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관한 계독

Jongho Daniel Park
The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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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min readJan 28, 2021

군복무에 차차 적응해가던 작년 하반기부터 계독을 시도하고 있다. 계독은 특정 분야의 책들을 두루 섭렵하며 준전문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독서법인데, 이번 상반기에는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앞으로 십수 년간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초지능’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평생의 숙명과도 같은 주제 ‘도시’이다. 도시, 인프라, 경제, 재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책들을 읽어가고 있다:

발레리 줄레조 지음, <아파트 공화국>, 2007

에드워드 글레이저 지음, <도시의 승리>, 2011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지음,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2016

야마자키 미츠히로 지음, <포틀랜드, 내 삶을 바꾸는 도시혁명>, 2017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로컬의 미래>, 2018

김정후 지음,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2020

양동신 지음, <아파트가 어때서>, 2020

데이비드 심 지음, <소프트 시티>, 2020

한 책에 진득하게 집중하는 것보다 이책 저책 옮겨다니는 것을 좋아하기에 아직 전체에서 얼만큼을 읽었는지는 가늠할 수는 없었다. 여덟 권 중 두 권을 다 읽었고, 네 권을 진행중이기에 반쯤은 온 것 같다. 이 글은 앞으로 매주 작성하게 될 서평들의 서두 정도가 되는 글로, 중간점검의 의미로 써내려가는 짧은 생각들이다.

책들마다 주장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고 어떤 책의 경우에는 다른 책과 전제부터 다른 부분들이 발견되며 ‘도시’라는 주제는 굉장히 광범위하기에 다각도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찬찬히 곱씹어보며 내 생각을 다시금 정리할 기회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한자 한자 읽어내려갔다.

처음으로 완독한 책은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펴낸 한국 주거 양상에 대한 적나라한 레포트, <아파트 공화국>이었고, 곧이어 마치 이 저서를 겨냥한 듯한 양동신 작가의 <아파트가 어때서>를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발레리 줄레조의 주장을 정면으로 되받아치는 내용이 있었다. 물론 필자가 줄레조의 논지를 정확히 꿰뚫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도시인프라에 관해 사뭇 다른 의견을 보인 두 책을 읽으며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 느꼈다. 물리적 외형을 어느 정도 보존하고, ‘개발’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판이하게 다른 생각을 읽으며 이가 정치 및 경제 일반론의 가장 큰 이슈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도시의 ‘지속가능성’은 결과물의 지속이 아닌, 도시가 창발하는 과정의 지속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에, 양동신 작가의 의견이 보다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물론 줄레조가 지적한 정치와의 유착을 통한 비정상적이고도 기형적인 아파트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곧이어 읽기 시작한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의 <도시의 승리>에서는 심지어 ‘성장’이 ‘지속가능성’의 유일한 방법인마냥 설명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도시는 특정 조직의 구성원들을 담고 연결하는 그릇인데, 자본주의 환경에서 폭발적으로 번영한 도시들은 당연히 자본주의적 특성을 띌 수밖에 없지 않나. 논리적으로, 수치적으로 명확하게 떨어지는 내용들이어서 신뢰가 갔지만, 모든 이유가 딱딱 들어맞는 것을 보며 기본 전제가 정말 최선의 방법인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로컬의 미래>를 통해 <도시의 승리>의 ‘성장’을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대체하려고 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그렇다고 쉽사리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코멘트도 아니었다. 앞서 글레이저 교수와 달리 전제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신선하게는 느껴졌으나, 한편으로는 거부감도 들었다. 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어쩌다보니 ‘인프라’와 ‘경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계독을 시작했고, 오늘은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와 <포틀랜드, 내 삶을 바꾸는 도시혁명>으로 ‘재생’이라는 소주제도 건드려보기 시작했다. 갈 길이 멀지만, 이제는 조금씩 기록을 하며 가보려고 한다. 여덟 권의 책들과 관련 문헌들이 내게 어떤 인사이트를 던져줄지 기대된다.

사족일 수도 있겠으나, 오늘 몇년 전 기사를 본 김에 도시에 대한 단상을 덧붙인다. 3년 전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나) 도시에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포개진 도시의 조직이 무차별적 개발에 의해 쓸려내려가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고, 사라지기 전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포착하고자 노력했다. 재개발이 확정된 지역에서 철거 이전까지 1년간 작은 스튜디오를 마련해 살아보기도 했고, 도시재생에 관련된 활동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연결하고 잊혀질 기억을 담아보고자 출판도 해보았다.

2018년 서울대학교 스타트업캠퍼스 녹두.zip에서 진행했던 도시재생 및 창업생태계구축 관련 기사. 대학신문.

오랜만에 이런 책들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인프라’와 ‘재생’, ‘로컬’에 관한 내 생각의 방향타가 그동안 많이 옮겨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땐 마냥 다 스쳐가는 것이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주워담고 싶었는데. 지금은 경제논리에 따라 도시를 해석하는 것에 마음이 기운다. 물론 공부를 더 많이 한 훗날 균형추는 다시금 중앙으로 돌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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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 Danie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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