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 세상이 나를 주연으로 봐주지 않더라도 : <어쩌다 발견한 하루>

SooJung Yoo
Nov 2 · 5 min read

<꽃보다 남자>부터 시작해서 <그놈은 멋있었다>와 같은 청춘 학원 ‘판타지물’(안다, 전부 판타지인 것 정도는..)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이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라는 대사가 나오는 배경이라기에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보기 시작했다. 1화를 보다가 생각했던 내용만이 아닌 것 같아 이게 뭐지 싶은 마음에 공식 홈페이지와 인물 설정을 뒤져보았다.

왜인지 꼭 양손 멀쩡한 상대들에게 밴드를 ‘굳이’ 붙여주곤 한다. 양호 선생님들은 어디에… 근무시간 아니냐고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되길 꿈꾼다. 하지만 그런 인생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잡지 표지 모델을 했다는 우리 학교 캠퍼스 여신을 보며, 면접관 앞에서 유창한 피칭을 하는 옆자리 응시생을 보며, 경쟁자를 물리치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사람을 보며,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은 시시때때로 밀려온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는 작은 부품이 아닐까? 여기, 평범한 열여덞 소녀 은단오가 있다.
그리고 그런 단오보다도 더 보잘 것 없는 소년이 있다.

스포일러 없이 짧게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여주인공 ‘은단오’는 어느날 갑자기 본인이 어떤 만화 세계 속의 조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자신의 캐릭터적 설정과 인간 관계,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결국 그 세계의 주인공들인 ‘여주다’와 ‘오남주’의 사랑 이야기를 위해 곁들여지는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각성한 은단오는 조연보다도 못한 엑스트라인 반의 13번을 만나게 되어 ‘하루’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작가가 설정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바꾸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보고자 시도를 하게 된다.

우선 이 드라마를 생각보다 더 재미있게 보기 시작한 요인은, 은단오와 친구들이 속한 세계관이 바로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청춘 학원 로맨스 판타지물’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는데 이 은단오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설정값을 바꾸고자 하는 부분들이 이 ‘클리셰’적인 상황을 조금씩 비틀거나 바라보는 입장에 서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계관 주인공인 ‘오남주’가 ‘여주다’와 부딪혀서 옷이 더럽혀지는 첫 만남이 이루어 질 때, 이를 빌미로 “앞으로 내 세탁비 갚을 동안 따라다니며 심부름 해”라고 전형적인 뻘 대사를 날릴 때, 은단오는 혀를 내두르며 그 광경을 옆에서 바라본다. 때론 독자/시청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어쩜 이렇게 공식을 벗어나지 않냐’며 발을 구르기도 한다.

생일 파티에서 학교 친구들을 앞에 두고 ‘내게 여자는 이 사람 뿐이다’ 같은 대사를 뱉는다. 평생 흑역사가 따로 없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기대했던 것 보다 더 괜찮다고 느낀 점은 바로 은단오의 아둥바둥에 우리네의 모습(혹은, 적어도 나 자신)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겁날 것 없고, 세상만사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스팟라잇이 비춰지는 중심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만 서있는 것 같고 내가 그리던 삶의 모습이 나 아닌 누군가를 통해 이뤄지는 것을 나 자신은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선남선녀의 사랑 이야기도, 직장에서 멋드러진 업무 처리와 고평가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세계 곳곳을 탐험하는 여행도, 단짝같은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는 것도, 모두 나는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옆에서 듣고 있는 조연, 혹은 그보다 못한 엑스트라인 삶을 사는게 아닐까 하는 의문과 우울감이 삶에 대한 기대감보다 커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주인공 ‘은단오’는 계속 부딪힌다. 작가가 부여한 설정값과 인생을 바꿔보겠다며, 매 스토리의 순간마다 세계관의 주인공들 위주가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우리의 삶도 이런 투쟁과 실패의과정을 통해 하나하나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싶다. 삶속의 항상 모든 시도들이 성공할리는 없다. 하지만 성공하지 않았다고 하여 나의 이야기가 쓰이지 않는게 아니다. 유난히도 슬픈 이별을 했어도, 시험에서 떨어졌어도, 회사 프로젝트가 엎어져도 그거 자체가 나의 존재의 이유를 지울 수는 없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있는 나 자신이 바로 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이다. 비단 행복과 성공만이 이야기로 쓰이지 않듯, 다양한 형태의 슬픔과 좌절도 나의 이야기가 되고 여기서의 감정들과 진행 과정들은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 되기 충분하다.

극중에서 정재계를 아우르는 집안의 자제들이면 뭐하나, PPL 앞에선 홍루이젠 쌓아두고 파티를 즐겨야만 하는데…

이제는 기억도 까마득한 실존주의 문학 수업을 더듬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부조리한 삶속에 던져진게 맞으며 이 부조리함에 반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생을 살아가는 것이라 기억한다. 한창 허무함에 빠졌던 20대 초반에 가장 와닿는 이야기였다. 허무함을 이겨내는 방법이 바로 살아가는 그 자체라는 것이 역설적이면서도 납득하기 쉬웠던 것 같다. 아직 <어쩌다 발견한 하루> 드라마는 방영 중에 있다. 주인공 ‘은단오’와 ‘하루’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과연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는 존재들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드라마를 보며 알 수 있는건, 그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시도하는 모습들 자체가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작 웹툰도 있다고 하지만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모쪼록 마지막까지 담백하게 마무리되기를 기원하며 이번 주말에도 밀린 내용 복습해보고자 한다.

Soo&Su

일단 뭐라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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