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상반기 설리번 프로젝트를 회고하며 (상)

설리번 프로젝트의 미션과 목표를 다시 생각하다

Sigrid Jin
설리번 프로젝트
12 min readAug 22, 2020

--

이 글은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편 바로가기

코로나19 시대의 설리번 프로젝트. Flutter로 앱 만들기 교육이 종강한 날 사진이다.

들어가며

올해 상반기에 진행한 가장 큰 일 중 하나는 설리번 프로젝트의 상반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2019년까지 설리번 프로젝트는 IT 고등학교 학생들이 또래 청소년 및 소외계층에게 코딩교육 봉사를 진행하는 인기있는 학교 연합동아리였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설리번 프로젝트의 미션과 목표를 다시 설정하고, 프로그램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었다.

설리번 프로젝트는 나에게 큰 의미를 갖는 활동이다. 2015년 설리번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교육 활동을 시작했을 때 본인이 첫 학생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본인이 처음으로 개발을 접했던 순간이기도 했고, 설리번 프로젝트의 첫 학생이기도 하니 우리가 서로에게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 블록체인 업계에서 종사할 때, 스터디 모임에서 과거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오랜 대화 끝에 설리번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합류하게 되었다.

지난 1편에서 언급했듯이, 기술교육 분야에서 나의 철학을 담은 프로그램을 설계해보고 싶었고 그 대상이 설리번 프로젝트로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말을 활용하여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설리번 프로젝트와 함께했다. 이번 글에서는 설리번 프로젝트의 2020년 상반기 프로그램을 설계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상) 편에서는 설리번 프로젝트의 철학과 미션을 고민한 이야기, (하) 편에서는 상반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하반기를 준비한 이야기를 공유하겠다.

설리번 프로젝트의 문제를 진단하다

감사하게도 7월 초 SEF 2020에서 설리번 프로젝트의 철학과 가치에 대해 발표할 수 있었다. 발표 링크: https://www.edwith.org/sef2020-2

설리번 프로젝트에 처음 합류했을 때 고민했던 사항은, “왜 설리번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변을 내리는 것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발견해야 한다. 2019년 설리번 프로젝트가 겪고 있는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하나는 교육 임팩트를 만드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설리번 프로젝트가 2015년 처음 교육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제 막 코딩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려고 하던 참이었다. 사회 전반에서 코딩교육이 중요하다는 의식이 생겨났지만, 교육현장에서는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가르치고 학습해야 하는 지에 대해 경험이 부족했다. IT를 미리 전공한 고등학생들이 또래를 상대로 직접 교육활동을 펼친다는 메시지가 신선하고 선명했다. 또한, 교육에 있어 뚜렷한 철학과 의지를 갖고 있는 설립자들이 직접 고등학생 신분으로서 활동을 주도했다는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2019년 설리번 프로젝트의 상황은 많이 달랐다. 다양한 연령대 및 직업군을 대상으로 코딩교육을 제공하는 시장 플레이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학입시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고등학생 특성 상, 교육 설계 및 기획 경험이 최소화되고 일회성 교육이 남발했다. 설리번 활동의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고, 기존에 활동하던 사람들이 번아웃을 호소했다. 교육에 대해 고민하기 보다는, 봉사활동 시간을 발급하고 공문을 발송하며 대관을 도와주는 것이 주 업무가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서 개학이 연기되었다. 모두가 의욕과 동기를 잃고 지쳤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일단 해보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우리는 고등학교 연합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는 현재의 시스템은 입시 스펙을 목표로 한 졸속 활동이 수능 이후에야 진행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설리번 선생님으로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을 대학생 및 현직자로 확대하고, 단기간에 압축적으로 활동을 진행하여 빠르게 교육을 만들어 시장에 검증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재설계하자고 마음을 맞췄다.

하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여 전국 고등학교의 개학이 미루어지고 학사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설리번 프로젝트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는 이찬희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상반기에 프로그램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일단 3월에 상반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올해 준비한 사항은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그냥 고등학교를 포기하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선생님 대상을 확대하자.

일단 홍보부터 해서 사람을 모으자. 과거 우리의 선생님 대상이었던 IT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는 홍보하지 말자.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는 현직자, 대학생 친구들에게 홍보하자. 설리번 프로젝트는 지난 5년 동안 IT 고등학교의 인기 활동이었기에 IT 업계에서는 상당한 인지도가 있었지만, 업계 밖에서는 사실상 무명이었다. 홍보글과 홍보 이미지를 만들어 대학교 커뮤니티, 개발자 커뮤니티에 업로드했다. 작고 가볍게 시작하자고 했거늘, 2주가 지나니 100명이 몰렸다. 준비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큰 일 났다.

누구나 삶 속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는 경험을 선사하자

상반기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나는 지난 1년 동안 고민했던 설리번 프로젝트의 미션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설리번 프로젝트는 지난 5년 동안 고등학생들이 교육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자신의 바쁜 삶 속에서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이후에 시간을 내서 팀을 짜고 우리만의 교육을 만들었다. 교육을 준비해서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설리번 선생님으로 활동했다. 학습자는 교육 테마에 따라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었다. 무작정 따라하기만 해도 나만의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설리번 선생님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자로서 살아보는 첫 번째 경험을 주는 것이다. 기술 업계의 독성 말투 문제, 고칩시다! 라는 유명한 글을 보며 답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많은 개발자들이 동료 개발자 및 비개발자와 소통하고 협업하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던지는 글이다. 엔지니어들은 하드 스킬(기술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상당하며, 많은 시간을 들여 기술적 역량을 끌어올리고자 한다. 하지만 소프트 스킬(사회적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와 해당 역량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가 현저하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우아한형제들에서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자바지기님은 개발자에게 교육자로 사는 경험이 왜 중요한가에 대해 발표하신 적이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면서 인간이 대체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개발자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모델 GPT-2가 리액트 앱을 자동으로 만들어내고, 와이어프레임만 그리면 디자인 툴이 자동으로 코딩을 해 주는 시대에 엔지니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른 개발자와 협업하면서 좋은 동료로서 함께 자라기를 실천할 수 있는 인간적 역량, 팀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리더십 역량이 필요하다. 일반 사용자용 소프트웨어를 제작한다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도메인(분야)의 특징을 이해해서 섬세한 차이를 소프트웨어 구현에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도 필요하다. 결국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떠한 방식으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의 문제다.

자바지기님은 위의 발표에서 개발자가 교육자로 살아보는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삶 속에서 꾸준히 교육자로 활동하다보면, 앞서 언급한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갑자기 교육자로 활동해야지라고 마음 먹는다면, 이것은 커리어 전환이 되고 너무 큰 결단을 요구한다. 대신 그는, 삶 속에서 꾸준하게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자처하면서 작은 성공(small success)를 반복하자고 주장한다. 인간적인 성취를 얻고 소프트 스킬 역량을 반복적으로 얻으면서 협업하기 좋은 엔지니어로서 성장할 수 있다.

설리번 프로젝트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면, 그 동안 만나보기 어려웠던 비기술 분야 종사자 및 비기술자와 소통해야 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일단 교육대상과 교육주제를 선정해야 한다. 해당 교육대상을 리서치하고, 대상의 특징을 발견하여 교육 제작에 적용해야 한다. 저소득층 청소년을 교육하고자 한다면, 해당 청소년들이 어떠한 어려움 또는 특장점이 있는 지 파악해야 한다.

교육주제 선정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주제를 선정해야 우리가 정해놓은 대상들이 큰 어려움 없이 학습할 수 있을까? 교육을 만들기 위해 팀을 꾸리고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 교육을 나가서 기술 초심자들이 직접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수업을 하면서, 질의응답을 받아주면서 어떻게 해야 눈높이를 낮춰서 쉽게 설명할 수 있을 지 고민한다. 하나의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치려고 노력하다보면 소통과 협업의 역량을 자연스럽게 기르게 된다.

설리번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약 300명 이상의 고등학생 선생님을 배출했다. 설리번을 통해 자신의 삶 속에서 꾸준히 교육자로 활동했던 개발자들이 각자 업계에서 명망있는 개발자로 성장했다. 이를 보았을 때 학생 시절부터 교육자로서 활동하는 경험이 개발자에게 주어진다면, 해당 개발자는 소프트 스킬 역량을 극대화하여 훌륭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봄 직 하다고 생각했다. 자바지기님의 주장대로 교육자로서 활동하는 경험이 중요할 지, 더 많은 사람들을 선생님으로 초빙해서 가설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나만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선사하자

설리번 프로젝트는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자는 철학을 갖고 있다. 설리번 교육의 특징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중심의 학습지도 방식을 설리번 선생님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했다. 오빠 RC카 뽑았다, 우주최강 나만의 웹달력 등 결과물이 나오는 하나의 테마를 선정하고 해당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코드를 따라 쳐보고 필요한 개념을 후행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지식을 공부하므로 살아있는 지식이 되며, 학습동기가 극대화된다. 단순히 지식 위주로 가르치지 않고, 초심 학습자의 눈높이와 상황을 고려하여 학습 자료를 제작하도록 선생님을 도와준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설리번 교육은 현실적으로 미리 상정한 결과물을 따라 만들어보는 수준에 그쳤다. 선생님이 미리 설정한 결과물을 수업을 수강하면서 하나씩 완성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형태의 교육이지만, 우리는 교육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근본적으로 돌아가 왜 코딩교육을 해야 하는 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잡아먹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코딩을 할 필요는 없다. 코딩을 전혀 모르고도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노코드’ 도구가 많아질 것이다. 이미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고 있는 오피스 프로그램도 노코드툴 아닌가. 인공지능과 같은 고급 기술이 고도화된다고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쉬운 UX/UI 디자인으로 편리하게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이 인기를 끌 것이다. 굳이 코딩이라는 기술을 꼭 배울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코딩교육을 통해서 수강생에게 어떠한 학습경험을 선사하고 싶은가. 코딩이라는 기술을 이용해서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나의 프로덕트’ 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내가 직접 문제의식을 느껴서 하나의 작은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설리번 교육을 통해 학습한 기술의 얼개를 활용해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 기획부터 사용자 조사, 유저 테스트, 코딩/개발/디자인, 시장 출시와 홍보까지 하나의 프로젝트를 돌아볼 수 있다.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싸이클(cycle)을 통해, 수강생은 기술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 기술을 그 자체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로서 바라보도록 돕는 것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요’ 라고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단순히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요’ 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로 너무 모호하고 무엇을 만들고 싶은 지 모를 수 있다. 때로는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 주위 일상의 불편함을 해결해요’ 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일상의 불편함 또는 작은 문제 하나를 설정하고, 이를 개선하거나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두도록 한다. 구체적인 문제가 있으니 내가 만드는 서비스의 테스트 사용자를 단 한 명이라도 둘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진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경험을 줄 수 있다. 기술교육에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인 것이다.

일단 달려보자, 정해진 것은 없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철학이 세워지자, 나 자신에게도 설리번 프로젝트가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일단 정해진 것은 없지만, 스타트업처럼 일단 시행착오를 겪어보며 개선하자. 상반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설리번 프로젝트가 내세우는 철학과 미션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으자. 지속가능한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같이 설계해보자.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무작정 홍보를 했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원자를 선발하고 나니 어느덧 4월 중순이 되어 있었고, 오리엔테이션을 할 시간이 되었다.

글은 하편에서 계속된다.

--

--

설리번 프로젝트
설리번 프로젝트

Published in 설리번 프로젝트

기술과 배움을 통해 일상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Sigrid Jin
Sigrid Jin

Written by Sigrid Jin

Software Engineer at Sionic AI / Machine Learning Engineer, Kubernetes. twitter.com/@sigridjin_e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