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와 대화

즐겁게 산다는 건 참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절실하게 얻고자 한다면, 반대로 무언가를 내어 주어야 한다는 명확한 진리를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간 시간이 길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나눈 수다와 대화는 사실 딱 수다와 대화다. 더 많은 의미와 진리와 철학을 나누기도 하겠지만, 한걸음을 먼저 디딛어야 그 다음 걸음을 이어갈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제서야 눈을 다시 뜨고 깨닫고 있는 중이다. 먼저 손을 내민다는 일이 ‘왜 내가?’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만나는 사람들, 아니 오랫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의 지금의 대화들이 즐거운 선택의 이유가 된다.

당연한거다. 길이 보이지 않고, 환경이 나쁘고, 사람들이 불편한 시간들을 현재 겪고 있다면, 모든 것들이 다 ‘나'에게 향하지 않음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한거다.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또 한편으로는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귀찮고, 불편하고, 싫어서 인연의 끈을 끊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들. 당연한거다. 나쁘고 창피한 일이 아니다.

이 당연한 모습들을 숨겨야 한다는 99가지 이유가 있다면, 숨기지 않고 말해야지 하는 딱 1가지의 이유만 더 만들면 된다. ‘아. 지친다.’ 숨기고 감추고 ‘척'하는 것도 한계가 올텐데, 99가지 이유를 계속 만들다가 ‘아. 좀 쉴까'하는 생각이 들면 그 때 시작하면 된다. 되더라. 수다와 대화 말이다.

그리고, 그 수다와 대화를 시작하면 아마 우리가 쪼개 놓았던 오해와 곡해와 불투명한 것들이 조각 피자를 하나의 원으로 맞추는 것 처럼 이어질 수 있을 가능성이 시작되는 것 뿐이다. 조각 맞추려고, 오해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대화는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오해를 만들어 버리더라.

그냥. 수다하자. (적고 보니 ‘푸딩하자…’와 같네.. 그 CF완전 싫어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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