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시각에서 보는 블록체인 (2) — 규제, 제도에 관한 시각

허진호 (Jin Ho 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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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in readSep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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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과 관련된 제도는, 블록체인 기술보다는 암호화폐의 성격, ICO의 성격, 두 가지가 주된 이슈가 된다.

여기에는 ‘암호화폐는 화폐인가’ 와 ‘암호화폐는 증권 (security)인가’의 두 가지 질문이 핵심이다.

암호화폐는 증권 (security) 인가?

암호화폐가 증권 (security) 인지 여부가 ICO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와 관련된 규제를 정의하기 때문에 현재 시장에서는 가장 주목 받는 이슈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투자자 역할을 할 미국 시장의 SEC 규정에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SEC가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SEC에서 증권이라고 규정하면 (1) ICO 과정이 IPO에 준하는 SEC 규정을 따라야 하며, (2) ICO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도 Accredited Investor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SEC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Ponzi 방식 등의 사기성 투자 기법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AngelList에서 ICO를 위하여 별도로 설립한 CoinList는 ICO 참가 자격을 Accredited Investor로 제한하고, 그 첫 번째 ICO인 FileCoin ICO도 Accredited Investors로 제한되었다.)

SEC에서 security 여부에 대한 판단은 Howey Test 기준을 적용한다.

Howey Test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ICO 토큰에 적용할때의 분석 및 판단은, 이 개요, 로펌에서 분석한 이 분석 자료이 설명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Howey Test에서 3가지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있지만 (Investment of money, Common enterprise, Expectation of profit solely from the efforts of others), 그 중에 토큰이 증권인가 여부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점은 ‘expectation of profit’ solely from the ‘effort of others’로서, (아주 단순화하자면) 토큰이 해당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도구로서 사용되는지 (Consumptive Use) 여부가 이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즉, 토큰이 해당 프로젝트의 실행에 (거래 수단으로든지, 실행 수단으로든지) ‘중요한 정도’로 사용되면 토큰이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예외없이 증권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여기에서, 토큰을 형식상으로 프로젝트 실행 수단으로 일부 이용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피해 나가려는 경우가 생길텐데, 이때는 SEC가 ‘중요한 정도’로 사용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주관적으로 판단할 것이며, 현실적으로 토큰의 ‘Consumptive Use’가 그 프로젝트의 실행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도구 (예: 모든 내부 거래의 결제 수단)가 아닌 경우, 통상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SEC의 성향상 해당 토큰을 증권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판단된다.

SEC는 아직까지는 ‘ICO 토큰이 일반적으로 증권인지' 여부에 대한 포괄적인 판단은 유보하고 있고, 단지 DAO 사건에 국한하여 판단을 한 결과 ‘DAO 토큰은 증권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SEC 보고서)

향후 SEC의 행보를 미리 예측하기는 여렵지만, 영미법 지역의 practice를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자면, ICO 토큰 전체에 대하여 증권인지 여부에 대하여서는 (시장에서의 scam, fraud가 ‘일정 수준’을 넘어 가지 않는 한) 앞으로 꽤 오랜 기간 입장 표명을 유보한채 시장의 진행 상황을 주목할 것이며, Ponzi 방식과 같이 사회적으로 ‘소비자 보호’에 큰 영향을 줄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이에 대하여 ‘징벌적 처벌’을 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규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기존에 암호 화폐를 증권이 아닌 자산으로 규정하여 가장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여 왔던 스위스싱가포르 정부도 SEC의 입장 표명 이후 토큰을 증권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하였고, (그래서, 지금까지 ICO의 많은 경우 법인을 싱가포르에, Foundation을 스위스에 설립하였다) 홍콩도 비슷한 입장을 발표하였고 앞으로 다른 나라들도 SEC와 비슷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일부 지역/국가에서는 이 기회에 ICO 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전향적인 규제 환경을 제공하려는 곳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캐나다 퀘벡 주도 토큰을 증권으로 간주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지만, 일부 ICO 토큰에 대하여 Regulatory Sandbox 하에서 진행을 허용하려는 전향적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고, Isle of Man (영국령 맨 섬)같은 작은 나라에서는 ICO 기업을 보다 많이 유치하기 위한 개방적인 제도를 적극 만들고 있기도 하다.

반면, 중국은 이미 ICO 전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모두 규제하겠다고 선언하였고, 한국 정부는 ICO를 금융업법상 유사 수신 행위로 보고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사실 ICO를 유사 수신 행위로 판단하는 근거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 하고 있다)

향후 2–3년간 이 이슈는 ICO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로서, 암호화폐/토큰 기반의 수 많은 새로운 프로젝트/비즈니스가 ICO 과정을 통하여 창출될 수 있을지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과거에는 기존의 VC 생태계를 통하여서만 가능하였던 새로운 스타트업/프로젝트/비즈니스의 창출 과정이, ICO라는 새로운 금융 기법을 통하여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grass root 방식의 펀딩이 가능해졌는데, 이 ICO 프로세스에 기존 SEC/IPO 관련 규정이 적용될 지 여부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Fat Protocol 원칙에 따라 향후에 필요한 관련 블록체인 인프라가 얼마나 원활하게, 잘 구축될 것인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기본 입장은:

(1) ICO 토큰을 증권으로 보고 기존의 소비자 보호 원칙을 ICO에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2) ICO는 기존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financing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존 체제하에서 가능하지 않았던 수 많은 새로운 혁신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이다.

(3) 튤립 버블, 닷컴 버블 등의 역사에서도 그랬듯이, ICO의 90% 이상은 최소한 버블, 좀 더 나아가면 scam, fraud에 해당하는 것들일 것이다. 하지만, 닷컴 버블 이후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살아 남은 10%, 아니 1%의 새로운 혁신이 창출해 낸 부, 그리고 그 것들이 경제에 기여하는 가치는 살아 남지 못한 90% 이상의 버블을 상쇄하고도 남을 규모가 되었고,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닷컴 버블기에 스타트업에 투자된 규모는, 피크였던 2000년 미국 기준으로 (통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600억 달러에서 800억 달러 규였다. 그 금액과 그 이후 살아 남은 1%의 닷컴 기업들의 지금 시장 가치와 비교해 보면, 당연히 투자되었던 것보다 훨씬 큰 가치가 창출되었다. (미국의 벤처 투자 규모는 통상 연간 300–400억 달러 규모를 유지하다가, 최근 2–3년 사이에 급증하여 600억 달러를 상회하면서, 통계에 따라서는 2000년의 닷컴 버블 피크보다 투자 규모가 늘었다고 보기도 한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ICO와 같은 새로운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면, 90% 이상의 버블을 상쇄하고도 남을 가치를 창출하는 1%의 혁신이 원천 봉쇄될 것이라고 본다.

(5) 이를 위하여, 기본적으로는 Negative System 규제 원칙하에서 움직이는 미국 SEC의 행보에 주목하면서, 그 기준을 따르는 것이 가장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본다.

SEC의 향후 행보를 예상해 보자면, (1) 증권으로 판단할 토큰에 대한 기준 (Howey Test)는 판례에 의하여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로 토큰을 증권으로 판단할 기준을 다시 명시하지는 않을 것이고, (2) 토큰은 (아주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증권으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시장은 ‘SEC가 토큰을 증권으로 볼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 기준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움직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FileCoin의 경우는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될 가능성도 꽤 높음에도 불구하고, CoinList에서 미국 기준에 맞추어 Accredited Investor들로 부터의 투자만 받은 것이 그 예이다.

한가지 중요한 이슈는, ICO 프로세스에 기존 IPO에 준하는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인데, SEC는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될 큰 사건 (예: Ponzi 사기)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IPO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지켜 볼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부분은, 퀘백주, Isle of Man과 같이 ICO에 호의적인 환경으로 많은 ICO 기업들이 옮기는 것에 대하여 SEC가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이다. 그럼에도, 가장 비중이 클 미국의 투자자들은 결국 SEC 등이 규정하는 미국 제도/법에 따를 수 밖에 없겠지만.

암호화폐는 화폐인가?

현재 단계에서는 이 질문이 업계에 대한 실질적인 큰 영향은 없지만, 장기적으로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환경/경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암호 화폐 자체의 성격 및 이의 안정성과 관련된 것이 훨씬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사실 ‘화폐 경제학’ 주제는 엔지니어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간단히 문제 제기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암호 화폐는 ‘본질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화폐라고 볼 수 없다고도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법정 화페 자체도 (우리가 무의식 중에 있다고 믿고 있는) ‘본질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화 1달러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일까? 단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1971년 미국에서 금태환 정지 선언 이후에는, 미국 중앙은행의 지불 보증조차 없다.

화폐의 역사를 보면, 모든 물건은 관련자 (stakeholders)들이 화폐라는 합의만 있으면 화폐가 된다. 원시 시대부터 조개 껍질, 흑요석, 소금, 짐승 가죽, 잘 깎은 돌멩이 등이 모두 교환 수단으로서의 화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구성원들이 그렇게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은행권’으로서의 화폐는 17세기 영란은행 (Bank of England)에서 저축 (deposit)에 대한 증거로서 발행한 증명서가 그 시초이며, 이 역시 영란은행의 지불 약속이 있을 뿐 화폐의 ‘본질적인 가치’라는 것은 없다.

그렇게 보면 같은 맥락에서, 원론적으로는 관련자들간에 같은 방식의 합의가 있기만 하면 암호화폐는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것이 가능할까?

암호화폐가 지금과 같은 변동성이 줄어 들고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법정 통화에 peg하는 방식, 기존 화폐의 금 태환과 같은 방식으로 특정 자산에 연동시키는 방식,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법정 통화에 peg하는 방식은, 그 암호 화폐의 시장 가치가 특정 화폐에 고정되기 때문에 투기 대상으로서의 효과가 없어짐으로써 변동성을 없앨 수 있다고 보지만, (반면 투기 효과가 없어서 초기 확산에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기존에 US$에 peg하였던 다른 화폐들이 경제 상황의 변동에 따라 평가 절상/절하 압력을 받게 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금융 위기에까지 이르는 상황이 이 암호 화폐에도 발생할텐데 그 결과 (화폐 경제학의 문외한으로서는) 해결책,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잘 판단이 되지 않는다.

금 태환과 같은 방식으로 특정 자산에 연동시키는 것은, 사회적인 합의 내지는 특정 단체/기업이 그 역할을 리드로 가능하다고 본다.

이 글에서는, 미국에서도 건국 후 100여년간 중앙 은행이 있다가 없다가 하면서 금융 위기를 겪은 후 20세기 초에 비로소 주요 은행가들의 합의에 의하여 지금의 FRB가 탄생하였듯이 구글, 아마존, 이베이, 알리바바 등의 주요 인터넷 기업들이 합의에 의하여 이런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좀 과감한 상상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러한 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특히 최근 중국의 행보를 보면, 위안화의 국제 기축 통화화 노력과 비교될 수 있는, 알리바바, 텐센트 등을 동원하여 인터넷 상에서의 기축 통화를 선제적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최근 중국 정부의 ICO 금지 조치는, 암호화폐 자체를 금지하기 보다는 암화화폐 생태계에 대한 중국 정부의 통제력을 더 강화하겠다는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둘 중에 어떤 방식이든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변동성이 통제 가능한, 그리고 누군가 (지불 보증과 최종 대부자로서의) ‘중앙 은행’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암호 화폐가 등장한다면, 지금까지와 같이 암호 화폐가 투기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중요한 ‘가치 교환 수단'으로서 향후 ‘분산화된 인프라’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인프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흠… 써 놓고 보니 약간 논리의 비약라는 느낌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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