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글쓰기

Graybored
GRAYBORED WRITES
Published in
5 min readJun 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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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어려운 글쓰기가 아니다

수필은 ‘글쓴이가 자신의 생각이나 감상, 의견, 비평을 아무런 계획 없이 내리 적는 글’이다. 다시 말하자면, 수필은 삘이 꽂힐 때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생각 그대로 줄줄이 써내리는 글이란 것이다. 즉, 수필에는 개요, 본문, 결론과 같은 글의 구조가 ‘있어선 안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단순한 일상을 서론, 본문, 결론의 구조로 ‘의도적’으로 짜서 결국 어떠한 교훈을 의도적으로, 억지로 주려고 하는 그런 글을 당신은 ‘감상, 의견, 비평이나 생각을 아무런 계획 없이 내려 적는 글’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물론 글을 짜임새없이 엉성하게 짜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글의 짜임새가 없으면 뭐 어떠한가, 어차피 아무런 계획 없이 내리 적는 글인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필에선 맞춤법을 ‘마춤뻡’이라 쓰거나 먹물 혹은 글쟁이를 ‘글러’라고 불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글은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씻지도 않고 얼굴에 매니큐어를 바른 사람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사람은 아직도 수필 쓰기를 ‘계획적인 글쓰기’로 오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직도 많은 사람은 수필을 쓰기 전에 무엇을 쓸지 계획하려고 하고, 무슨 교훈을 줄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거나, 심지어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수필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겁먹을 필요 없다! 이건 논리적이지 못한 구멍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반대자들에게 팝콘이 되도록 까이는 ‘논설문’도, 엄밀한 사실 검증이 필요한 ‘기사문’이나 ‘정보 전달문’도 아니다. 이 글의 갈래, 이 수필이란 글의 갈래에서만큼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아니, 만끽하여야만 한다.

수필은 말 그대로 계획 없이, 그냥 막 쓰는 글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어떠한 형식으로 쓰든 당신의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만약 이게 영어 지문이었다면 여러분은 For Example과 For Instance를 골라야 했을 것이다! 하하하!— 여러분이 산딸기를 먹었을 때 느낀 그 맛을 수필로 쓴다고 가정해보았을 때, 여러분은 그 산딸기의 맛에서 거의 굶주려가는 어린 사슴이 이곳까지 왔으나 산딸기가 없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기적이고도 탐욕적인 자신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 낼 필요가 없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해도 되긴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런 위선적이고 거창해 보이는 주제를 가지고 수필을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여러분은, 그 산딸기를 먹으면서 느꼈던 것 모두를 주제로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몇몇 꼰대들은 전혀 대단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쓴 글에 수필이라는 타이틀을 붙일수는 없다면서 날뛸 것이다. 물론 필자가 해 줄 대답은 간단하다. “그래서 너희들은 뭐 대단한 거라도 있다고 이 지랄이냐?”라는 것이다. ‘달밤’과 ‘돌다리’로 유명한 이태준은 고작 파초를 팔까 말까 고민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수필을 썼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파초를 파는 일은 결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산딸기를 섭취하여 얻는 육체적, 영양적 이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은 이러한 사소한 일상의 일을 주제로 매정한 세태를 비판하고 진실한 마음을 멋지게 강조해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 관해 이야기하면 어떤가? 그것이 비록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것을 매개로 주제를 멋지게 강조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필의 매력이고, 또 별다른 형식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바로 수필의 매력이다.

설령 주제가 사소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쓰는 글이 바로 수필이다. 자기 마음대로 쓰고 자기 마음대로 주제를 정하는 게 바로 수필이다.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바만 똑바로 전해지면 그것이 바로 좋은 수필이고, 그것이 바로 잘 써진 글이다. 설령 주제가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중수필이라고 하여도, 글이 정확히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도록 글을 쓴다면 그것은 좋은 글이 아니다. 사소한 주제의 좋은 글보다도 못한 글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커녕’이 어울릴 것이다. 오히려, 사소한 주제의 못 쓴 글보다도 더욱 처참한 결과물이 될 것이다. 사소한 주제의 못쓴 글이라면 창피함이라도 덜하다. 주제가 거창한데 내용물이 부실하면 그걸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간단하다. 중이병!

필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간단하다. 적어도 수필을 쓸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쓰라는 것이다. 괜히 무거운 주제에 중요한 사례를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처럼 단순히 유리병에 물을 꽉 담아서 냉동실에 얼려놓았다가 깨진 것을 보고서도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자’는 놀라운 주제를 이끌어낼 수 있고, 혹은 이글루스의 키도벨리스트님처럼 아주 사소한 주제와 사소한 사고들을 가지고도 재밌게 글을 이끌어나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이 부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용물은 주제도 아니고, 사건의 중요성도 아니다. 여기서 내용물은 자기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를 이르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에는 자기 자신만의 만족을 위한 것도 있지만 결국 우리가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글을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일단 다른 사람이 주제를 알아먹게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적어도 ‘다른 사람이 알아먹는 선에서’라면, 여러분이 무엇을 쓰든 적어도 여러분이 ‘수필’을 쓴 것이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러분이 어제 애인과 침대에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글도 좋다. 아니면 여러분의 성 경험담을 써놔도 좋다. 아니면 여러분이 어제 먹었던 사ㄹ.. 아니… 흠흠… 여러분이 어제 먹었던 음식에 관해 글을 써도 좋다. 그것들은 모두 ‘수필’이다. 여러분이 쓰는 모든 글은 수필이라 불려도 무방한 글들이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일단 펜을 잡아라. 아니면 최소한, 키보드에 손이라도 올려보아라. 그리고 겁을 떨쳐놓아라. 그렇다면 글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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