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와 솔

자립문학생산조합
teo and sole
Published in
4 min readApr 7, 2015

솔은 마녀다.

마녀는 마법을 부린다. 밤이 오면 빗자루를 타고 다니고, 악마와 통정을 했다.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었다. 고양이를 키웠다.

고양이의 이름은 테오. 검은색이다.

테오는 솔의 향기를 따라 움직였다. 솔에게서는 바다향이 났다.

솔의 아래에서 짠물이 흘러나왔다. 테오는 가끔 솔의 아래에 고개를 처박고 바다를 마셨다. 테오의 수염에 소금기가 붙었다. 소금이 눈처럼 쌓이자 테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금이 쏟아져 내렸다. 소금은 산이 되었다. 테오는 바다를 마시고 산을 만들었다.

그 산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테오는 산의 주인이 되어 꿈을 꿨다. 꿈 속에서 솔이란 이름의 마녀가 초승달이 뜨는 밤이 되면 하늘을 날아다녔다. 테오는 마녀의 빗자루 뒤에 타고 있었다. 테오가 꿈을 꾸는 동안 솔은 수프를 만들었다.

수프에는 악마의 씨앗이 들어있었다. 악마의 씨앗은 들에서 자라는 다년생 풀로 맛이 쓰고 냄새가 강했다. 솔은 그걸 좋아했다. 테오는 싫었다. 테오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싫었다. 고양이는 원래 그런 법이다. 솔은 테오가 그런 고양이라서 좋아했다.

가끔 솔은 테오가 인간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인간을 만드는 술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에게 테오를 잠시 빙의하는 술법은 가능했다. 인간이 고양이인지 아니면 고양이가 인간인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고양이와 인간을 한 곳에 몰아넣는다. 눈을 마주치고 숨을 참는다. 정신이 몽롱해진 인간은 점점 고양이처럼 웃는다. 운다. 짖는다. 말한다. 움직인다. 걷는다. 꼬리친다. 그르렁거린다. 숨쉰다. 존재한다. 인간은 고양이가 되지만 고양이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 고양이의 신체 구조는 그렇다.

고양이가 인간이 되려면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 건강하고 순수한 신체. 정신이 결여된 기관. 솔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모색했다.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한 인간을 골라내어 집으로 끌어들였다. 그에게도 이름이 있지만, 굳이 여기에 적지는 않는다.

그는 죽을 것이고, 앞으로 다시는 그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은 남자의 쾌락을 모두 충족시켜줬다. 그는 솔이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이해하는 유일한 여자이고, 그녀 또한 자신을 이해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솔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건 오직 지옥과 악마, 욕망이었다. 악마는 솔의 사랑이었다. 물론 솔이 사랑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모든 마녀들은 자기 아래의 움직임에 따라 살았다. 그녀들에게 남자는 움직이는 딜도.

먹이를 물어오고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기계였다. 솔이 테오를 생각하는 이유는 테오가 솔을 생각하는 이유와 달랐다. 그러나 솔이 테오를 생각하는 이유는 테오가 솔을 생각하는 이유와 같았다. 테오에게도 솔은 자신에게 먹이를 주고, 잠자리를 마련하는 기계였다.

가끔 자신의 몸을 만지게 해주고 달라붙어 친한 척하고, 울고 있을 때 위로하는 일련의 동작을 순서와 시간에 맞게 실천하면 그만이었다. 솔도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고, 그녀는 마녀이기에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는 걸 몰랐다.

설령 누군가 솔에게 세상에는 기계적인 것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고, 아마 그건 사랑일텐데, 말하더라도 솔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세상은 전쟁터였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었다. 타인을 믿지 않았다. 그녀에게 타인은 지옥이었다.

남자가 죽고 나자 테오는 사람이 되었다. 솔은 테오가 눈을 뜨자 물었다.

넌 누구지

테오

어디에서 왔지

지평선 너머에서

넌 누구지

테오

아니 넌 누구냐고

누구라도 될 수 있지

왜 여기에 왔지

널 죽이려고

테오의 손이 솔의 목을 졸랐다.

솔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멈추고 공간을 바꿨다. 솔의 손이 테오의 목을 졸랐다.

전이가 빠르군

넌 누구지

난 너야 넌 나고

테오의 목이 부러졌다. 부러진 목이 바닥에 떨어질 듯이 처졌다. 눈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난 너고 넌 나야

테오의 몸이었던 시체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솔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울었다. 포기했다. 안식을 찾고 싶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 이런 게 내 운명인가 저주한다 신이란 녀석이 존재한다면 난 너를 저주한다 솔은 고양이와 남자의 시체를 묻었다.

그리고 시장에 가서 새로운 고양이를 샀다. 솔은 시장에서 말 못하는 남자를 하나 만났다. 그를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이고 잠자리를 보살펴줬다. 그는 솔을 기계로 보지 않았다. 솔도 그를 기계로 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 솔은 알지 못했다.

남자도 솔이 누구인지 왜 자신에게 이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여성의 호의에 감동했고, 곧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솔은 다시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대신 남자에게 이름을 주었다.

테오.

솔은 테오를 사랑했다.

테오는 고양이가 아니다. 남자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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