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자본론을 읽고

Yoonseo Kim
The ARCHive
Published in
6 min readJan 16, 2021

지적자본론은 CCC의 최고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쓴 글이다. CCC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의 약자로, 일본의 TSUTAYA(츠타야)라는 매장을 운영하는 곳이다.

서점은 무엇일까?

당연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닐까?

마스다 무네아키는 다른 답을 내놓는다. 고객들이 라이프스타일을 개선하기 위해 찾는다고 보았다. 책을 구매하는 경험을 더 확대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고객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매장으로 올라가 눈에 띄는 코너부터 천천히 둘러본다. 손에서 집어 든 책을 의자에 앉아서 읽고, 마음에 든 책 몇 권을 구매하고 매장을 나온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좋은 인상을 주려면 매대에 많은 책을 쌓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주차장, 주변 환경, 의자와 책상, 기획 코너, 기획 담당 직원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필자는 책 볼 일이 있으면 반디앤루니스나 교보문고를 방문한다. 서점을 가면 무슨 책과 만나게 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찾게 된다. 하지만 서점에는 의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겨울철에 서점을 방문하면 더워서 패딩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책까지 들려면 번거로워서 서점을 안 가게 된다. 매장 내 몇 개 없는 책상에는 그 공간을 선점한 사람의 짐만 놓여 있을 때도 있다. 사람들은 그나마 한적한 아동 서적 코너나 계단에서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본다. 불편하게 만들어서 책을 빨리 팔려는 서점의 설계 방식이다.

내가 겪은 위의 대형 서점들은 효율적인 서점이다. 효율적으로 책을 팔아먹기 위해 지은 곳이다. 서점은 많은 유동 인구를 끌어들여 책만 고르고 빨리 나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된 서점도 있다. 그들은 앉아서 책을 읽을 곳을 없애야 한다. 집에 가서 읽으라는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카페에서 커피를 사 책을 읽을 수는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해결책이 아니다.

곳곳에 있는 도서 검색대는 편리하다. 하지만 나는 우연히 만나게 된 책과의 만남도 누리고 싶다. 베스트셀러 코너, 스테디셀러 코너와 다른 특별한 코너가 필요하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잡지의 특별 기획 코너를 언급한다. 그 코너 100개를 서점에 마련하면, 사람들은 서점에 있는 시간이 더 즐거워질 것이다. 만약 선선한 야외 공간, 널찍한 실내 공간, 의자와 책상이 제공되었다면 서점의 재방문율은 훨씬 올라갈 것이다. 위의 공간은 책이 놓이지 않은 곳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효율이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다. 서점을 가기 위해 숲속 산책로를 지나야 한다면, 시간이 더 걸리므로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는 경험은 행복할 수 있다.

<<책 잘 읽는 방법>> 에서 김봉진은 지적자본론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 책에서는 디자인이 ‘기획’이라는 개념으로까지 확장해요.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죠. 츠타야가 책을 파는 서점에서 어떻게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 되었는지, 마스다 무네아키의 철학이 잘 담겨 있어요.”

마스다 무네아키는 디자인을 덤으로 보는 인식을 비판한다. 과거에는 디자인이 부가가치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디자인이 본질적인 가치로 바뀌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다케오 시장의 제안으로 다케오 시립 도서관 설계에도 관여했다. 다케오 시장은 츠타야 매장의 노하우를 도서관에 녹이고 싶었다. 둘의 만남으로 인구 5만 명에 불과했던 다케오에 매년 백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어떻게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일까.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에 대해 간단하게 답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관여한 서점은 다양한 고객의 책 취향을 반영한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사서보다 다케오 시민의 기분을 고려한다. 그는 이를 ‘고객 가치’라고 표현한다. 그는 고객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직접 매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매장을 다녀왔더니 주차한 차량이 뜨거워진 것을 보고, 그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또, 역에서 매장까지 걸으며 주변 환경을 살피기도 한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연중무휴,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시민에게 열린 도서관으로 운영된다. 20만 권의 장서를 직접 꺼내 볼 수 있는 개가식으로 개방했다. 기존에는 사서가 대신 꺼내주는 폐가식으로 장서를 대출해줬는데, CCC는 웅장한 ‘책의 숲’을 시민이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가식을 선택했다. 분류 방법 또한 ‘일본 십진분류법’이 아닌, 요리나 여행 등 생활 속 언어를 사용하여 정성스럽게 장르별로 나눴다. 심지어 도서관에는 스타벅스와 츠타야서점까지 입점해 있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

이 책이 <<지적자본론>>이라는 제목을 붙은 이유는 뭘까? 먼저 ‘자본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자본론의 기초가 되는 것은 유물 사관이다. 사회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이루어진 ‘하부 구조’와, 그 위에 구축된 이데올로기 등의 ‘상부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에 앞서 존재하기 때문에 상부 구조는 하부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 냉정하게 표현한다면, 아무리 고상한 사상이나 예술도 기본적으로는 경제라는 금전 세계의 형편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유물 사관의 구조에 적용해 생각하면 기획 회사는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에서 하부 구조로 규정되어 있지만,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여 고정화되기 쉬운 상부 구조에 변혁을 유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발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획이 상부 구조에 혁신을 일으킨다고 본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플랫폼을 개혁하는 것이다. 플랫폼의 개혁을 위해서는? 양보다는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고객 가치다. 재무자본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소중한 가치다. 서점은 서적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고객의 흥미와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되어야 한다.

CCC는 고객 가치를 매우 중요시한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직원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을 때, 거대해진 조직에 대해 고민을 한다. 규모가 거대해지면 지적자본을 고객가치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즉, 현장과 기업 사이의 괴리감이 발생하지 않을까? 다시 휴먼 스케일의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휴먼 스케일 회사에는 사원들이 병렬 관계에 놓인다. 그들은 동일한 위치에서 항상 고객을 생각한다. 거대해진 기업은 상하 관계에 놓여 보고서, 대차대조표에 시달리며 브랜드 파워라는 지적자본을 잊게 된다.

재밌게도, 비효율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비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회사는 비대해질수록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힘들어진다. 회사를 쪼개면 다시 고객과 마주할 수 있다. 동네에 있던 작은 카페에서 사장님이 주시는 서비스를 받을 때는 즐겁다. 동네 카페에서는 우연히 만난 다른 이웃과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거대해진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는 사장님 얼굴 보기도 힘들다. ebook과 오디오북의 수요는 점점 높아지지만, 여전히 종이책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손이 닿는 그 경험을 고려해보자. 비효율적으로, 엉뚱하게 생각할수록 좋은 것이 탄생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가끔은 상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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