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투자, 기계를 위한 투자

Donghyun Cho
The ARCHive
Published in
4 min readJan 16, 2021

현대 사회에서 인간과 기계의 만남은 불가피하다. 지금의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기계는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미래의 인간은 계속해서 기계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기계는 점점 인간의 손길이 필요로 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완전 자율주행자동차가 등장 하게 된다면 물류 산업과 교통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우리가 상상하는 많은 곳에서 활발하게 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일할 자리가 줄어들 것이다. 선택된 사람들 이를테면 자본의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대로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공동체에 힘을 보태지 못하여, 기계로 부터의 혜택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눈에는 보이지 않는 테두리가 생기고 그 테두리가 점점 진해지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사람들의 투자는 개개인의 삶의 질 보다는 공동체, 집단, 더 크게는 도시의 발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도시의 발전이 개인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겠지만, 집단이 발전할 수록 동시에 문명과 기술의 수혜로부터 멀어지는 인구도 증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계로 부터 혜택을 받는 사람들과 받지 못하거나 받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다. 이때의 건축가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이 테두리의 굵기를 진하게 하는 것에 동참하지 않아야 한다.

기계가 지금보다 4배, 5배 더 활발히, 자발적으로 일하는 시기가 찾아오면 건축은 수많은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프로그램의 차원에서 기계의 보관과 수리가 이루어지는 공간,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기계가 접근할 수 있는 통로 등이 있다. 이렇듯 사람이 기계를 더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다르게 생각하면 기계가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들에 집중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건축은 인간의 행위와 심리에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영화 ‘트렌센던스’ 장면

영화 ‘트렌센던스’에는 외부로부터의 전파가 완벽히 차단되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으로는 그 어떤 전파도 들어오지 않아서 사실상 가상 공간으로부터 고립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상 공간으로 가득찬 시대에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 지리산의 마을에 살고 계신 친할머니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하셨다. 하루에 사진 하나씩은 꾸준히 올리고 계신다. 그곳이 아무리 문명과 먼 곳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전파가 닿지 못하는 곳은 없다. 전파, 기계로 둘러 쌓인 세상에 살다보면 위에서 이야기한 영화의 주인공과 같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명상의 공간도 필요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Zoom 달별 하루 최대 회의 수

생산 하는 행위,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행위 등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모든 것을 점차 기계가 대신 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소통은 대면일수도, 비대면 일수도 있다. 코로나19는 비대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제로 알려주고 있다. 2020년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은 2019년 과 비교하여 하루 최대 회의 수가 20배 이상 늘었다. 데이터의 중복을 고려하여도 다른 사람과 만나서 대화 해야하는 상황이 대략 1/10로 줄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면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시너지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모니터를 통해서는 발표하는 사람의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알 수 없고, 듣는 사람의 집중도도 파악할 수 없다.

팬데믹 시기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모든 회의들이 다시 대면으로 교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과 학교 등에서 비대면 회의의 장점을 파악하고, 그대로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건축은 비대면과 대면 소통에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비대면을 부추기는 건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의 만남에 적극 찬성하는 건축을 하되, 비대면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는 인간을 위한 건축을 해야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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