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bored
GRAYBORED W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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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in readMay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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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3일 on Medium. Written by @Bowheaded Cover by @Xernic

“감히 조선시대까지만 했어도 사농공상이라 하여 글쟁이를 우대했거늘 어디서 공돌이 주제에 개기느냐!”라고 해봤자 오히려 비웃음만 사는 시대다. 비웃음만 사면 다행이다. 해방 이전 일제강점기 시절에서부터 글쟁이란 무릇 지식인의 상징이기도 하거니와 무력한 자의 상징으로서 근대 작가들에게 허구한날 까이는 일종의 동네북같은 존재였으며, 동시에 지성인이지만 지성인 대우도 받지 못하는, 그저 널리고 널린 레디 메이드 인생과도 같은 존재였다. 최근엔 글쟁이들이 긴 글을 정성들여 알기 쉽게 써봤자 정작 독자들은 세줄요약을 요구하는데, 이는 활자가 사실상 유일한 매체였던 예전에 비하여 수많은 대체품-일례를 들어 영상과 음성-들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스마트폰과 월드 와이드 웹, 그리고 SNS의 등장으로 인해 그림과 같은 일회성 매체, 그리고 영상과 같은 매체들의 제작과 발행, 그리고 접근성이 양호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독자들과 새로운 매체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는건 글쟁이로서 몹쓸 짓이다. 어차피 일반인이 영상과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고 읽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쟁이들이 천대받고 사람들이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는 이유는 자칭 글쟁이들이 필자처럼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문체와 대가리 속에 든 지식들을 자랑한답시고 쓸데없이 길고 읽기 어렵게 쓰기 때문이리라. 이는 필자의 경험으로도 증명이 가능하거니와, 이에 따라 글쟁이들을 지구상에서 씨를 말리는 것이 우리 인류의 밝은 내일을 약속하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그러나 읽기를 귀찮아하던 독자들은 이런 주장에 동조하여 세줄요약만을 외쳐댔지!

사실 글쟁이라는 작자들은 대부분 대가리를 토마호크로 쪼개면 뇌수 대신 먹물이 줄줄 샐 작자들이요, 또한 고환을 반으로 쪼개 무엇이 나오는지 보아도 소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올챙이 월드 대신 문어대가리를 방불케 하는 먹물만 있는, 그러니까 글쓰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작자들이라 꼰대질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는 작자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쟁이가 수천년동안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적어도 그 더럽게 재미없는 꼰대들이 언어라는 가장 위대한 발명품을 이용해 자신 나름대로의 여과되지 않은 생각과 정제되지 않은 시각을 언어에 걸러내 이를 시와 소설등 글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쪼가리로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들어 대가리에 먹물만 들어찬 꼰대들을 무찌르고 자신들의 망상을 표현하겠다며 나오는 글쟁이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의 꼴을 보면 창피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물론 필자 입장에서도 필자를 위시한 쓰레기 꼰대 글쟁이들이 모조리 멸종하고 대가리에 비로소 먹물이 아닌 멀쩡한 뇌가 자리잡고 있는 자들이 글쓰기의 새로운 지평을-그러니까 간편하고 재밌고 유익한, 교과서스러운 글쓰기-연다면 그것은 환영할 일이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글러”라고 표현하는 이 자들은 일반적인 한글 맞춤법은 물론이요 문법—그러니까 국어사전 만드시는 저 높은 국립국어원의 상아탑에 고고히 계시는 국어학자분들마저 헷갈리는 그런 문법 말고 한국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초적인 문법—마저 파괴하는데, 이는 언어라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기계를 파괴하는 행위임에 틀림 없다. 이쯤에서 끝날 이 치들이 아니다. ‘존잘’, ‘고록’, ‘사약’, ‘OO-rer’ 기타 등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 자신들의 내집단; 즉 동인녀 내지는 오타쿠 집단 내부에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외집단에 속한, 즉 일반인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에도 이러한 어휘를 쓰는 이들의 행위를 보면 흡사 바미얀의 석굴암을 TNT로 폭파하던 탈레반이 떠오르는 것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러한 어휘에 대해 딴지를 걸거나 하면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국어의 ‘은어’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딴지가 걸릴 만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의 오류는 명백하다; 조폭들이 일반인들을 상대로 ‘큰집’이라는 어휘를 잘 쓰지 않듯이, 어떠한 단어가 은어가 되려면 특정한 집단 내부에서만 쓰여야 하고, 또한 단어의 탄생 자체가 외집단에서 전혀 알아듣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쓰여야만이 은어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게 아니라면 더이상 은어가 아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고유의 언어이면서 외부 화자에게도 이러한 언어를 무조건 사용하는 것은 이것은 ‘언어 파괴’가 되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는 명백하다. ‘글러’들의 언어 생활은 은어도, 신조어도 아닌 ‘언어 파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는 단지 이상하단 이유로, 그리고 쓰기엔 부적절한 어휘란 이유로 하오체나 신조어를 규제하던 사람들의 시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글러’ 이슈는 하오체/신조어 논란보단 통신체 규제 시작에 더욱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잠도 자지 않고 언제나 깨어있으신 시민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소통—그렇다고 진짜 그 “소통”을 말하는 건 아니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통신어나 최근 ‘글러’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들은 이러한 언어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정도는 대중적으로 쓰여 대부분 어느정도 알아먹을 수 있는 신조어나 알아듣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하오체에 대한 논란과 ‘글러’ 논쟁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들이 바깥 세상으로 기어나오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저들의 언어 생활을 강제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생각을 해 보라, 조폭들이 ‘큰집’이나 ‘담구다’; 칼과 같은 흉기로 사람을 찌르다 란 어휘를 사용한다고 해서 내가 조폭들에게 ‘담구다’와 ‘큰집’이란 어휘는 바르지 않으며 ‘감옥’과 ‘찌르다’가 맞다고 일일이 찌르고 다닐 수는 없지 않는가. 물론 그 전에 조폭들에게 처맞겠지만… 히이익! 마찬가지다. 저들이 저들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선 저들이 ‘-rer’이나 ‘존잘’같은 외계어를 쓰든, 제주도 방언을 쓰든, 알라 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레-고드라군을 까든 내 알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밖으로 나와 저러한 어휘를 쓴다면 필자는 이들과 필히 부딪힐 수밖에 없는 바, 끊임없이 경고하고 언어 사용을 문제 삼을 것이다. 이는 저들과 마주치는 자들의 눈과 귀를 보호해주고자 함이기도 하나 동시에 바른 어휘를 쓰게 하여 미래에 동인녀들이 부적절한 언어생활로 인해 받을 불이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함이니 나와 같은 충신이 또 어딨을쏘냐!

물론 자기가 무성애자이며 미국 모처 대학의 생물학 학도라며 이빨을 털고 다니는 모 간신배처럼 나도 마음만 내키면 그, 혹은 그녀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뭐든지 그들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피에 흐르고 있는 문법 나치—Grammatica Nazius의 피는 그것을 거부하니, 지크 하일! 하일 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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