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만든 협력의 가능성

Sujung An
Unusual Suspects Festival Seoul
12 min readDec 13, 2018

언서페 서울에 참여한 50명의 콜라보레이터 이야기

언유주얼서스펙트페스티벌(이하 ‘언서페’)은 서로 다른 영역과 분야의 사람들끼리 만나서 주제와 형식의 제약 없이 3일동안 서울 곳곳에서 열린 대화의 장이다. 이 글은 11월 1일 ~ 3일 본격적인 언서페 서울의 장이 열리기 전부터 부지런히 만나온 콜라보레이터들이 나눠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언서페에 참여한 50명의 콜라보레이터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언서페가 무엇인지를 나눠보려 한다.

우리가 마주한 시간들 : 콜라보레이터들의 만남이야기

“이 일은 조건이 없습니다. 해드리는 지원도 다른 사업들보다 많이 없고 그래서 자신들의 자율성으로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를 기획해야합니다.” — 선경

아직은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아침, 콜라보레이터 1차 워크숍에서 씨닷 선경의 오프닝이 시작되었습니다. (아, 콜라보레이터는 언서페에서 세션을 기획하고 운영한 개인, 조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반걸음 혹은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혼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논의하며 갈 수 있습니다. 내 조직의 내 팀 혹은 내가 만나는 그룹의 사람들 뿐 만 아니라 내가 만나보지 못한 조직이나 전혀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는 예기치 않은 협업의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아는 사람들, 우리 이야기를 알아듣는 사람들과만 만나고 있진 않나요? 잘 모르는 사람들과 굳이 만나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요?” — 선경

“과정에 대한 논의, 주제를 떠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의미, 질문을 나눠보고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아영

ⓒ 씨닷

선경과 아영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언서페는 콜라보레이터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들이 바로 언서페를 만드는 주인공입니다. 언서페에서 자신들의 질문, 필요를 선뜻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언서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주제나 이슈, 호스트가 있는 행사가 아니라 콜라보레이터들이 여는 각각의 세션들이 모여 풍성해지는 축제, 그것이 바로 언서페입니다.

본격적인 언서페의 장이 열리기 전, 콜라보레이터들은 부지런히 만났습니다. 8월에는 최근 개인의 관심사를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된 ‘아이디어 익스체인지 워크숍’을, 9월에는 콜라보레이터로 참여 의사를 밝힌 개인이나 조직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나누고 공유하는 ‘1차 워크숍’을, 10월에는 언서페 서울의 의미를 함께 찾고 나누는 ‘콜라보레이터 2차 워크숍’, 11월 언서페 오프닝으로 진행된 ‘언서페 브런치 대화’, 언서페 클로징 ‘다르면 다를수록’ 까지 콜라보레이터들간의 마주침은 언서페의 과정 곳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콜라보레이터들은 8월부터 11월까지 서로를 알아가며, 선뜻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션 구성을 고민하고 있는 동료에게 아이디어를 더하고, 모임의 공간이 필요하다면 공간을 내어주고, 재능이 필요하다면 재능을 나눠주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언서페에서 27개의 세션이 만들어지고, 진행되었습니다.

콜라보레이터가 나눠온 이야기

함께 이야기를 나눠요! ⓒ 씨닷

기꺼이 예기치 않은 만남을 자처한 50명의 콜라보레이터는 어떤 생각으로 언서페에 참여했고, 무엇을 느꼈을까요? 오늘은 언서페의 전 과정을 함께했던 콜라보레이터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9월의 콜라보레이터 1차 워크숍으로 돌아가봅니다. 조건이 없고 오롯이 참여자의 자발성으로 기획하는 행사를 함께 만들자는 제안에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한 콜라보레이터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요?

“제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저희끼리 잘해서 마무리해서 보고서를 꼽아두는 일이 아니라 공감을 얻고 의견을 들으면서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라 기회가 있을 때 접점을 찾아보고싶습니다 .” — 황세원(Lab2050)

“특정 이슈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열어보자고 하면 사실 좋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호스트로 섭외하게 됩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호스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대부분인데,언서페를 통해서 더 많은 체인지메이커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지 나눠보고 싶습니다.” — 권용직(루트임팩트)

9월의 만남에서 콜라보레이터들이 언서페의 장에서 나누고 싶은 질문, 주제 등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션을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가정하에 각 세션 구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했습니다.

콜라보레이터가 정의한 언서페의 키워드: 다양성, 협력, 만남, 대화

10월 콜라보레이터들의 두번째 만남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세션이 확정되었고, 앞선 모임 보다 더 많은 콜라보레이터들이 모였습니다. 세션 기획이라는 숙제 하나를 완료해서였는지, 분위기가 한결 가벼웠습니다.

첫 만남이 세션 구성을 위한 동료 간 협력의 과정이었다면, 두 번째 만남은 언서페 서울에 대한 의미를 함께 묻고 정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콜라보레이터 2차 워크숍 ⓒ 듣는연구소

“어떻게 사람-사람이 맺는 관계가 다양해지고 사람-자연이 맺는 관계도 다양할 것인가에 대한 세션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제게 다양성이란 단어는 야생성이라고도 느껴지거든요.” — 김민주(울프하우스)

언서페 서울의 주요 키워드로 콜라보레이터들이 꼽은 키워드 중 하나는 ‘다양성’이었습니다. 콜라보레이터들은 자신의 활동이 사회의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일이지 않을까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고정된 일에 익숙해져있는 것이 대부분이죠. 조금만 더 벗어나면 자기가 주도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결정해서 일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포기하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일의 형식이나 다양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지 고민하여 일하고 있죠.“ — 노유진(위커넥트)

유진씨의 이야기처럼 주어진 환경에 맞춰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일의 시간과 장소를 결정할 수 있다면? 주체적인 삶의 결정권을 갖는 것은 다양성이 확보된 사회에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공감이 되었습니다.

한편, 코리빙을 주제로 세션을 구성한 디웰하우스의 승표씨는 ‘코리빙’ 경험 자체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를 세션에서 이야기 나누려고 해요. 코리빙의 경험에서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거든요.” — 서승표(디웰하우스)

다양성과 더불어 언서페 서울의 주요 키워드로 꼽힌 것은 ‘협력’입니다. 언서페 서울의 실험은 예기치 못한 만남 즉,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협력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키워드 아닐까요?

자신이 속한 조직의 행사 일정과 겹쳐 이번에 세션을 열지는 못하지만, 콜라보레이터들에게 모임공간을 선뜻 내어준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상호씨가 있습니다. 그는 사회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매번 모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고,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를 모임마다 고민했다고 합니다.

“페스티발 이야기 들었을 때, 선뜻 파악이 안되고 내가 뭘 해야 하는 건가 내가 할 수 있는 건가 해도 되는 건가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모이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세션을 여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매번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 김상호 (정림건축문화재단)

그 외에도 만남, 대화가 언서페 서울의 키워드로 꼽혔습니다. 언서페의 의미를 충분히 논의하고 정의하기 위해 다양성, 협력, 만남, 대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테이블별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테이블별로 주요 키워드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나누었습니다.

“불편한 지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치열한 의지가 모여 목적을 달성하는 종합예술이다. (단, 지금 모여서 같이 하는 이 시점이 맞는 것도 중요하다)” — ‘협력’ 테이블

“자연스럽게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합의하는 것은 다양성의 태도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합의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 ‘다양성’ 테이블

“대화란 제대로 존중하는 것, 결국 상대방 혹은 나를 제대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대화를 시작하자.” — ‘대화’ 테이블

“자연스럽고 좋네요. 딱 이 한 문장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런 만남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만남’ 테이블

언서페 그 이후, 콜라보레이터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언서페가 끝나고 나니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왜 콜라보레이터들은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이 대화의 장에 참여하게 된 것일까요? 참여를 통해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콜라보레이터들의 참여 후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기꺼이 언서페에 참여하게 된 이유

콜라보레이터들이 선뜻 이 대화의 장에 참여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고 합니다. ‘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 : 청년의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정책이 해야할 일’ 세션을 기획하고 운영한 헬로파머의 아롬씨와 듣는연구소의 우군은 청년 귀농귀촌 정책을 고민하는 기관의 담당자들과 귀농귀촌을 고민하는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안타까움에서 이번 세션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귀농귀촌을 둘러싼 동상이몽의 현실 속에서 그들이 꼭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언서페의 세션으로 풀어냈습니다.

꼭 필요해서 만든 소개팅: 청년의 지역살이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정책이 해야 할 일 ⓒ 씨닷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어 만날 수 없었던 당사자들의 만남을 기대했어요. 홀로 점처럼 활동해 외롭다고 생각한 사람들끼리 자신과 같은 처지의 존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 이아롬(헬로파머)

당사자들이 만나는 필요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회혁신을 위한 통번역의 역할(세션 후기 바로가기) ’ 세션을 운영한 통번역협동조합의 세현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통번역을 하는 사람들, 우리의 이용자들이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거든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보람이 있는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 답답한 점들이 있을텐데, 그런 답답한 점들을 함께 이야기 나눌 공간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사용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우리와 만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 이세현(통번역협동조합)

세션을 운영하며, 가장 인상깊었던 점

‘Workidshop(세션 후기 바로가기)’은 새로운 워라밸을 꿈꾸는 엄마, 아빠, 자녀가 한 공간에 모여 각자의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시간으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일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고, 엄마와 아빠는 아이와 한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 경험이었는지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세션을 기획하고 운영한 지혜씨가 속한 진저티프로젝트에서는 종종 아이와 함께 일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지혜씨가 속한 조직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이와 함께 일하는 경험에 대한 비슷한 필요가 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세션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세션 운영을 통해, 지혜씨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필요와 질문으로 시작한 세션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호응해주었다는 것 자체로 지혜씨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고 합니다.

Workidshop 콜라보레이터 안지혜씨 ⓒ 씨닷

“지극히 개인적인 필요로 시작된 질문이었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필요를 필요로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극히 나 개인의 필요에 집중하여 기획하는 것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 안지혜(진저티프로젝트)

지혜씨 외에도 코리빙의 경험 당사자, 코리빙 경험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눈 ‘COLIVING = A 합집합 B’ 세션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상깊었다고 했습니다.

나 혼자만의 고민이라 생각했던 질문에 호응해주고 반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만남의 장이 더 풍성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콜라보레이터들에게 언서페란?

그런데 여전히 왜 굳이 우리가 협력해야 할까, 왜 우리가 자주 만나고 대화해야할지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누군가에게, ‘UNUSUAL CAREER’ 세션을 진행한 위커넥트의 김미진 대표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협업 한다는 건 처음엔 어색하지만 늘 혼자보다, 상상보다 훨씬 더 높은 퀄리티를 내니까요! — 김미진(위커넥트)

우리가 처음 만났던 8월, 어쩌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있는지 어리둥절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색한 기류 속에서 각자가 가진 에너지를 열심히 쓰며 그 자리를 지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협력하는 것이 혹은 우리가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왜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지 여전히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각자 속한 조직에서 하면 될 일이지 언서페라는 장이 왜 필요한지 아직도 물음표를 갖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서페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공감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각자가 만들어가고 있는 변화를 위해서라도 동료와 내밀하게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혼자 만드는 변화가 아님을 알기에, 우리는 기꺼이 여름부터 겨울까지 시간을 내고 마음을 내어 언서페의 장에 참여했습니다. 이 예기치 못한 만남의 목표가 어딘지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모인 우리가 함께 만들어간 이 경험으로부터 어떤 변화가 만들어질지는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모이니까 되더라”

통번역협동조합 세현씨의 한마디처럼, 그냥 또 모여보면 어떨까요? 약간의 준비는 필요하겠지만요. 그냥 이렇게 또 한번 모여봐도 좋을 것 같아요. 좀 더 느슨하게, 좀 더 편하게 말이예요.

ⓒ 씨닷

관련링크:[언서페 서울] 우리가 시도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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