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쉬이 눈이 감기지가 않았다. 억지로 잠들려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까의 입술 감촉이 어땠더라, 하는 생각이 들자 곽가는 자신의 한심함에 몸서리를 쳤다. 정신이 없고 경우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온종일 자기한테 화내느라 지쳐 있던 사람에게 그런 사고를 치다니. 곽가는 누운 채 맨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속만 여자고 겉으로는 남자 말씨에 사내 옷을 입고 머리는 이상하게 자른, 이것도 저것도 뭣도 아닌 이상한 사람 아닌가. 돌연히 왜 그랬을까. 창고에 돌던 술 냄새와 그간의 버릇을 생각해도 말이 잘 안 됐다. 잠기운이 다 도망가버려 곽가는 이른 새벽에나 겨우 잠이 들었다가, 얼마 잠들지 못하고 바로 깨어났다. 비가 잘 안 오는 동네임에도 불구, 새벽에 비가 자잘하게 내렸는지 벽도 공기도 축축하다. 채비하고 나가보니 과연 흙이 젖어 있다. 깬 김에 바로 상회로 향했지만 마음이야 질척질척 불편했다. 그래도 가서는 뻔뻔하게 굴 것이다. 다만 이런 짓까지 저지르고도 거기로 다시 가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순욱 말대로 배움으로 인해 맘씨가 바뀌기라도 했는지, 평생 절대 안 할 짓을 계속하고 있다. 툴툴거리며 상회에 도착했다. 과연 아주 이른 시간임에도 순욱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표정도 없이 인사한다. 곽가도 답 인사를 건넸다. 잠시 어색하게 둘 다 침묵했다. 곽가가 애써 가 앉으며 오늘부턴 뭘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태평하게 넘어가려 드는 곽가에게 순욱이 한껏 비난하는 눈치를 보낸다. 따갑기가 짝이 없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구요!”

곽가가 성질을 참지 못하고 결국 꽥 소리를 질렀다. 순욱이 여전히 쌀쌀맞은 얼굴로 묻는다.

“어제 일에 대한 사과입니까? 아니면 그간의 일에 대한 사과입니까.”

“둘 다요. 잘못했다니까요!”

잘못했다 하면서 왜 화를 내지요? 그렇게 말하며 순욱이 차분하게 자리에 앉았다. 곽가는 숨을 못 참고 자꾸 씩씩거렸다. 몇 번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여 간신히 진정했다.

“그렇게 비난하듯 쳐다보시니까 그렇죠.”

“내가 모를 것 같습니까? 소저의 사생활이 근래 지저분해진 것.”

순욱의 냉정한 얼굴에 목에서 소름이 싹 올라왔다. 결국 이것까지 들키는구나. 눈을 꾹 감고 침착해지자고 곽가가 다짐한다. 그런데 튀어나오는 얘기가 사실과 조금 다르다.

“어린 처녀가! 남자를, 흠! 아무리 품행이 그렇다지만 스승도 몰라보고 나한테까지 마구잡이로.”

“음?”

“응?”

“음? 지저분한 건 인정하는데 저는 사내는 안 탐합니다만?”

“응?”

곽가가 궁금한 듯 눈을 떠놓곤 뻔뻔하게 말했다. 순욱이 급작스레 얼빠진 얼굴로 의아해한다. 그리고 곧 파랗게 질렸다.

“그럼.. 그럼 나한테는 왜?”

“그야 사내가 아니시잖아요?”

곽가가 호호 소리 내 웃었다. 말을 잃은 순욱은 새파랗게 질린 채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잠깐만. 하고 혼자 웅얼거리더니 골을 감싸 쥐고 머리아파한다. 바로 앞에서 이렇게 괴상한 말을 하니 순욱도 이상한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혹시 무슨 마음이 있어서 내게 입을 댄 겁니까?”

“아뇨? 아닌데요? 그냥 버릇인 건데요?”

별생각 없었습니다? 하고 곽가가 최대한 빨리 답하자 그제야 순욱의 자세가 풀어진다. 한기라도 돋았었는지 자기 팔을 쓸어낸다.

“아무튼, 그런 문란한 짓은 앞으론 어딜 가든 하지 마시오.”

문란? 그게? 곽가는 한껏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진짜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눈빛이 기묘해졌음을 순욱이 바로 눈치채고 물어온다.

“설마 지금 문란한 생각 합니까?”

물음에 곽가가 별말 않고 있자 순욱의 얼굴이 다시 점점 파란색으로 변한다. 곽가가 곧이어 고개를 세게 저었지만 여전히 묘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그냥 습관적인 표정이라고 말해주자 그제야 순욱이 의심을 푼다.

“아무튼 간에, 그러고 다니지 마십시오.”

흥. 하고 곽가가 김을 뺀다. 아닌척 하고 있지만 머리가 너무 뜨겁다. 이제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말자더니 순욱이 일 얘기를 한다. 재고의 전체적인 파악을 순욱이 하고 있었는데, 매일매일 하자니 시간이 너무 걸려서 곽가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직함을 줄 수가 없으니, 그냥 수행원이나 종처럼 부릴 수밖에 없다며 순욱이 찝찝해한다. 곽가는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찮은 몸종이든, 염병할 보조직이건 어차피 받는 돈은 같았다.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일을 어찌해야 하는지 설명이 조리 있게 나온다. 잘 들어보니 주로 그냥 물품창고에 누가 오갈 때 지켜보고 몇 개나 들어가고 빠지는지 기록하는 일이었다. 회계 일이랑 비슷하네요, 하니 순욱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신 앉아서 남의 말 듣는 일이 아닌, 직접 서서 걷고 눈을 예민하게 하고 다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일일의 보고는 순욱에게 와서 하면 된단다. 곽가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상회로 사람들이 속속들이 들어온다. 슬슬 일이 시작된 걸 보고 순욱이 곽가를 일할 곳으로 데려가 주었다. 나무와 흙으로 지었고, 어둡고 술과 풀냄새가 나던 술 창고와는 달랐다. 창고이지만 깨끗하고, 하얗고, 회벽돌으로 말끔하게 지은 건물이었다. 오래간 묵혀야 하는 술과 달리 금방 들어왔다가 금방 나가는 물품을 보관하는 곳이라 그럴 것이다. 눈을 돌려 훑어보니 비단이 주된 보관물품이었다. 바쁘다며 도련님께서는 또 금방 떠나신다. 곽가는 얌전히 일하기로 했다. 순욱이 화내는 꼴을 더 보고 싶진 않았다. 벽에 간단하게 생긴 주판이 걸려 있어 손이나 풀 셈으로 그걸 꺼내 들었다. 주산으로 시간을 보내다니, 얼마 전만 해도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다. 아주 큰 수를 만들어 놀고 있는데 슬슬 때가 되었는지 일꾼들이 들어온다. 다들 짠 듯이 곽가를 일순간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린다. 인사도 안 하고 말도 안 거는 것은 당연지사.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곽가도 이 건에 관해선 신경 안 쓴 지 오래되었다. 귀나 파면서 들어가고 나가는 물건 수를 세었다. 주판을 만지거나 종이에 쓸 필요도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외워졌다. 일 자체는 간단해 보였으나 온종일 신경써서 남들 뭐 하나 쳐다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퇴근하러 순욱을 찾아다녔는데, 안 찾아진다.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고 현판 아래에 구겨져 앉아 기다렸다. 출입문 앞을 대놓고 방해하고 앉아 있는데도 아무도, 그 누구도 곽가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시비를 걸 사람도 없어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순욱은 또 사람들이 다 가버린 밤중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미안하다며 빠르게 업무를 봐준다.

“다 되었습니다.”

“저기, 아까 아침에 말예요.”

아침이란 말에 순욱이 바로 경계한다. 곽가는 담담한 척 물었다. 아까 아침에 공자님 대고 이상한 생각 한 것 같아 싫으셨냐고. 그야 질겁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곽가가 또 흐흥, 하는 소리를 내서 머릿속의 김을 뺀다.

“뭐야. 이전에는 길바닥 아저씨들이랑 다를 것 없이 징그럽게 구시더니, 실은 제가 좋다고 하면 싫다고 할 거였네요? 허튼소리 잘하시긴.”

하하, 하고 순욱이 무슨 얘기인지 짚어내고선 기운 없이 웃는다. 요전에 오해받는다고 서로 운운했던 그것이다. 그거요, 하며 몸을 숙이고 짧게 말한다.

“가끔 하는 체면치레입니다.”

희롱하는 말도 못하면 사내가 아니라길래. 그런 말로 살짝 눈을 내리깐다. 곽가는 갑갑함이 꽉 차오르는 걸 꾹 참고 숨만 내쉬었다.

“그런데 나는 사내가 아니죠. 아주 그냥 지적해주고 싶어서 미치겠다는 표정이군요.”

“아니, 그전에 희롱하지 말라구요. 아주 짜증 난다구요.”

아, 미안합니다. 하고 순욱이 자기 뺨을 멋쩍게 긁었다. 사실 나도 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해야 해요. 그렇게 내뱉어내곤 가만히 있다. 조용히 순욱이 굳었다. 그 모습에 툭 와 닿는 게 있었다. 평소 무슨 압력을 받으면서 사는지 조금은 알겠다. 이렇게 조그만 여자에게 남자 옷을 입혀놓고, 남자라고 우기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말이 되어 보이게 하려면 억지로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곽가는 순욱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얼굴에서 눈썹마저 피곤함에 젖어 있었다. 순욱이 갑자기 주변에 사람이 있나 살폈다. 물론 둘 빼곤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반종일 생각한 게 있습니다. 소저, 잘 들어요.”

“네에.”

“여색 한다는 거! 그걸! 왜 나에게 말하고 난리입니까!”

순욱은 전에 들은 적이 없는 큰 소리로 버럭 성질을 냈다. 곽가는 당황해서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런 걸 아무에게나 말하고 다닙니까? 그러면 제발 앞으로 그러지 마요. 큰일 납니다. 아주 큰일 납니다.”

소저는 정신이 다 빠져서 날아갔나 보죠! 하고 마저 화를 낸다. 곽가는 미간을 잔뜩 구겼다.

“네? 아무한테나 말 안 해요.”

“그럼 어찌 그렇게 가볍게 털어놓았습니까?”

곽가는 찡그린 이마를 손으로 문질러 폈다.

“그야, 어제 공자님께서 절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런걸요. 공자님을 깊이 믿고 있지 뭐예요. 그렇게 뻔뻔하게 대답하고 나자 순욱은 정말 끝없이 질린다는 듯 힉 소리를 냈다. 알겠다면서 머리를 싸매 쥔 채 순욱이 혼자 어휴 어휴 하며 가버린다. 그가 상회 문을 하나하나 손수 채우는 걸 좀 보다가 곽가는 집으로 향했다. 조금 늦었으니 바로 아버지부터 챙겨 드린 뒤 물통을 들고 나갔다. 공용 우물까지 한참을 걸어갔다. 이미 늦은 밤이라 어두워져 더 천천히 걷느라 오래도 걸렸다. 지난 가랑비 덕인지 우물 근처의 흙이 아직 축축하다. 시간을 들여서 물을 떠냈다. 나무통에 어둡게 비친 얼굴을 보다가 그 속으로 머리를 담갔다. 지하에 있던 차가운 물이 귓속까지 들어가자 이제야 머리가 식는다. 온종일 골에 열이 차 힘들었다. 머리카락부터 살까지 다 얼어붙는 것 같자 머리를 빼내고 숨을 거칠게 쉬었다. 젖은 머리가 물을 후두둑 흘려 옷이 조금 젖는다. 머리칼을 쥐어짜내고 그 물은 모두 쏟아버렸다. 낮이면 남의 밭에 가져다줘야 했겠지만 밤이라 맘대로 한다. 다시 물을 퍼내 힘겹게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물통을 메었던 팔과 어깨에 연한 멍 자국이 들어있었다. 늘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다. 노부를 위해 아침은 물론 점심까지 충분하게 챙겨 드리고 나갔다. 좌판을 안 들고 나간 지 꽤 되었는데도, 아버지는 자꾸 뭔가 만들고 계시다. 언제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스럽다. 일단 오늘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곽가는 출근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와 있는데, 순욱이 없었다. 의아해하던 중 더 의아한 걸 발견했다. 상회에 안 어울리는 애꾸 사내가 얼굴을 쑥 내밀고 안을 둘러보는데 안절부절못한다. 아, 그 하후 선생. 고의로 뒤로 돌아가 등을 톡톡 쳤더니 그 덩치로 화들짝 놀란다. 곽가를 보곤 안심한다. 찾고 있었다며 뭔가 서신을 준다. 저요? 뭐에요? 하고 물었지만 무시당했다. 하후 선생은 여긴 아는 사람이 없는데, 다들 지금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거냐며 근엄한 얼굴로 부끄러워하더니 바로 사라져버렸다. 곽가는 심드렁하게 서신을 펼쳤다. 그야 곽가랑 대화하는 사람은 이 상회엔 순욱 뿐이니 다들 눈총을 주지. 종이를 읽어보니 발신인은 순욱이다.

예기치 못하게 손님이 찾아와
사정상 금일은 상회에 없습니다
자택에 머무를 예정을 알립니다
업무는 내일을 기약해 봅니다

쓸데없이도 예쁘고 단정하게 썼다. 곽가는 그걸 잘 접어서 품에 넣고 일을 하러 어제의 창고에 갔다. 이미 몇 가지가 없어진 게 눈에 보였다. 치부책을 펼쳐 볼 필요도 없다. 어제 센 것이 명확하고 확실하게 떠올랐다. 주판도 필요 없어 없어진 것만 세고 빼서 책에 간략하게 적었다. 그리고는 책상에 올라타 앉아 빈둥빈둥거렸다. 그 자리에선 바깥도 잘 보였다. 창도 바로 옆에 있고, 문 너머도 넓게 트였다. 보아하니 상회의 주인이 자리에 없어 그런지 날 따라 노는 이가 보였다. 뭐 곽가부터도 이렇게 앉아 있지 않은가. 심심해서 다시 주판을 꺼내 셈을 하고 놀았다. 순욱이 이 구석에 곽가를 앉힌 건 물건의 흐름을 관찰해서 판매와 구매 수요에 대해 잘 알라 한 의도였건만, 곽가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다. 평상시 조용히 일하던 사람들도 오늘은 약간 떠들고 중간에 앉아 쉬고 한다. 비단을 마저 나르러 장정 몇이 왔다갔다하는데, 심심함에 곽가는 잠깐 귀를 열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주인이 안 왔다는데. 아, 지주댁 딸? 운운한다. 저런 잡일꾼들도 아는구나. 하고 곽가는 그 조그만 목덜미를 떠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마저 들리는 소리도 심상치 않다. 월경 때문에 안 왔다는데? 많이 심하다는데? 아내가 그 집에 잔치 있을 때마다 주방 일 다녀서 아는데 어쩌고저쩌고. 그 얘기에 곽가는 아까 받은 서신의 ‘손님’ 부분을 기억해냈다. 그것참, 그거 하나 바로 말하기 싫어서 그렇게 돌려 말하셨군. 하고 주판을 꽉 쥐는데 정말로 무시 못할 소리가 들려왔다. 쯧쯔, 그거야 계집년이 남자 행세를 하니까 순리를 거슬러서 벌을 받는 거지. 천벌을 더 받아야 해. 귀신이 잡아가려나? 곽가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들을 쳐다봤다. 중년의 남자 하나. 장년의 남자 하나. 곧이어 음담패설로 이어진다. 여느 누구와 다를 것 없는 천것들. 오히려 순욱 주변에 있는 먹물 발리고 비단신 신은 사람들이라면 저딴 소리 하지 않고 입조심을 한다. 도리어 이런 무지렁이들이니 더욱 저딴 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는다. 하지만 순욱의 주변인이라고 해서 저런 생각을 안 할까? 어쩌면 똑같이 생각하고, 심지어 더한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다. 그렇게 떠올리고 나자 더욱 화가 확 치솟았다. 간밤에 겨우 식힌 머릿속의 신열이 다시 끓어올라 골치에 불을 붙였다.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갔다. 소리를 지르는 대신 손에 쥔 주판을 꽉 쥐어짜며 참고 있었다. 너 같은 놈들이 함부로 뭐라고 할 분이 아니시다. 어디서 그따위로 떠드느냐. 그런 귀인께 악담이라니, 정신이 나간 거 아니냐. 그렇게 떠들 요량으로 앞에 다가가 길목을 막았더니 먼저 튀어나오는 말본새가 대단했다.

“뭐야, 이 년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성이 끊어졌다. 곽가가 들고 있던 주판으로 그 사내의 머리통을 세차게 갈겼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외마디 괴성이 튀어나오고, 곽가는 바로 머리채가 당겨진 채 멱살을 잡혔다. 멱살을 누른 손이 숨통을 막아 아팠지만 상관없었다. 놔! 하고 소리 지르며 방금 주판으로 얻어맞은 얼굴에 마른 주먹을 날렸다. 힘은 소용없을 걸 알고 손뼈로 눈을 노렸다. 바로 떠밀려서 내동댕이쳐진다. 곽가는 뒤로 넘어지는 와중 문간에 걸려 벽에 이마를 세게 박았다. 그대로 구른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아픔으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곽가는 곧바로 기절했다.


깨어났으나, 눈을 가늘게 뜬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누운 자리가 푹신해서 겨우 고개를 돌려보니 자기 앞에 사람 둘이 있었다. 작은 사람 하나는 앉아 있고, 큰 사람 하나는 서 있고. 시야가 흐려서 누군지를 모르고 있자 작은 사람이 손을 뻗어 몸을 일으켜 준다. 흐늘흐늘 일어나 앉아 제대로 보니 순욱이었다. 뒤에 있는 것은 하후 선생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곽가는 쉰 목소리로 성질부터 냈다.

“잘 왔어요! 무술 선생! 그 새끼들, 패죽일, 빌어처먹을 새끼들을!”

손가락질하며 하후 선생에게 달려드는 것을 순욱이 붙들어 끌어안고 말렸다.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현기증에 곽가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순욱은 말없이 팔을 붙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고개를 간신히 들어보니 코피가 주륵주륵 흘렀다. 앞에 선 두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깊게 쉰다. 순욱이 자기 옷소매로 얼굴을 급히 닦아준다. 곽가는 턱이 붙들린 채 멍한 눈으로 가만히 있었다. 머리 어딘가가 깨진 것 같고, 어지러워 앞도 제대로 안 보이고, 코피가 멈추지 않았다. 순욱의 소매가 피범벅이 다 되자 그제야 하후 선생이 뒤늦게나마 수건을 가져왔다. 더 흘려내고 나서야 코피가 멈추었다.

“왜 그랬는지는 들었습니다.”

이제 보니 순욱의 얼굴도 좋지가 않다. 묘하게 눈매가 탁 풀려 있다. 무술 선생께선 그 치들을 패 주었나요? 하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뭐라구요? 그럼 여긴 왜 있는 거에요? 놔 봐요, 내가 맞는 한이 있어도 그것들을 패러 갈.”

“앉으십시오.”

평상시 차분하던 목소리가 더 가라앉으니 유난히 낮고 무거웠다. 곽가는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아직 어지러워 앉다가도 비틀거렸다.

“이미 그들의 일가친척을 성 내 모든 업장에서 해고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식솥도 있더군요.”

아마 근시일 내 다 같이 물구나무서서 빌러 올 겁니다. 하고 농담처럼 말은 하는데 표정은 무섭고 말투는 무거웠다.

“일가친척까지는 좀 너무한데요. 그냥 그자식들만.”

“피를 말려야 미안해질 겁니다.”

썩은 종자는 태웁니다. 놔두면 더 상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풀린 눈으로 아주 차게 말한다. 곽가는 심상찮음을 느끼고 말하기를 그만뒀다. 냉정한 표정이던 순욱이 살짝 느슨한 얼굴로 곽가에게 대고 중얼거린다. 신의는 있어도 심성이 까탈스러워 충성심이라곤 없는 인물로 봤는데. 미안합니다. 소저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내가 내겐 분수에 넘치는 사람을 내 밑에 둔지도 모르고. 나부터가 얕잡아 본 벌인가 봅니다. 그러면서 칭찬과 사과를 건네는데 곽가는 삽시간에 기분이 미묘해졌다. 충성심 같은 게 아니었다. 그냥 고개를 떨궜다. 순욱을 만난 뒤로, 이제 도통 사고를 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싶어 순간은 억울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보드랍고 통통한 손으로 제 마른 주먹을 계속 쥐고 계신다. 곽가는 애써 모든 감정을 꺼트렸다. 하후 선생이 가버리자 순욱은 한 손으로 피에 붉게 젖은 소매를 접으려 했다. 잘 안 접히는 것을 보고 곽가가 대신 접어주었다. 순욱은 눈을 미지근하게 감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왜 여자이지?

그 자신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곽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힘없이 순욱을 쳐다보았다. 순욱도 뭔가 진이 다 빠진 듯하긴 마찬가지였다. 흐린 표정으로 곽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욱이 생각한다. 이런 의기 있는 아이가 왜 여자인 걸까. 거기다 영특하기까지 하고 미인이기도 하다. 왜 여자이지? 그런 마음으로 쭉 바라보던 순욱이 점점 빠져나가는 약 기운과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아픔에 눈을 찡그렸다. 배를 붙든 채 곽가의 어깨에 기댔다. 기댈 것도 없이 마르고 비척거리는 어깨였다만 최소한 순욱보다는 기골이 있었다. 제자의 소식을 듣고 이곳에 오느라 처음으로 아편을 조금 했다. 신경 쓰여서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곽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순욱의 이상행동에 당황만 했다.


감상 남기시려면 이쪽으로

Show your support

Clapping shows how much you appreciated 빵튀김’s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