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nam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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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in readJan 24, 2021

2021년 새해를 맞이하여 경찰 조직의 변화가 일어났다. 경찰 창설 이후 76년간 이어져오던 국가 경찰 단일 체제가 국가 경찰, 자치 경찰, 수사 경찰의 세 분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1차 수사 종결권을 얻은 경찰 권력을 분산시켜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국가 경찰은 보안/외사/경비 업무를 맡으며, 자치 경찰은 생활/교통/경비 업무와 아동/여성 관련 범죄 등 일부 수사, 수사 경찰은 수사를 전담한다. 그 중 국가 경찰은 이전과 동일하게 경찰청장의 지휘 하에 운영되지만, 자치 경찰과 수사 경찰은 각각 ‘시도자치경찰위원회’와 ‘국가수사본부’라는 새 지휘 체계를 따르게 되어 보다 독립적인 기관으로 거듭났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경찰 조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물리적 사무공간 분리는 최소한도로 이루어질 전망이라, 같은 장소에서 다른 지휘 체계를 따르는 이른바 ‘한 지붕 세 가족’의 형태가 될 것이며, 따라서 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권력기관 분산의 효과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현재 경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을 얻은 상황에서 3년 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까지 넘겨받을 예정인데, 행정적·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거대한 경찰 조직은 자칫 권력의 비대화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각 분야별 적합한 시설 확보가 행정 절차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정부의 방안은 세 분야 간의 물리적인 분리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어 단순히 시기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각 경찰 조직에 적합한 사무공간을 새로이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경찰’이 갖는 의미, 그리고 이를 담는 ‘시설’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의 경찰공무원법은 경찰을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수사, 교통/소방 등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행정작용’이라 정의하며, 경찰(警察)이라는 명칭은 각각 警(경계할 경)과 察(살필 찰), 즉 ‘경계하고 살핀다’는 뜻으로 경찰의 본질적인 행위와 맞닿아 있다. 또한 ‘Police’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oliteia’에서 유래하였으며, 고대부터 중세까지 국가, 국가활동, 이상적인 상태 등 다의적인 용어로 쓰였다. 이후 근대적인 국가 개념이 정립됨에 따라 그 영역이 조금씩 축소되어 오늘날 국가의 치안과 복리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경찰의 물리적 사무공간인 경찰관서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과 전국적으로 시·도경찰청 18개, 경찰서 256개, 지구대 585개, 파출소 1,437개, 부속기관 5개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관서 편제에서 알 수 있듯이, 경찰청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 뿌리내리며 퍼져있는 경찰관서들은 종류별로 업무과 구성원 등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 중 ‘경찰서’는 경찰과 국민이 모두 이용하는 시설로서, 시·도경찰청에 소속되어 관할 지구대·파출소에서 발생한 사건이 이관되므로 실제적인 경찰수사·치안행정 업무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설이다. 또한 도시 성장과 시민 증감에 반응하고, 다변화하는 사회의 속도를 반영하기 위한 조직변화가 있어왔으나 그 물리적인 유연성에 한계가 있는 시설이기도 하다.

건축가 루이스 칸은 ‘평면이란 방들의 사회(The plan is a society of the room)’라고 말한다. 모더니즘 시대의 끝에서 건축에 대한 인간의 본질을 물은 그는 건축의 사회적인 관계, ‘시설(institution)’에 주목하였다. 한 개인이 살아가는 공간이 방이라면 그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의 ‘염원(desire)’이 담긴 것이 바로 시설이라는 것이다. 칸은 왜 시설에 대해 말한 것일까? 그것은 근대 이후의 굳어버린 건축의 문제를 묻고,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건축, 좋은 건축으로 되돌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의 초월론적 사고는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사회는 국가로 발전하고 국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구성원, 국민을 보호하고자 하는 염원은 경찰이 나타난 배경이 되어 준다. 그러나 사회가 원하는 경찰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이들을 담는 시설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경찰서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세분화된 각 부서에 대한 표준설계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현재 경찰서 청사시설기준은 정부청사관리규정 및 부분적으로 경찰 기능 별 업무시설기준에 의거하여 적용되고 있으나, 법무시설기준에 비해 산하 관서에 대한 설계상의 세부 조건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경찰서는 거주자인 경찰관과 방문자인 민원인, 그리고 임시적으로 거주하는 유치인 등 다양한 성격의 사용자가 있으며, 그 안에서 민원 상담, 수사 업무, 유치 관리, 기타 집회 및 여가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공존하는 시설이다. 이들끼리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배치 관계와 동선, 사용자의 특성, 그 외에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일종의 표준설계 공간모형으로 정립한다면 더 좋은 시설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가/자치/수사의 세 분야 경찰 체제가 점차 자리잡으면 표준설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한 지붕 세 가족’의 형태가 아닌 각각에 적합한 공간을 확보한 새로운 모습의 경찰서가 되리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112 종합 상황실의 모습 / 경찰청

건축가 김승회·강원필의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는 1995년 보건복지부의 공공보건의료기관 표준설계 공모전에 당선되어 보건소 설계에 대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수립했고, 지방의 다양한 보건소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보건소’라는 공공시설의 진일보에 기여했다. 이 보건소 연작의 주된 핵심은 ‘기존 공공시설의 새로운 비전’, 그리고 ‘지역성에 대한 창조적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본질에 입각하여 얻은 새로움은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경찰서라는 시설의 변화가 필요한 현실에 이 두 가지 목표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경찰서가 더 좋은 시설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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