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가의 별채를 나서자마자 곽가는 뛰었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길을 뛰어내려갔다. 일전엔 이 길을 오다니며 기대하거나 설레했던 일들이 다 거짓말 같았다. 길게도 달려 성곽까지 오자 완전히 지쳐버렸다. 숨이 울컥거려 뛰지를 못했지만 발걸음이라도 빨리 했다. 난데없이 죽은 사람으로 만들다니. 그것도 갑자기 이런 식으로. 마치 그의 유아 때 신분과 이름 같이 어느 날 갑자기 없앴다. 원래 이럴 작정으로 곽가를 두고 본 것이다. 관대하게도 말이다. 곽가의 아버지는 크게 충격을 받고도 남았을 거다. 혼절하지 않았길만 빌며 발길을 재촉했다. 발이 무겁고 걸리는 모든 것이 거치작거렸으나 최대한 빨리 가려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 우는 소리가 문 안에서 들려왔다. 곽가는 문을 열어젖히고 아버지를 불렀다. 울고 있던 노인이 때마침 고개를 든다. 노부는 몇시간이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곽가는 바로 뛰쳐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눈물로 젖어서 축축한 손을 쥐자 오는 길에 말랐던 땀이 다시 줄줄 흘렀다. 관아 것들이 멍청한 실수를 했나 보다고 설명하며 애써 웃었다. 그날 곽가의 아버지는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몇번이고 자식의 이름을 불러 존재를 확인했다. 한밤중에는 부스럭 우는 소리도 났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원망과 분노로 순욱을 떠올리면 그의 부드러운 손짓과 나긋한 말투도 같이 생각났다. 침상에서의 젖은 얼굴까지 떠올리고 고통스러워 하면 아버지의 밭은 기침이 곽가를 깨웠다. 제정신으로 있기 힘들어 날을 새웠다. 중간중간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커져 식수도 데워다 드렸다. 아직 춥지는 않았지만 불쏘시개와 장작을 써 불을 계속 켜두었다. 어차피 깨어있을 밤이면 아버지에게 따스한 편이 나았다. 병든 아비를 두고 혼자 애써 키운 딸이 갑자기 죽었다고 말해버리면 산 자신은 뭐가 되는지. 노인의 충격은 어찌 할 건지. 순욱은 이제 그런 일은 다 사소하다 못해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안달이 난 그의 눈빛은 오히려 차가웠다. 곽가처럼 화를 내거나 속에 불길이 있지도 않았다. 더 차갑기만 했다. 가슴 사이로 붙들고 맨몸을 두어도 절대 뜨겁지 않았다. 머리를 싸매쥐었다. 며칠간 그렇게 울다가도 울음이 다 말랐었는데도 눈가가 벌써 젖은 걸 알았다. 그만을 딱히 원망하는 건 아니나 알고 있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의 기침과 울음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곽가는 눈가를 닦고 아궁이를 확인하러 눈을 떴다. 불은 작고 약하지만 잘 타고 있었다. 괜시리 그 안에 마른 가지를 던져넣었다. 곽가 또한 바닥에 앉아 시름했다. 비보를 금방 걷어냈다고 생각했으나 곽가의 노부는 결국 더한 병상에 드러누웠다. 애초 심성이 유하고 순했던 사람이 늘 병까지 달고 살았으니 한번 받은 충격의 내상이 너무 깊었던 거다. 며칠을 간절히 간호했으나 곽가의 아버지는 아주 조용히 결국 숨을 거뒀다.


돈이 없었다. 별찮게 살기엔 충분한 돈이 수중에 있었으나, 제대로 죽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장사를 미루려니 밤마다 상한 냄새에 이끌린 들개들이 와서 집 근처에서 짐승 소리를 냈다. 결국 널빤지로 부르기도 미안한 목재를 사 이어 얽고 짚을 넣었다. 묫자리는 사람을 시켜 팠으나 묻을 돈은 없어 옆집에서 썩어 헐어지기 직전인 삽을 빌렸다. 곽가의 아버지는 굽고 말랐어도 키가 큰 사람이었다. 곽가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도망나왔었다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빌며 그를 세워 묻었다. 흙을 파 넣는 와중에 삭은 삽이 결국 뚝 부러지며 쇳가루를 날렸다. 별 방도 없이 손으로 흙을 파넣었다. 젖은 흙이 무겁고 양이 만만치 않아 전신에서 진땀이 흘렀다. 팔이 아파왔지만 쉬고 싶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계속 흙을 파묻어 넣었다. 꽤 채워지고 났을 땐 이미 염치고 뭐고 없었다. 바닥에 엎드려 본인이 보기에도 불쌍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흙을 손으로 퍼넣었다. 그렇게 몇시간을 하자 오른손 중지의 손톱이 부러지기도 거부하고 통째 뚝 떨어져 나갔다. 속의 생살이 드러났으니 당장 어쩌질 못한다. 왼손으로만 겨겨우 흙을 다 채워넣었다. 얼추 되었으나 이젠 표면을 다져야 했다. 일어서려는 참에 침잠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가가야.”

아버지의 사망을 확인하고 이렇게 처참한 꼴로 악다구니를 쓸 때도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 뻔뻔한 목소리를 들으니 눈가가 또 확 뜨거워졌다. 입술을 꽉 깨물고 말을 말았다. 울지 않으려고 최대한 세게 입술을 물었다. 그가 뒤에서 뭐라고 떠들었다. 하인도 몇 대동했는지 뭔가 이것저것 짐을 갖고 온 듯한 사람 기척과 길고 울퉁불퉁한 그림자가 보였다. 목소리 대신 의미없는 목울림만 입에서 나올까 숨을 몇번 거두며 진정을 했다. 사람 소리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 싶었을 때 말을 꺼냈다.

“꼴도 보기 싫어요.”

뒤를 돌아보기도, 이제 와 일어서기도 기운이 모자랐다. 곽가는 주저앉은 채 땅바닥만 보았다.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영원히 나타나지 말란 말이야!”

제발 꺼져! 토해내듯이 외치고 흙바닥에 이마를 대어 바닥에 기댔다. 시야가 뒤집히자 자신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심장 박동과 목의 맥이 워낙 쿵쿵거려 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뭘 지껄이는지는 알 수도 없었다. 뒤의 그는 한참을 조용히 서 있더니, 알았다 하는 작고 가늘고 약한 말을 남긴 뒤 고운 신발 끌리는 소릴 내며 시종들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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