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편지할게요. 아사이볼 하나 사주세요.

유료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세상을 여행하는 도전에 대해서

Stibee
스티비 블로그
7 min readDec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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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할 수 있을까? 누가 돈 내고 구독하기는 할까?’, ‘내가 감히 돈을 받고 편지를 보낼만한 사람이 되나?’,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시간을 내서 읽어주기만 해도 고마운 일 아닌가?’, ‘세상에 유익한 뉴스레터가 얼마나 많은데! 그치? 아 역시 아니야!’

유료 뉴스레터를 운영해 보고 싶은 마음만큼 도전하면 안 될 것 같은 이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안 하기로 혼자서 마음을 먹은 날. 그날 신기하게도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받았다.

‘수진님 뉴스레터 언제 모집하나요? 기다리고 있어요.’

아뿔싸! 여행 뉴스레터를 하고 싶다고 떠든 기억이 난다. 스티비에서 유료 구독 기능이 생긴다길래 별생각 없이 할 거라고 떠들고 다닌 거다. 그때 구독하겠다고 응원해 준 친구가 여행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내가 준비하는 기미가 없자 일대일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진짜 문제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안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쪽팔릴까 봐 못하는 거였구나…! 실컷 준비했는데 아무도 구독 안 할까 봐!

유료 뉴스레터는 약속이다. 한 명이 구독하든 100명이 구독하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같다. 약속한 만큼의 글을 쓰는 것, 내가 쓴 글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보내는 것.

한 명이면 어떤가? 구독을 원하는 사람이 한 명뿐이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몇 명이 구독하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읽어줄 한 사람이 있다는 게 어딘가? 한 명의 구독자만 있다고 해도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일단 마음을 먹고 나자 안 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아무도 구독 안 할까 봐 내가 쫄아있었던 거다. 딱 한 명, 구독하겠다는 친구만 생각하고 질러보기로 했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선, 뉴스레터 구독자를, 그것도 유료로 모집한다는 건, 매일 글을 쓰는 걸 강제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건 여러모로 내게 좋은 프로젝트가 될 거다.

또 글이라는 방식도 좋았다. 여태 인스타와 유튜브로 이야기를 전했었는데 인스타는 왠지 잘 나온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유튜브는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다. 실시간으로 가볍게 여행 이야기를 담아내기에는 글이 제격.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내 마음에 일어났던 생각이나 실수를 모두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신기하게도, 하겠다고 마음먹자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역시 시작이 반이다. 출근 때마다 즐겨 들었던 김창완 아저씨의 아침창도 생각이 났다. 아저씨가 20년째 아침마다 직접 쓴다는 아침창 인사를 들으면 삭막한 서울에 나 혼자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성. 이미 발간된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낸다는 점을 포인트로 잡고 싶었다. 멕시코에서 하와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서울의 친구들이 오피스에서 출근하면서 읽는다면, 그로 인해 다른 세상을 잠깐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이름을 <굿수진 라디오>라고 정했다. 내가 보내는 편지를 매일의 라디오처럼 들을 수 있도록. 아무리 넷플릭스가 있어도 여전히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것도 돈을 내고!”

빠르게 준비를 해서 인스타그램에 첫 번째 안내를 올렸다. 잠깐. 한 명 두 명 세 명 어라 열 명? 올리자마자 구독자가 생겼다. 아니. 스무 명? 계속 올라가네. 모집이 끝나기까지 꽤 많은 구독자가 생겼다. 친구들이, 나를 몰랐던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것도 돈을 내고! 어마어마한 응원이 느껴졌다. 내가 나를 의심하지 않으면, 자기 의심만 넘어서면 더 멀리 갈 수 있다.

<굿수진 라디오 from 멕시코> 편 안내 이미지

참고로 <굿수진 라디오>의 구독료는 아사이볼 하나 가격이다.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나의 ‘소울 컨츄리’ 하와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빈티지 아일랜드 커피숍의 오리지날 아사이볼을 하나 사주는 셈. 그럼 한 달 동안 편지를 받을 수 있다. 여기 아사이볼은 하나에 $12이랍니다.

첫 번째 편지를 쓰던 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멕시코시티의 로마 노르떼 노천 카페에 앉아 아사이볼을 주문하고 <굿수진 라디오>의 첫 번째 편지를 썼다. 그 시간의 햇살, 내 주변에 펼쳐진 풍경, 거리 악사가 연주하던 노랫소리까지 모두 불러올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장소니까.

“나는 멕시코시티의 로마 노르떼 노천 카페에 앉아 아사이볼을 주문하고 <굿수진 라디오>의 첫 번째 편지를 썼다.”

“유료 뉴스레터를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해보라고 등을 떠밀 거다.”

멕시코를 한 달 여행하는 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만들어 진행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유료 뉴스레터가 가장 손이 많이 갔다. 가장 시간과 품이 많이 든 프로젝트랄까. 한 달 동안 스무 통의 편지를 보내는 거니까 매일 한두 시간씩 혼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써야 했다. 실컷 여행하며 놀다가 글쓰기 모드로 돌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근데 돌아보니 가장 뿌듯한 프로젝트로 남았다.

내가 생각하는 유료 뉴스레터를 발행하면 좋은 점을 몇 가지 정리해 보자면,

1. 구독료. 말해 뭐해.. 좋아하는 아사이볼로 구독료를 책정한 덕분에 아사이볼 만큼은 아낌없이 먹을 수 있었다. 여행자일 때는 왠지 아껴 써야 할 것 같은 마음이 항상 한켠에 있다. (경비가 떨어지면 한국행이다.) 유료 뉴스레터를 시도한 덕분에 좋아하는 것 앞에서 마음이 넓어졌달까? 매일 아침 아사이볼을 주문하면서 이렇게 마음속으로 덧붙인다. 이건 내 친구들이 사주는 거예요!

2. 물론, 여행 경비를 고려하며 ‘유료 뉴스레터’를 시작했고 구독료가 여행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유료 뉴스레터를 진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다른 점이다. 내가 편지를 보내자 친구들이 놀랍게도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 딩동. 내 편지함으로도 편지가 들어왔다. 정말 기대도 안 했는데..! 친구들이 보내는 답장은 정말 따뜻했다. 서울에서의 하루를 알려주는 친구, 자기가 좋아했던 여행지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까지. 지구 반 바퀴 떨어진 곳에서 어느 때보다 친구들과 따뜻한 끈으로 연결된 느낌이 났다.

3. 스무 개의 편지를 쓰는 동안 스무 날의 선명한 기억이 쌓였고 스무 개의 글이 남았다. 겁먹고 뉴스레터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큼의 글을 단연코 쓰지 않았을 거다. 이전에도 뉴스레터를 잠깐 운영한 적이 있다. 근데 오래 지속은 못 했다. 안 해도 뭐라도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근데 이번은 달랐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통화인 돈이 걸린 문제였다. 그만큼의 몫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찐하게 솟구쳤다. 그렇게 나는 스무 통의 편지를 모두 써서 보낼 수 있었다.

4. 꾸준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구독자 친구들과 더 찐한 사이가 됐다. 구독자와 뉴스레터 발행인이 아닌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들어주길 원하는 친구 같은 사이랄까?

5. 스티비로 유료뉴스레터를 해서 특히 좋았던 점은 내가 일일이 결제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입금자 명과 구독자 명을 정렬해놓고 확인하는 일은 들었을 땐 간단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여행 중에 사소한 문제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굉장한 플러스. 그리고 여러 템플릿이 있어서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유료 뉴스레터를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해보라고 등을 떠밀 거다. 한 명의 구독자가 필요하다면 내가 그 구독자가 되어주겠다고,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꼭 시작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자신감을 얻은 나는 두 번째 유료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세계여행을 하며 뉴스레터를 쓰고, 구독료로 여행경비를 충당하는 걸 목표로 삼고서.. 혼자 떠나는 여행이지만 외로울 걱정이 하나도 없다. 친구들이 답장을 보내올 걸 알고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스티비에게도 마할로. 유료 구독 서비스를 만든 덕분에 돈을 벌며 여행하는 도전을 일단 질러볼 수 있었다.

글. 굿수진(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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