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How are you? #4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꾸 잊게 된다. 대화의 여지를 주지 않고,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될까봐 밤마다 이불킥을 날린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진다.

논의를 하다보면, 어느새 논리와 근거는 찾아볼 수 없는 나를 만난다. 그때는 이미 얼굴색이 변하고 언성이 높아져 있다. 지식의 깊이가 얕아 금방 바닥나는 근거도 한 몫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말은 줄이고, 상대방의 말을 듣기 위해 집중한다. 내가 상대방의 생각을 뒤집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채 나의 주장을 계속하는 것은, 떼쓰기이다. 그럴 바엔 말을 안하는 것이 낫다. 침착하게 상대방의 말을 다시 들어보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점과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듣기에 앞서 필요한 것은, 내가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할 마음가짐이며, 이러한 마음가짐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아무 말도 듣지 않겠다는 태도 앞에선 아무리 좋은 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상대방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맞춰주거나 싸우거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말 이래저래 좋은 게 없다.

물론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가짐이면 좋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마음가짐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생각의 차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차이를 좁히기 위해 서로가 노력을 해야한다. 동일한 문제라고 하더라도 관점의 차이가 가져오는 언어의 다름이 존재한다. 상대방의 동의와 이해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보여진다. 그 이후에 나의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을 통해 나의 관점 안으로 데리고 와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절주절 써놓고 보니, 정말 어렵게 보인다. 아무런 말이 없는 흰 여백을 앞에 두고도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어려운데,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다. 생각을 한 건 오래됐지만, 시간만 지났을 뿐 별로 달라진게 없어 보인다.

오늘도 나는 이불킥을 날리며 몸을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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