참여형 시빅 데이터 프로젝트를 내놓기도 했다.

이후 시빅 테크라는 것은 이후 다양한 클러스터를 이루어 발전했고, 그에 걸맞게 펀딩이나 사업의 규모도 성장하였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성공적으로 펀드레이징을 마친 시빅테크 기관에 대한 조사인 Knight Foundation의 The Emergence of Civic Tech: Investments in a Growing Field 보고서에 따르면 시빅 테크는 열린 정부와 커뮤니티 행동이라는 두 가지의 큰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투명하고 접근가능한 데이터, 시각화와 맵핑, 의사결정 시스템, 크라우드펀딩, P2P 공유 시스템 등 다양한 가지로 확장했으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23% 이상 성장했다.

이러한 결과물들이 세상에 처음 나오게 되었을 때 가지는 에너지 덕분에, 나는 이러한 운동을 21세기형 시민운동의 표본과도 같이 생각했다. 특히 FixMyStreet과 같은 형태의 “내가 사는 도시의 문제를 내가 직접 리포트한다” 라는 컨셉은 기술을 잘 활용하는 적극적 시민상과 아주 잘 어울렸고, 또한 사라 윌리엄스가 언급한 것처럼 이는 DIY 정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오픈소스 기술과 오픈 데이터는 그러한 생산활동을 매우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게 하도록 만들어 주었고, 도시 디자인도 데이터를 통해 비슷하게 시민 주도로 진행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여러 해 지나고 이러한 프로젝트에 대해 조금 다양한 각도로 생각해 보게 되었고, 특히 사라 윌리엄스가 <The Responsive City>의 마지막 문단에 지적한 아래의 내용은 시민 데이터 운동에 대한 희망과 동시에 약간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향식 도시가 정부의 통제와 감시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고, 나아가 우리가 모으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분석하기 위한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향식 도시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에 있어 효과적이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것이 지속 가능한가?” 에 대한 질문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왜냐면 이러한 운동은 시민들의 호의에 매우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10년을 전후해 등장한 많은 웹 베이스 시빅 데이터 프로젝트들이 계속 지속하지 못한 채로 작동하고 있지 않거나, 오픈소스 프로젝트라고 깃허브에 소스를 올려 놓았으나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한 매뉴얼이 부재한 상태인 프로젝트들로 변해 있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 코드 포 아메리카 보스턴에서 진행되었던 2011년 프로젝트 8개 중 현재까지 작동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DiscoverBPS 단 하나이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깃허브에 소스가 등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오래된 프로젝트는 2010–11년 이후 업데이트가 전혀 안 되고 있다. 해카톤과 같은 이벤트를 통해 나오게 된 많은 미니 프로젝트들이 한 번의 좋은 경험 이상이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호의를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지, 또 좋은 의지를 통한 진정한 변화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시민 주도의 변화

A Pathetic Dot: from Code V2

이러한 움직임은 도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시민 주도의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게 될까?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우리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러한 운동을 지속해야 할까? 로렌스 레식은 개인의 행동에 규제를 행하는 네 가지 힘을 법, 규범, 시장, 그리고 기술적 인프라스트럭처 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 규제 이론은 특히 사이버스페이스의 규제 작동 방식을 설명할 때 쓰이면서 유명해졌는데, 이는 인터넷의 아키텍처인 “코드” 가 인터넷 안에서는 실제 세계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 제약인 물리나 생물, 혹은 사회문화의 법칙을 넘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식이 이 이론을 정립할 당시의 상황과 달라진 점은, 코드가 사이버스페이스를 넘어 스마트 시티와 같은 데이터가 매개된 물리적 공간에서도 법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시민의 주도하는 변화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MIT Center for Civic Media의 디렉터인 Ethan Zuckerman은 자신이 이끄는 그룹의 “Civic Media”가 함의하는 바에 대해서 레식의 규제 이론을 통해 언급한 적이 있다.

“[…]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 중 하나는 “시민의-“ (Civic) 라는 단어를 입법이라는 것만 연결시키는 것과 떼어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간 우리가 생각해온 “시민의” 역할은, 우리가 우리를 대리할 국회의원을 뽑고, 그 국회의원들이 법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것이죠.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그 역할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제 생각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개개인들이 요즘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았을 때 이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민의-” 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리는 것에 있어서 법에 영향을 주는 것 뿐 아니라, 시장에 변화를 주거나 새로운 코드와 기술을 통해서, 또는 사회 규범의 변화를 통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국회의원을 뽑는 것과 같은 방식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그보다는 지붕에 설치하는 태양광 에너지판에 대해서 이해하고 왜 우리 집에 이것을 설치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더이상 화력발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내딛을 수 있는 엄청난 시민적 발전이 될 수 있습니다.”

주커만은 레식의 규제 이론을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보고, 각 규제 섹터에 시민들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유도하는 것을 핵심으로 보았다. 특히 규범(Norms)에 의한 변화를 중점에 두었는데, 이는 입법을 통한 법 개정에 의한 변화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종차별이나 이민자 혐오에 대한 문제는 법으로는 이미 해결되어 있는 문제이기에, 인종차별에 의한 경찰폭력은 규범의 변화만이 진정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혹은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코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감시망을 비껴나갈 수 있는 암호화된 메세징 체계를 만드는 것 등이 규제의 개별 섹터를 직접 시민들이 건드리고 흔들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레식이 규제이론에서 법을 통해 나머지 세 개의 규제인 규범과 시장, 그리고 아키텍처 모두를 조절하는 것과 다른데, 우리 모두가 국회의원이 아닌 이상에 법개정을 통한 변화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 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 같은 개인의 목표, 그리고 그를 위한 개별적 실천이 더 우리에게 직접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실제로 시빅 데이터나 시빅 테크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변화만을 좇지 말고 작은 데서 시작되는 변화도 가치있게 볼 수 있다는 데에서 의미있는 지적이 아닐까 한다.

자기결정 제작 문화와 자유지도 제작

서울자유지도는 서울이라는 도시공간 안에서 지도가 획득할 수 있는 공공성을 이야기한다. 지도는 공간을 매개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 자본, 국가, 시민사회의 통제와 견제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중요한 매체이다. 구글 맵 이후 우리가 인지하는 지도라는 것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상황에서, 시민들이 지도를 통해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 제작 과정의 부산물 — 생산된 데이터 및 제작 노하우 — 들이 적절히 공유된다면 지도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고민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더 의미를 가지는데, 서울은 세계적인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인터넷 환경과 지리정치학적 환경의 복합적 요인으로 오픈 맵핑 환경에서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오픈스트리트맵 서울의 데이터를 전부 시간순으로 줄세웠을 때 2013년 이전의 OSM 데이터는 거의 도로만 간신히 채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한별이 <디지털 지도와 오픈 데이터를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 에서 지적한 것처럼 포켓몬 고와 같은 변칙적 사례가 아니었다면, 이보다 훨씬 심했을 지도 모른다.

2012년까지의 서울 오픈스트리트맵
2017년 현재의 서울 오픈스트리트맵, 서울자유지도 전시장에서 직접 시각화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자유지도 워크샵에서 예시한 “자유지도 만들기” 라는 것을 통해 내가 자전거를 타면서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들 — 데이터를 통한 점진적 개선, 그리고 데이터를 통해 물리적 공간을 이해하기 — 이 서울이라는 공간과 시민 데이터 운동이라는 컨텍스트를 통해 전달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이런 활동을 통한 변화는 다양한 레벨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도 제작 중 생겨난 데이터를 공유해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생겨나 온라인 지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결과물로 만들어진 지도는 직접적으로 도시 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문제의식을 드러낼 것이다. 자유지도 제작을 통해 시민들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시작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아티스트 개별의 주제들이 각자의 개성있는 이야기를 하기를 원했고, 그를 통해 자유지도 제작의 핵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다양성이 드러나길 바랐다. 배민기 작가의 <비정보 맵핑과 비디오>에서는 “코딩 파크” 라던가, “돈을 깡패에게 빼앗긴 길” 과 같은 지도를 수집한 참가자들의 유일무이한 시선을 볼 수 있었고, 동시에 이 지도들은 서울의 지역성을 독특한 방식으로 드러냈다. <읽고 쓰는 오프라인 맵핑> 에서 워크샵 참가자 개개인의 욕구가 녹아있는, 개성있는 지도들이 그려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댄 파이퍼가 “도시 속에서 우리를 효율적으로 이동시키도록 실용적으로 설계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마트폰 지도에 반영되지 않는 도시생활의 면모에 대해서” 그려달라는 제안에 따라, “나의 채식주의 도전기” 라던가 “점 연결하기: 개개인의 삼각형” 같은, 개인적인 형태의 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청계천, 동대문 젠트리피케이션> 에서 리슨투더시티는 노점상 두 분과 빈민활동가의 기억지도를 통해 “역사 기록의 다양성” 에 대한 대안적 예시를 한다. 결과적으로 워크샵 하나하나가 고유의 개성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깔깔 웃으면서 주제를 잡았고, 한편으로는 심각하고 진지했다. 기술적으로는, 오픈소스 GIS툴을 가지고 이미지를 왜곡하고 커스텀 타일서버를 만들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펜과 종이를 들고 나가 지도를 그리기도 했다.

Better than Yesterday. from Dan Phiffer’s presentation

우리가 하고자 했던 말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댄 파이퍼가 발표 때 사용했던 다음 슬라이드가 아닐까 한다. 불완전함을 어쩌면 필수적으로 껴안아야 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한계를 인정하는 듯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은 시민이 참여해 오픈소스 기술을 이용하여 대안을 모색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세이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개선하다 보면, 마치 내가 자전거를 타고 심장이 터질것 같다가도 10분 벽을 돌파했던 것처럼 개인의 자기결정적 행동으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시도하다가 서버가 다운되고 참가자들이 올린 지도가 안 나온다거나 (비정보 맵핑과 비디오) 지도 프린트가 안 되고 데이터를 한번 완전히 날려먹거나 (읽고 쓰는 오프라인 맵핑) 지도 그리러 바깥에 나갔다가 더위를 먹을 수 있다. (청계천, 동대문 젠트리피케이션)

¯\_(ツ)_/¯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될 수 있다면, 조금 더 산을 타서 10분 기록을 깰 수 있다면, 페달을 굴려야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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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young So
Seoul Libre Maps

Data Visualization Designer / Passionate Road Cyc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