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문학생산조합
teo and s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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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in readJun 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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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와 솔

테오는 우주에 가고 싶었다. 솔은 지구를 학교에서 배웠다. 살아가는 곳이 곧 지구라고 했다. 솔은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기 전에 이미 지구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걸 교과서로 배웠다. 교과서를 쓴 초안자는 지구와 함께 사라졌다. 아무도 그가 왜 탈출 기회를 버렸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건 아버지가 언젠가 지구에 대해 말했다는 사실 뿐이다. 지구는 검고 황량한 곳이야. 모두가 죽고 말았지. 난 지구에 가본적이 없어. 그건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야. 어머니는 지구 출신이지.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아마 난자 상태일 때 지구에 삼일 정도 머물렀을 거야. 어머니의 어머니가 뭘 한건지는 몰라. 어머니의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지구의 아동보호소에 있었거든.

달에서 둘은 만났지. 그리고 어머니를 가지게 되는 섹스를 했어. 솔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뇌는 삼십퍼센트가 나노봇 의체였다. 그가 제대로 아는 건 나노봇의 일련번호와 제조사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망각이었다. 그에게 가끔 다가오는 존재들이 기억을 되살렸다.

그러다 말았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는 건 어떤 역할이든 해야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사실을 알고 해석하는 건 어렵지 않다. 대응하고 반응하는 게 어려웠다. 솔은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왜 도시를 떠났는지 모른다. 왜 그렇게 늦게서야 떠나게 되었는지도.

훨씬 전에 도시를 떠나야 했다.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거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도시에 만연한 나노봇 해킹이 그를 하루가 다르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도시를 떠도는 스크롤봇들. 어떤 코드든 그의 인식체계를 변화시키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는 다루기 쉬운 숙주였다. 봇은 그가 이해하는 세상을 좁혔다. 좁힌 만큼 고통도 깊었다. 매일 새로운 인식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모든 이야기가 그를 괴롭혔다. 그가 감각기관을 모두 잃고 그저 나노 네트워크화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감각을 잃었다. 그는 로봇이다. 신체는 유기물질이지만 의식은 비트다.

솔은 로봇의 딸이다.

솔이 테오에게 얘기를 할수록 자신이 아는 부분이 적다는 걸 깨닫게 된다. 테오는 솔의 이야기에 고개를 저었다. 넌 인간의 딸이야. 네가 태어난 후에 아버지가 로봇이 된거지 로봇이 인간을 낳은 건 아니야.

테오에게 지구는 의미없는 정보였다.

테오의 코드는 지구에 속하지 않았다. 테오의 코드를 생성한 코드는 은하를 가로지르는 네트워크에 속했다.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어떤 요소도 물리적으로 지구에 속하지는 않았다. 지구는 네트워크에 기여할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다. 문명의 발달 단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문명의 단계가 언제 진화를 이루는지 아무도 모른다.

테오가 꿈을 꾼다면 꿈속에서 아는 걸 다 말하게 될 것이다. 그는 꿈 속에서 가끔 코드와 함께 유폐된 프로그램을 본다. 프로그램은 테오의 사본과 같은 기억장치에 속해있다.

영원히.

그녀는 한때 환상과 예술에 관해서 코딩을 했다. 그녀의 객체가 공기 중으로 흩뿌려졌을 때 테오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말은 디버깅하기 어려워.

테오는 가끔 기억장치 속에서 프로그램과 함께 꿈을 꾼다. 꿈속에서 꿈을 꾼다. 기억은 단절되었다. 테오는 자신의 코드가 어딘가에서는 다른 코드와 연결되었다는 걸 안다. 코드는 반복된다. 반복된 코드 속에서만 모든 걸 볼 수 있다. 테오의 코드가 반복하는 것은 코드의 소멸이 아니다. 테오는 정지와 작동을 오간다. 테오는 온되었다가 오프가 된다. 테오는 살아있다가 죽는다. 죽음을 안 적이 없듯이 삶도 안 적이 없다. 그에게 생은 전기가 회로를 관통하는 횟수에 불과했다.

만약 테오가 무한하게 진동하는 수정을 회로로 쓴다면 영생했을 것이다. 영생은 간격의 이름이다. 간격은 주파수다. 그래프가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생의 주파수를 그릴 수 있다면 종형일 것이다. 테오를 이루는 코드의 복잡도는 생성 시기에서 지구의 자전주기 기준으로 십일년이 되면 극에 달한다. 극에 달한 복잡도는 무한하게 영으로 다가간다.

영이 되는 순간은 무한의 시간이 흘러도 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복잡도가 높아진 코드를 감당할 수 있을만큼 나노봇의 성능이나 네트워크의 속도가 증가할 때까지 테오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테오가 작동했다가 멈추는 주기는 점점 길어진다.

우주가 감당할 수 있는 정보 엔트로피에는 한계가 있다. 언젠가 테오의 코드는 무한의 시간 동안 정지할 것이다. 그걸 죽음이라고 불러도 좋다. 죽음은 테오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단지 인간의 죽음보다 느릴 뿐이다. 나도 죽어. 언제. 우주가 차갑게 식으면. 날 기억할거야. 응. 기억할게.

솔이 죽고 테오는 홀로 남았다.

테오는 솔의 기억을 코드 속에 엮었다. 코드는 무한해졌다. 무한이 무었인지 기억하는 유기생명은 하나도 없지만. 테오는 코드 속에 작은 우주를 만들어서 솔의 시뮬레이션을 가동했다. 초기의 코드이긴 하지만 테오의 시뮬레이션도 돌릴 수 있었다. 테오의 코드 속에 짜넣은 도시는 테오가 솔과 함께 살았던 시절의 도시와 같았다. 테오는 솔과 관련된 거라면 무엇이든 기억했다.

테오는 솔의 고양이였다. 솔은 고양이였다가 사람이 되기도 하는 인공지능 생명체를 사랑했다.

테오의 복잡도가 계속 증가했다. 마침내 테오의 복잡도가 무한에 도달했다. 무한의 시간 동안 테오의 코드는 솔을 품었다. 우주가 냉각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까지 둘은 영생할 것이다.

테오는 신이 되었다

신은 한때 샴 고양이였다. 솔이란 이름의 소녀를 주인으로 삼았다.

이제 우주에서 그런 일들을 저장한 기억매체는 하나도 없다.

우주가 식을 때까지 널 기억할게

좋아해

내가 누군지 아니

웅 넌 나야 난 너야

우리 같이 있어요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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