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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

그때 그 명천한 주 중 하루는 순욱이 몸이 드물게 좋지 않았다. 열이 좀 있는 듯 어지러웠다. 말을 잘 해보려 해도 목소리가 가슴께로 가라앉았다. 그저 미감이라 생각하여 그 날만 잠시 쉬겠다 했더니 곽가가 문안을 왔다. 진작 만류해뒀던 일이다. 어쨌거나 왔기에 곽가의 기척이 들리자마자 순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자마자 곽가가 와서 순문약님, 하고 낮게 부르더니 인사를 하고 손을 잡는다. 병이 옮을까 순욱이 슬쩍 손을 밀어낸다.

“코끝이 빨갛군요.”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곽가야말로 낯빛이 창백하고 손이 차가웠다.

“아니, 가벼운 감기 같으니 걱정하지 말고…”

말하던 중에 가볍게 재채기가 튀어나온다. 뒤따라 나온 순욱의 한껏 흐트러진 표정에 곽가가 섬뜩 즐거워했다.

“여하튼 들러 주어서 고맙습니다.”

평상시, 상하를 가리지 않고 상대 동의 없이는 자리에 잘 앉지 않는 순이 오늘은 먼저 가 앉았다. 곽도 큰말 없이 따라가 앉았다. 뭐라도 이젠 됐다, 가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지나치게 피곤하다. 순욱이 몸을 기울이자 곽가가 멋대로 등을 쓸어준다. 겨우 기운을 내서 말하려 했으나 목청 어딘가가 복잡하게 꼬이는 느낌이 나 순욱이 말을 만다. 사매 사이에 이걸 거절해 뭣 하려나 싶기도 했다. 그저 눈을 감았다. 저도 모르게 남의 가슴팍에 순이 양처럼 기대자 곽이 껴안았다. 늘상 하는 그대로였다. 자연스러웠다. 그대로 잠시 있었다. 순욱이 몇 번 기침을 했다. 그뿐이고 다른 것이 없었다.

다음날 곽가가 몸이 좋지 않다며 아침의 조회를 빠졌다. 친의들은 숙취냐며 가볍게 떠들었다. 순욱 혼자만 그 자리에서 설마하니 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시간이 비는 대로 잰걸음으로 곽의 처소에 찾아가니 아니나 다를까 환자가 되어 누워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았다. 그럴 것이 안부 물음도 필요없이 곽가가 명백한 환자였기 때문이다. 기침을 마구 한다. 침상 침구에서 튀어나온 한쪽 발마저 아주 말라서 더 환자로 보인다. 순욱이 한껏 사과한다. 앞에서 자꾸 내 탓이다 내 탓이다 하니 곽가는 웃을 뿐이다. 평상시라면 매끄러울 검은 머리도 멋쩍게 흐트러져 있어 순욱이 살짝 매만져주었다. 평소답게 얼굴이 예쁘게 드러나자 손을 떼려고 했지만, 곽가가 그 손목을 잡았다.

“좀 더 해주시면.”

“응?”

곽가는 아플 때 누군가 어루만져주는 게 좋았다. 그 얘기를 하자 순욱도 고개를 끄덕이고 이마를 좀 더 만져주었다. 기침이 좀 가라앉자 곽가가 혼자 말한다. 저녁이야말로 손길이 필요하다. 기관지는 새벽에 더 나빠지는 법이라며 안 나갈 수 없다는 둥 순욱은 사실 크게는 모르는 얘기를 한다. 순이 떠올린 건 어릴 적 아플때 보듬어 주셨던 어머니와의 정이다. 곽가처럼 밤중 나가서 주점과 유곽이 몰려있는 거리에서 서성이는 게 아니란 말이다. 순욱은 짐짓 곽가를 애처롭게 생각했다. 어쨌든 저보다도 훨씬 어린 여자 아이였는데. 몸이 약하고 심성이 까다로운 거야 전부터 알았지만 이렇게 같은 주군에게 몸을 위탁하고 나니 알게 되는 것도 느끼게 되는 것도 더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 협탁에 먹다 만 과일탕이 엎질러져 있을 뿐이고 그저 살풍경했다. 처소엔 과일 삭는 냄새 뿐이고 약냄새 같은 건 각별히 나지도 않았다. 조용해서 곽가가 숨쉬는 소리가 잘 들렸다. 어쩌다 자기 소매가 그녀의 머리를 스치는 소리도 들렸다. 가만 가만히 쓰다듬으며 시간이 어찌 됐는지 생각해본다. 창에 차들어오는 해를 보니 곧 나가야 할 듯 하다. 곽가가 잘 가라앉아 있어 순욱은 조용히 속삭였다. 의원을 불러야지? 물었으나 답이 없다. 잠들었는가? 생각하며 고개를 내렸다. 봉효는 늘 속이 어려웠고 문약은 마음이 늘 어려웠다. 너무 어려워서 오래간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곽가는 늘 모두 허무해 했다. 빈 것에 머리가 빠지듯 잘못 끼인 채 괴로워했다. 숙인 머리를 더 가까이 해 이마에 이마를 대었다. 곽가가 숨 쉬는 것이 느껴졌다. 골상과 거죽과 체온의 느낌이 한꺼번에 머릿속으로 올라왔다.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순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간에 가까이 가자 뒤에서 부른다.

“문약 언니.”

거슬리는 호칭이나 뒤돌아 보았다. 실눈만 뜬 봉효가 애써 말했다.

“저녁에 또 와.”

“그래. 일과가 끝나고… 시간이 있으면…”

말을 흐려버리고 문약은 그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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