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ve: Prologue

Jongho Daniel Park
The ARCHive
Published in
4 min readJan 15, 2021

‘거의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이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적어도 3차원을 살아가는 우리가 자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말이다. 10년 전 인류는 지금 인류가 아니고, 10년 전 인류가 살았던 공간은 지금 우리가 사는 공간이 아니다. 10년 후 우리도 지금의 우리와 다를 것이고, 공간 또한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가장 근본에 있는 명제로 두기에 마땅하다.

10년 전 인류와 지금의 인류는 과연 무엇이 다를까? 또 10년 후 인류에게는 어떠한 변화가 닥쳐올까? 이를 머릿속으로 그리는 과정에는 인류가 사는 공간의 변화에 대한 고찰이 수반된다. 인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동물이 아닌,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를 담는 그릇을 우리는 공간이라고 부른다. (사실 공간은 매우 모호한 표현이고 학자마다 이에 대한 정의가 매우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를 담는 그릇’으로 정의하겠다.)

지금까지 우리가 개척할 수 있는 공간에는 한계가 뚜렷하게 존재했다. 두 발을 딛고 서있는 땅만이 공간이었고, 그런 공간은 지구에서도 아주 일부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공간마저도 사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99%가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정복’하지는 못했다. (물론 지구가 생겨난 이래 99%가 넘는 시간 동안 인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인류의 특별한 무기인 ‘상상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그 공간은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도시를 발명하지 못했던 옛 고대 사람들은 신화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만들며 존재하지 않는 공간들을 파편적으로 생산했다. (우리는 사실 고대 사람들이 어떤 상상을 했는지 잘은 모르나, 벽화 등을 통해 상상의 공간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도시를 발명하게 된 후에는 신화적 상상이 종교 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실체를 드러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근현대 사람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활용하여 그 신화를 보다 많은 영역에서 정교하게 현실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고대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있었을 법한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직까지) 3차원 공간 속에 속박된 존재들이므로, 상상 속에만 있었던 것들을 물리적 공간으로 현실감 있게 구현하는 것은 굉장한 진보였다. 이러한 진보의 중심에는 기술이 있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지 혁명은 7만 년 전에, 농업 혁명은 1만 2천 년 전에, 과학 혁명은 불과 500년 전에 나타났다. 이렇듯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진보해오며 혁명간의 간격을 점점 좁혀 왔다. 18세기 후반 1차 산업 혁명이 시작된 이래, 20세기 초 2차 산업 혁명, 20세기 말~21세기 초 3차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3차 산업 혁명이 무르익기 무섭게 4차 산업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도 그와 같은 결로 해석할 수 있다.

Augmentation Revolution. By By Ajay Malik. NetManias.

기하급수적 진보의 결과로 우리는 지난 1~2세기 동안 전혀 새로운 발명품들을 만들어냈다. 공간도 완전히 새롭게 개발되었다. 길게 드리운 르네상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료와 모더니즘이 공간을 바꿨다. 새로운 것들이 발명되기 무섭게 더더욱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개인이 그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는 커녕 알아채기도 어려울 정도의 모멘텀이 만들어졌다.

계속된 발전은 인류를 기존의 지구 공간 밖으로 밀어냈다. 기술의 발달로 각자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신화적인 공간들은 가상이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여 거대한 연산 기계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동시에 지구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은 인류는 지구 밖으로 눈을 돌려 우주 공간으로의 확장을 원하고 있다. 영원히 상상 속에서에만 머무를 것처럼 느껴지던 것들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 공간과 가상 공간, 그리고 우주 공간. 성질이 다른 공간들이 한데 섞여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지금까지는 허구로 머물러 있던 것들이 현실의 영역, 신체의 사정권으로 들어왔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동안 목격할 수조차 없었던 광경을 목도하는 첫 세대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공간의 탄생이 기존 공간의 변이를 야기하고, 서로 다른 특질의 공간을 융합시키며 전혀 새로운 공간을 재생산할 것이다. 감을 잡을 수 조차 없는 미래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

The AI Revolution: The Road to Superintelligence. By Tim Urban. Wait But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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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 Danie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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