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만난 사람

반짝이는 검정색 시스루 드레스와 작은 커피숍


횡단보도에 녹색 불이 켜진다. 건너편에서 날 기다는 얼굴이 보인다. 얼굴과 눈은 이미 퉁퉁부어 보기 안쓰러울 정도지만 반짝이는 검은색 시스루 드레스에 꽤 공을 들여 만진 짧은 숏커트를 하고 멍하게 날 바라본다. 이런 모습은 그동안 만나며 한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천천히 걸어간다. 알고 있다. 날 얼마나 좋아해줬는지 그리고 얼마나 내가 미안해야 하는지.


내가 쓴 글에서 진심을 보았다며 메일을 보내 온 사람을 만나는게 쉽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연락 했고, 우리는 이태원 모처의 유명한 음식점에서 말 한마디 없이 서로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어깨를 덮는 긴 머리와 발그레한 볼, 자연스러운 입술선과 작은 가슴을 가진 그녀는 밥을 먹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야근에 조금 늦어진다고 말은 했지만 뛰어서 도착한 그녀와 나는 배가 고프기도 했고 고작 몇 번의 메일만으로는 어색함이 풀리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자마자 우리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기대한 그리고 걱정한 우리는 백지에 조금씩 이야기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미적지근한 맥주를 앞에 놓고 너무 취해버렸다. 밤 공기에 그리고 맥주에 취해버린 이후 로는 서로 생각이 나지 않는것으로 합의 했다. 그 날 밤은 후덥지근한 여름의 공기와 깍지 낀 손 사이로 올라오는 열기, 이태원의 소음밖에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시작했다.


너무 바빠보인다는 말을 걱정으로 들은 내 잘못이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전화해 줄 수 없냐는 투정을 걱정으로 들어버린 내 잘못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 잘 해보려 노력이라는 단어로 그 사람을 기다리게 만든 내 잘못이다. 잘못이 점점 늘어간다. 불현듯 새벽에 그 사람이 보고 싶어 찾아가 잊지 못할 밤거리를 걷고, 웃고, 이야기 하고 난 어느샌가 그녀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척 잠을 들어버린 내 잘못이다. 쪼개고 쪼갠 스케줄 사이에서 경복궁 담벼락 근처에 자리 잡은 잘 보이지 않는 벤치에서 깊은 키스 한 번으로 그 사람의 화가 다 풀려 버렸다고 생각한 내 잘못이다. 잘못이 점점 늘어간다.


길고 긴 메일을 받았다. 내 잘못의 크기를 그때라도 짐작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난 그저 일거리에 그 메일을 묻어버렸다. 늦게 퇴근 하는 길에 전화가 왔다. 나는 그 전화도 나의 피곤함 사이에 묻어버렸다. 평소같지 않은 짧은 문자에 당황했다. 늘 해왔던 말이었지만 느낌이 달랐다.


우리는 삼청동 모처의 클래식이 나오는 작은 커피숍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람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울기 시작했다. 뿌리치는 손을 내 큰 손바닥 안에 담고 미안하다고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드문드문 지어주는 웃음이 얼마나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지를 거듭 말했다. 울어서 부은 얼굴만큼 내가 얼마나 잘못 한 것인지 얘기했다. 하염없이 듣더니 이따금 울음 섞인 웃음을 지어주는 그 사람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한 없이 작아졌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고 작은 소곡을 연달아 조용히 들었다. 그날따라 그 커피숍에는 사람이 없었다. 울고, 웃고, 이제는 서로의 얼굴을 말 없이 바라보는 연인이 신기하기도 했을텐데 무덤덤한 주인의 얼굴은 우리가 주문을 할때부터 바뀌지 않았다.

또 다시 소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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