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그 후 3개월간의 여정.

김진구
teammint
Published in
6 min readJul 17, 2024

“굳이 실패로 끝난 삼국지 제갈량의 출사표라는 표현을 빌려서 안좋은 기운이 스며들진 않을까?” 서비스 런칭을 앞두고 소회를 적는 글을 남기면서 사실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정확히 3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간의 여정을 남겨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뉘앙스를 풍긴것처럼 마냥 행복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KPI 설정

제가 서비스 출시를 한 뒤, 처음으로 매달린 작업은 명확한 KPI를 설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작년부터 서비스 업데이트를 지속해오며 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이번 만큼은 명확히 성공과 실패라는 판가름을 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왔던 고객의 반응을 살펴보며 명확한 시그널을 줬던 공통점들을 뽑아내고 다양한 B2B 서비스들의 PMF Fit Check 사례를 참고하여 “이정도면 시장 반응이 분명히 있다” 라는 KPI 지표를 세웠습니다.

이를 회사와 또 한번 Align 하기 위해 대표님과 팀원 전원이 참석하여 최종 KPI 지표를 수립했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세웠던 KPI Matrix는 조건값들이 조금 복잡한 편이었는데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모으다 보니 엄청 심플한 “유료 고객 수 N명, 기한은 X까지” 라는 목표가 설정되었습니다.

다시금 고개를 치켜든 “전동칫솔론”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KPI 달성률은 생각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냉담한 고객들의 반응이 쏟아졌고 심지어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서비스에 호응이 높았던 몇몇 고객사들 조차 온보딩 과정에서 ReFit 서비스를 후순위로 미루기 일쑤였습니다.

사실 이번 피팅룸 기능을 내기 전에도 많이 겪었던 일이었는데, 우리 스스로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전동 칫솔을 만든 것 같다.” 라는 평을 했었습니다. 전동칫솔 있으면 쓸 것 같고, 일반 칫솔보다 좋은 것 같긴 하지만 정작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고 일상에서도 생각만큼 자주 보이진 않잖아요? 마치 ReFit이 마케터의 업무에 미치는 영향이 칫솔계의 전동칫솔인것 같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그상황은 또다시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복리로 돌아온 기술부채

우리는 서비스를 최대한 많은 분들이 직접 사용해보고 유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전폭적인 무료 사용을 지원했는데 그 과정에서 애써 무시하며 넘겨왔던 기술부채의 악영향이 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의 핵심 기능인 피팅룸에 진입하기 전, 소홀히 했던 데이터 연동 부분의 UX에서 많은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많은 전조 증상이 있었음에도 으레 경험이 좀 있는 마케터라면 다를거야 하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데이터 연동 과정에서 대부분의 유저들은 오류를 경험했습니다. 핵심 기능에 도달하기도 전, 첫인상을 잔뜩 구긴 고객들은 너무나도 쉽게 서비스를 이탈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예상한 범위를 벗어나는 마케팅 데이터를 보유한 고객의 출현이었습니다. Slack에서도 소수의 헤비 유저가 미치는 서비스 부하가 다수의 라이트 유저보다 훨씬 심하다고 밝혔었는데, 우리는 헤비 유저에 대한 고려와 대처가 미흡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기능 개편을 위해 스스로 테스트 진행 중이었던 부분이 인프라 과부하의 요인으로 작동하여 외부 고객에게 서비스를 시연하던 중 오류가 나며 대차게 데모를 말아먹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처럼 부정적인 단서들만 계속해서 쏟아졌습니다.

반례의 불합리함에 대하여

수학에서 어떤 명제에 대해서 참인 것을 밝히기 위한 “증명”은 모든 경우에 대해서 해야 하지만 반례는 그 명제를 거짓이라고 밝히는 단 하나의 경우만 존재해도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스타트업이나 서비스 생태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부분인데 왜 이 서비스를 계속해야 하는지 “증명”해야 하는 일은 험난하지만, 왜 서비스가 안될지에 대해 “반례”를 드는 것은 너무나도 쉽습니다.

출시 이후 ReFit이 받아내야 했던 부정적인 상황들은 마치 반례처럼 너무나도 쉽게 “ReFit이 이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명제를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ReFit의 가치를 사람들은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는 제 믿음은 과연 혜안일까요? 아니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일까요? 아니면 제가 무조건 맞을거라는 아집일까요?

한명을 만족시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배민다움에서 제 뇌리에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문장은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나”, 그리고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면 한명을 만족시킬 수 없지만 한명을 만족시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입니다. 첫번째 문장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지금은 “한명을 만족시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에 집중하겠습니다.

KPI 지표가 느리게 성장하던 어느 날, 에러를 겪고 있던 고객 한분과 채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경험에 또 한명의 고객이 떠나갈 것 같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대뜸 “제가 써본 데이터 툴 중에 최고입니다” 라는 찬사를 시작으로 굉장히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찬사를 준 고객분은 결국 ReFit을 복수 프로젝트에 도입하면서 bulk 계약을 진행하였습니다. 배민다움에서 강조하던 “만족하는 찐 고객 한명”을 찾는 순간이었습니다. ReFit “팬”을 만난 이후,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더니 유료 고객이 확대되며 KPI 지표가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KPI 지표는 주황색 불

그렇다고 목표한 KPI 지표를 단숨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성공과 실패, 파란불과 빨간불 그 사이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Retool의 CEO도 이런 말을 했더라구요.

“처음 100명 고객을 받을때까지도 항상 이번 고객이 마지막 고객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 말을 지금 정확하게 1258% 공감하고 있습니다. 설령 이번 KPI를 성공적으로 달성한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성장 속도를 봤을 때 과연 Scalable한 시장을 건드리는 것인지 고민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다음 미래를 고민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느 한명에게라도 뜨거운 인상을 안겨준, 이제 연탄재는 발로 차도 되는 자격을 가진 ReFit인 셈이니까요^^

소수의 사람에게만 따스함을 가져주는 연탄으로 끝날지. 아니면 만인의 낮을 책임지는 마케팅 계의 태양이 될지. ReFit의 끝을 보는 그날까지 우리 팀원들 모두 몸 불살라 열심히 뛰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고 성과 데이터를 올바르게 확인하고 의사결정 할 수 있도록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코드 없이 구성하는 서비스, ReFit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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