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으로 두 번 살기: 내 삶의 새로운 전략

Jongho Danie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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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min readFeb 8, 2021

훈련소를 제하고 군에서 시간을 보낸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갑자기 붕 떠버린 시간 속에 지난 1년간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데, 요즘 들어 그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내 커리어에 대한 결단이 서고 있다. 저번 주에 했던 ‘꼭 스타트업을, 그것도 전반적인 운영을 맡을 수 있는 포지션을 가져보겠다’라는 결심에 이어 오늘도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 있다. 건축학도에서 공학도로 자리를 옮기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군대에 오기 전 3년 동안은 건축학도로 살면서 매 학기 설계를 하고, 방학 때까지도 건축물을 보러 국내 해외 가리지 않고 다녔다. 외부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도 죄다 건축에 맞춰서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밖으로는 설계를 하지는 않는 건축학도가 되겠다고 말하고 다녔고, 실제로도 설계라는 업이 나랑은 핏이 맞지 않음을 종종 느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들은 죄다 기업가이고,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을 꼽으라면 대부분이 철학이나 경영서를 떠올리는 내가 ‘미’의 영역을 다루는 설계와 쉽게 친해질리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건축이라는 학문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업’의 영역으로 가지고 왔을 때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아, 사실 그 순간은 이 글을 두 번째로 완독했던 작년 하반기 언젠가였다:

고민의 시작점

나는 꿈을 동사로 가지기를 좋아한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꿈은 ‘도시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시’는 어떻게, 왜 생기고, ‘행복하고 풍요로운 공간’이란 어떤 공간일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레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이런 고민을 하면서, 내가 그럼 직접 그런 도시를 설계할 수 있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략을 떠올렸다. 그렇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식의 전략이었다.

이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떠올리다, 일단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공간이니 나 혼자 이를 해결할 수는 없겠다는걸 알았다. 또한 이왕 도시를 풍요롭게 한다면 우리나라의 수도이자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서울을 목표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더해졌다. (이는 한국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현실과 맞물렸다고도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많이 만날 확률이 높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이유와 도시에 대해 접근하기는 일단 스케일이 너무 크니 건축부터 해보아야겠다 하는 이유가 합쳐져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입시 성공’이라는 일차적인 목표가 부여되었다.

일차적인 목표를 이루고 학교에 다니다 보니 내가 원래 생각하던 것과 맞지 않는 것들이 여럿 있었다. 첫째로 건축이라는 학문은 매력적이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똑똑했지만 업의 특성상 같이 협업이 쉽지는 않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기보다 개인의 성을 더 견고하게 쌓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계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이런 생각은 다른 친구들도 하고 있어서 InDepth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건축학과 이외의 사람들과 연결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 번째로 도시를 접근하는 방법은 건축을 접근하는 방법과는 아예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건축물이 모인 곳이 도시라는 생각으로 학업에 임했지만, 사실 그 둘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스케일의 오류’를 범한 것이었다. 나는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조금은 겉돌고 있었다. 도시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에는 건축 말고도 굉장히 많은 것이 있었고, 건축이라는 업은 그 안에 포진된 수많은 전문업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하게 되고 난 후, 내 미래 계획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원하는 것의 변화

기존의 전략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가끔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에너지가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가끔 들 때마다 답답하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미래 계획을 어떻게 수정할지 생각해보기에 앞서 앞선 결정을 내렸던 시기에 내가 원하던 것과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먼저 도시를 경험해보기를 원했다. 나는 도시를 너무 몰랐기에 내가 살았던 서울부터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고 수업도 째고 햇살을 한가득 받으며 도시를 누볐다. 그러다보니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나를 브랜드의 세계로 이끌었고, 도시를 브랜드의 차원에서 접근해보기를 원했다. 로컬 비즈니스가 멋져보여서 로컬에 관한 강연도 듣고, 관련 활동을 하면서 매거진도 만들어봤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것들을 원하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공들여 만든 것들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고, 생각보다도 내가 펼칠 수 있는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영향력이 커질 수 있는 기회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고, 크게 흥미롭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는 근본적으로 도시 조직의 기본을 이루는 ‘디테일’을 다루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통해 내가 근본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지금과 같은 방식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

해오던 일을 제외하고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일들은 도처에 다양하게 깔려 있었다. ‘도시를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면 보람을 느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그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디테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욕구의 변화는 나를 건축설계로부터 더 먼 곳으로 떼어 놓았다. 대신에 기업가정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게 되었다.

현실의 변화

기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동안 남일처럼 여겼던 세상일에 본격적으로 내 자신을 던진 이후로 굉장히 많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다. 학문간 융합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새것이 옛것을 대체했다.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아보면 그 자리에는 항상 ‘기술’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기술’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는데, 인류의 역사를 공부하고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면서 그 막연한 불편함이 해소되었다. 세상에는 기술을 만들어내는 사람, 기술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사람, 그리고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었고, 인류 역사 어느 단계에서도 기술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기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자본’과 합쳐지게 되었고, 세상의 대부분을 설계하는 역할은 얼마 되지 않는 기술기업들이 맡게 되었다. 이로써 내가 알고 있는 ‘설계’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전환되었다.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는 것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순간에마저 현실은 더더욱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었다. 그사이 원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가령 예를 들자면 현실세계를 가상세계와 더 매끄럽게 연결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영역을 넓혀 우주로 확장할 수 있는 것들이 가능해지고 있었다. 내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략의 변화

오랜 기간 돌보지 않았던 ‘원하는 것’과 ‘현실’은 많은 부분 바뀌었다. 이제 나는 여러 가지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고 싶게 되었고, 디테일보다는 패러다임 시프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내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넓어졌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기에 전략의 변화는 어찌 보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우선 내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큰 것부터 건드려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돈을 버는 방식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기존에는 공무원이나 너무 경직된 대기업 등을 제외하고는 취업을 하는 방식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이라는 목표도 100퍼센트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략들은 새로 짜여진 목표 풀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은 ‘기업가’가 되거나, 그 비슷한 것을 할 수 있는 무엇인가였다. 결국 나는 얼마 전 창업으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 다음 재고해보아야 하는 크기의 전략은 현재의 내가 속해 있는 네트워크였다. 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전공’이라는 네트워크에서 설계와 이론을 주로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바뀐 목표 풀에 따르면 나는 기술을 배워야 했고, 그 기술은 공학이라는 학문에서 배울 수 있는 무언가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새로운 과로 편입하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될 것이 분명하였고, 내 꿈은 여전히 수정되지 않았기에 가장 에너지가 적게 들면서 전략을 큰 부분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바로 ‘전공 재배정’이었다.

공학 전공에서 배우는 것 중에서도 특히 시공 분야가 눈에 들어왔다. 공학적 기술이 집약되고 경제적 논리와 만나 복합적인 프로덕트를 만드는 분야였다. 기존에 배우던 것과는 스타일이 매우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목표 풀과 정렬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다. 물론 학교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한정적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고하는 방식은 목표 풀의 방향대로 변할 것이 분명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까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새로운 전략을 향한 투지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당장 복학을 하게 되면 두 번째 3학년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이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받아들여졌다. 오히려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제 두 번째 3학년을 기다리게 되었다.

끝내며

물론 이 두 가지의 변화가 더 나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근 몇년간 나의 낡은 목표 풀이 하나의 모멘텀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수정된 전략에 의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모멘텀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도 나중에 돌아보면 낡은 결정이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낡았다는 것이 아니라, 결심이 낡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알고 바꿔나갈 수 있는 태도라는 사실이기에, 지금까지의 내 발자취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사실 이전에 만들어진 일련의 생각들과 나를 둘러싼 환경들은, 이번 기회에 근 1년간 생각했던 것들보다 훨씬 단기간에 조성된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느낌은 사실상 이전의 전략을 설정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확신하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 하나는, 다시 지금과 같은 시기로 돌아와도 이와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후회 없이 내가 택한 길을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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